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바란다
정경두 공식/형식 평가
 lsh3508 2019-03-31 20:07:57  |   조회: 393
정경두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군인이었으며, 공군으로 군 복무 당시 최종계급은 대장, 최종보직은 합동참모의장이다.

2017년 8월 8일,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합동참모의장으로 지명되었다.[1] 동월 18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합동참모의장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로부터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고, 이례적으로 당일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전자결재 방식으로 합동참모의장에 임명되었다.

2018년 8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방부 장관에 내정되었고, 9월 21일자로 취임하였다.


2. 생애[편집]


2.1. 공군 시절[편집]


파일:o_1568680_1308645.jpg
▲2013년, 당시 남부전투사령관 정경두 소장

경상남도 진주시 출신으로, 진주중과 대아고등학교를 나온 뒤에 1978년에 공군사관학교 30기로 입학했다. 1982년에 임관했고 조종장교로 근무했다. 주기종은 F-5. 제1전투비행단장, 계룡대 근무지원단장,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장, 남부전투사령관을 거쳐 2014년 4월 공군중장으로 진급해 공군참모차장을 지냈다. 2015년 4월 장성 정기인사에서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으로 이동했고 2015년 하반기 장성인사에서 대장으로 진급, 공군참모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참모총장 선임 시 예상 밖 인사였는데, 당시 공군에서는 2연속으로 2기수를 건너 뛰어 참모총장이 임명된 상태라 이번에는 최차규 당시 참모총장의 바로 밑 기수인 29기에서 총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2] 하지만, 일련의 최차규 참모총장 관련 추태로 인한 징계성 차원에서 정경두 중장이 임명됨으로써 중장 이상 지휘부 6명 중 3명이 교체됐다.[3] 예상을 깨고 그가 참모총장이 되었을 때 공군은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4] 파격 인사로 임명된 것에 대해서 2010년대 중반의 장관급 인사가 으레 그렇듯 박근혜정부 쪽 라인과 관련이 있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정권교체 시점과 임기 종료가 맞아떨어지고, 일선 장병들 사이에서의 신망이 대단히 높아서 큰 무리없이 받아들여졌다.

1995년과 2005년에 항공자위대간부학교[5]에서 지휘참모과정[6]과 AWC 교육[7]을 받는 등 국군에 드문 일본통이자 자위대전문가이다. 아베 신조 집권 이후 일본의 안보법제 변화 등으로 인한 자위대의 위상 변화가 인사에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2.2. 합참의장 임명[편집]




파일:정경두 합참의장.jpg


문재인 정부의 출범 이후 2017년 7월, 해군 출신인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임명된 후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합참의장 후보로 언론에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첫 합참의장으로 내정되었다. 공군 출신으로는 25대 합동참모의장이었던 이양호 전 국방장관에 이어 두 번째이며, 비육군 출신으로는 역대 세 번째다. #

합참의장으로 내정된 배경에는 역시 송영무 장관 휘하 지휘부의 해군, 공군 전력 강화에 대한 의지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동안 보여준 인품에 대한 호평도 한몫을 했으리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임 합참의장인 이순진 대장 못지 않게 일선 실무자들 평이 유난스럽게 좋다.[8] 비록 공군의 경우 육군과 비교해서 간부들이 병들에게 잘 대해주는 경향이 있긴 하나, 참모총장 보임 전후로 공관병 두지 않기, 명절에 선물 받지 않기, 진급 전 초조주 관행의 철폐, 그의 가족들은 병, 간부들과 함께 연락버스를 이용하는 등 공군 내 부조리 타파에 앞장섰다는 말이 계속 나오는 걸 보면 하급자에게 피해나 불편이 가지 않도록 각별하게 주의하는 장성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8월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 "정부 인사 중 가장 도덕적인 분"이라며 호평하는 가운데, 주로 정책 질의가 오갔는데 "(북핵 동결에 대한 대가로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연합 훈련 축소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고, 전술핵 배치의 경우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는 것과 모순된다"면서 사실상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아울러 군 당국이 유사시 개전 3일 이내에 한반도에서의 제공권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청문보고서는 무난히 채택되었고, 이날 문재인 대통령도 전자결재를 통해 정식으로 합참의장에 임명했다. *


