재야논객열전
반복악순환하는 역사에 우리운명을 맡기려나?
 lsh3508 2019-01-12 15:33:42  |   조회: 74

1세기 여전 일본과 미국의 바른 말 쓴 소리

18858, 갑신정병이 일어난 다음해에 일본의 메이지시대 교육사상가로서 게이오(慶應)대학을 설립한 바 있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論吉)가 피폐해가는 조선의 세도정치를 향해 다음과 같은 독설을 발하였다. “조선인민을 위하여 그 나라의 멸망을 기원하노니, 인민의 생명도 재산도 지켜줄 수 없는 독립국가로서의 자존심도 지키지 못하는 나라는 오히려 망해버리는 것이 인민을 구하는 길이리라!”

어쩌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그 꼴이 아닌지 모른다. 국가안보의 대들보가 내려앉아가는데도 적패청산이니 국정농단이니 하면서 정치보복에 국력을 소진하다 보니 경제파탄의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데도 집권세력은 태평성대이니 말이다.

자중지난으로 허송세월하다 드디어 악몽의 동학란이 발발한 1894년에 후쿠자와는 한 번 더 입을 열고서 조선을 향해 독한 말을 한다. “조선인민은 소와 말, 개와 돼지 같다. 조선인의 완고 무식함은 남양의 미개인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독설을 퍼부었고, 청일전쟁이 났을 때엔 중국을 매도하고, 일본에게도 충고를 하였다. “중국인은 장구벌레, 거지, 개돼지의 오참산적 같다. 일본이 중국에 요구한 것은 영토가 아니라 무역이다

그는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으로서 조선 멸망론은 물론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을 부르짖은 선각자로서 유명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7심훈을 남겼다. 오늘의 한국 집권세력이 유년할 몸가짐이 아닌가 한다.

1)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멋진 것은 일생을 바쳐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2)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것은 인간으로서 교양이 없는 것이다.

3)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것은 할 일이 없는 것이다.

4) 세상에서 가장 추한 것은 타인의 생활을 부러워하는 것이다.

5)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남을 위해 봉사하고, 결코 보답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6)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모든 사물에 애정을 갖는 것이다.

7)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19010년의 한일합방직전에 가스라/태프트 밀약 체결의 촉진제가 된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선을 평가 절하한 메시지도 후쿠자와 유키치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고종이 미국공사 Horace Allen을 통해 일본의 침략을 막아달라는 선처를 부탁했으나, 루즈벨트는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신에서 이를 거절한 것이다. 그 일부 구절이 이하와 같다.

“We can not possibly interfere for the Koreans against Japan.

They could not strike one blow in their own defense!..........

It would in fact best for Koreans if their country was absorbed into the Japanese Empire.“

1905년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교사절단을 아시아에 파견했다. 일행 80여 명이 샌프란시스코 항을 출발한 것은 그 해 75, 이 사절단에는 당시 미 전쟁장관 태프트(루스벨트의 후임으로 27대 대통령이 됨)를 비롯하여 상원의원 7, 하원의원 23명 및 다수의 군인과 민간관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일행 가운데는 루스벨트의 딸 21세의 엘리스도 들어 있었다. 그녀는 세속 언론들에게 관심의 표적이 되어 있는 스타였다. 루스벨트는 제국의 항해’, 즉 임페리얼 크루즈(imperial cruise)를 통해 향후 수세대에 걸쳐 아시아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칠 중대한 정책들을 비밀리에 진행시켰다. 미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알려진 것과는 달리 집단수용소를 만들어 고문과 민간인 살육을 자행했으며 하와이, 쿠바, 필리핀 같은 약소국을 강점한 백인우월주의자 이자 전쟁광이었다. 그는 앵글로 섹슨 문명이 동에서 서로, 즉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태평양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이상한 신념을 가진 인종주의자였다.

조선의 운명을 결정한 카스라 태프트 밀약은 바로 루스벨트의 임페리얼 크루즈가 성사시킨 핵심 공작 중 하나였다. 조선은 그 해 1117일 일본과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1905년 여름, 도쿄와 워싱턴 사이에는 비밀 메시지가 태평양 해저 케이블을 통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미 전쟁장관 태프트는 일본 총리 카스라와의 극비 회동에서, 일본이 아시아 대륙으로 확장해 들어가도 좋다고 허용하는 비밀 협정서에 서명했다. 미국 대통령이 상원의 승인 없이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루스벨트는 일본과 비밀협상을 벌이는 동시에, 당시 전쟁 중이던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정직한 중개자역할을 자임했다.

그 결과 두 교전국은 그 해 여름 포츠머스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1년 뒤 루스벨트는 미국인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벨 위원회는 이 비밀협약에 대해 몰랐던 것 같다. 미일 사이에 엄습하게 오간 이 비밀외교 전문은 루스벨트가 사망할 때까지 극비로 묻혀 있었다. 조선의 고종은 1876년 문호를 개방했고, 첫 서방 수교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고종은 미국이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조선을 보호해 줄 것을 기대했다. “우리는 미국을 형님과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오.” 고종은 미 국무부에 이런 말을 전했다. 그는 루스벨트가 조선에 공명정대한 외교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고종이 짐작도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루스벨트는 일본에 나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다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러나 그의 딸 엘리스가 조선에 와서 조미 우호를 위해 축배를 든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엘리스의 아버지는 서울 주재 미국 공사관을 폐쇄했고 조선을 일본군대에게 맡겨 버렸다.

당시 현장을 지켜본 한 미국 외교관은 마치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치는 쥐들처럼미국이 조선을 버리고 도망쳤다고 표현했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승인한 첫 번째 나라였다. 고종이 보낸 밀사들이 일본의 만행을 중지시켜 달라고 간청하자, 루스벨트는 조선은 이제 일본의 일부분이니 앞으로는 도쿄를 통해서 탄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조선을 배신함으로써 아시아 대륙에 대한 일본의 영토확장 계획을 결정적으로 지원했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또 다른 루스벨트 대통령(프랭클린 루스벨트)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행한 비밀협약과 인과관계를 가지는 엄청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다. 자중지란에 국력을 소진하면서 망국의 지름길로 들어선 이 나라의 슬픔은 지금이나 그 때나 다름없다. 이제는 트럼프가 한국을 왕따시키려는 횡포가 고개를 들고 있는데도, 문재인은 시진핑과 김정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고 있을 뿐이다.

2019-01-12 15:33:42
이 게시물을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