2.3. 합참의장으로서의 행적[편집]


2017년 8월 20일 임명식이 거행되었다. 공교롭게도 취임 다음 날이 2017년도 UFG 한미연합훈련 개시일이다. 주말에 취임식을 하는 이유가 UFG 도중에 취임식을 거행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날 합참의장 이취임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해, 처음으로 취임식 자리에서 현직 대통령의 경축사를 받은 합참의장이 됐다. 문 대통령의 참석은 국방장관, 합참의장 등의 군 수뇌부 인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향후 정부의 국방개혁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하고, 을지훈련 개시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굳건한 국방태세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다목적 행보로 평가된다.

정경두 합참의장은 취임식 자리에서 "적이 도발한다면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단호하고 강력하게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새로운 전쟁수행 개념을 정립하고 한국형 3축 체계(Kill Chain·KAMD·KMPR)의 조기 구축과 전력획득 절차의 투명성·효율성을 보장해 주도적 군사작전 수행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9월 27일 가와노 가쓰토시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과 통화를 갖고 북한 군사위협에 대한 평가,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위에도 나오듯이, 정경두 합참의장은 일본 항공자위대의 간부 과정에 유학을 다녀온 적도 있는 한국군의 대표적인 일본통이다.

2018년 4월 26일,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수행단에 포함된 것이 알려졌다. 북한에서 박영식 인민무력상(= 국방장관격)과 함께 리명수 총참모장을 모두 파견하면서 격을 맞춘것으로 보인다.[9] 이로써 정 합참의장은 현역군인 최선임 장성인 합참의장으로서 남북정상회담에 참석한 첫 사례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4월 27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과거 김장수 국방부 장관처럼 고개를 꼿꼿이 세워 주목을 받았다.[10]


2.4. 국방부 장관[편집]


2018년 8월 30일,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국방부 장관에 내정되었다. 정식으로 임명되면 김정렬, 주영복, 이양호에 이어 24년 만에 역대 네 번째 공군출신 국방수장이 된다. 합동참모의장 청문회를 수월하게 통과 했던 만큼, 무리없이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현역 군인신분인 상태에서 내정되었기 때문에 취임식 날 전역식도 동시에 치룰 예정이다. 김태영 전 장관에 이어 전역 직후 바로 장관에 취임하는 케이스인데, 김장수 전 장관처럼 군 복무 도중에 내정이 되었다.[11]

시기 또한 절묘한 게 9월 내지 10월 즈음이면 미 국방부에서 T-X 프로그램 최종 사업자를 발표하게 된다. 사업 규모가 미군 측 수요만 최소 10조에서 30조 원이고, 제3국 수출시장까지 고려하면 최대 100조 원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사업이기 때문에 록마-KAI 컨소시엄에 힘을 실어주기 좋은 공군 출신인 정경두 합참의장을 장관에 임명하려는 거라고 추측할 수도 있었다.[12][13]

9월 19일, 청문회 준비 과정 중에서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청문회 당일 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되었으나 결국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었다.

9월 21일, 이날 오전 대장 이임 및 전역식을 진행하고 오후에 장관 취임식을 가졌다.[14]

11월 1일, 제50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 정 장관은 SCM 회의 직전 미 국방부에서 미 국방부 의장대를 사열했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미 국방부 의장대를 정식 사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장행사가 진행되는 중 한미 양국 국가가 연주됐고, 예포 19발도 발사됐다. 한국 국방부 장관을 환영하는 미국 측의 의장행사 때 예포가 발사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의 큰 환대를 받은 정 장관은 제50차 SCM에서 전작권 환수 이후 연합방위태세의 밑그림이 담긴 연합방위지침에 합의했다. 8개 항으로 된 연합방위지침은 전작권 환수 이후에도 주한미군은 철수하지 않고, 지금의 한미연합군사령부 형태의 지휘구조를 유지하며 연합사의 사령관은 한국군 대장, 부사령관은 미군 대장이 맡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2019년 2월 아래 항목에 나온 것처럼 천안함 전사자 비하로 오해될 발언을 하여 자유한국당에 의해 정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8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참석해 "국방부 장관 해임 건의안이 발의됐다"고 전했으며 국회 관계자는 "해임 건의안은 의사국장이 본회의에 보고한 시간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까지 표결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 장관 해임 건의안에 대한 표결은 3월 29일 오후 2시부터 표결이 가능하고 이틀 뒤인 31일 오후 2시 종료된다.#

3. 사생활[편집]


김영숙과 결혼했고, 슬하에는 아들이 하나 있다. 참고로 축구를 매우 좋아하며, 남부전투사령관 시절 매주 체련시간마다 축구를 하도록 해서 간부들이 좋아(?)했다 카더라. 대구의 35도 폭염속에서도 축구를 하셨다. 그리고 아들에게 절대로 공군에 입대하지 말라고 신신당부 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경두 의장의 아들은 기무사 행정병으로 군생활을 마쳤다. 이렇듯 자기관리가 철저했기 때문에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에서도 "도덕적 흠결이 없는 인사"라고 호평을 들었다.

다만, 합참의장 청문회 때 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이 신검 당시 고졸로 기록된 정경두 의장의 고졸인 아들이 병으로 입대하고 기무사 행정병으로 근무한 것이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러모로 사실관계가 틀린 지적이었다. 우선 기무사 행정병 요건에 대졸이라는 요건은 없다. 기무사가 직접 서류, 면접 심사를 통해 골라서 뽑을 만한 권력이 있어서 기왕이면 대졸로 뽑아가는 것뿐이다. 또한, 정경두 의장의 아들은 고졸도 아니고 신검 이후 라스베이거스에 위치한 네바다 주립대학교에서 2학년을 마친 후 입대한 상태였다. 결론적으로 야당의 역할에 과하게 몰두해 무리한 지적을 한 것이다.

종교는 개신교로 한국기독군인회(KMCF) 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가 김용우 육군참모총장에게 넘겼다.#


4. 논란[편집]


4.1. 논문표절 논란[편집]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쓴 석사 학위 논문이 전체의 3분의 2이상을 다른 논문을 베껴쓰는 등 표절한 의혹이 K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정경두 장관 후보자는 지난 2002년 2월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며 <항공기산업 현황과 발전 방향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48쪽짜리 논문을 집필해 논문 심사를 통과했는데 논문 9쪽에서 32쪽까지 모두 25쪽이 1999년 세종대학교 항공산업연구소가 발행한 박모 박사의 <한국 항공산업의 발전방향 Ⅱ>와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정 후보자는 논문 서론과 결론 가운데 8쪽 분량을 세종대학교 항공산업연구소의 2001년 발행 논문인 이모 씨의 <공군의 발전방향과 항공산업육성>에서 베껴 쓰면서 논문 48쪽 가운데 33쪽을 다른 사람의 논문을 그대로 복사해 집필한 셈이다.

논문표절 의혹에 대해 정경두 장관 후보자는 "보도에서 언급한 2002년 석사학위 논문 작성 시 논문을 인용한 것은 사실"이라며 "학위 논문작성시 스스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정확한 인용근거를 명시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라고 해명했다.#


4.2. 위장전입 논란[편집]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서울 목동아파트에 위장 전입했던 사실이 채널A 취재 결과 드러났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999년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를 주거지로 신고했지만 충남 계룡시 공군본부에 근무하며 관사에서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었고 실제로는 정 후보자의 처형이 이 아파트에 살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2000년 처형이 이사하자 정 후보자도 함께 주소를 옮기면서 두 번의 위장전입 의혹이 제기됐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위장 전입 의혹을 시인하고 사과했다. 정 후보자는 5일 국방부를 통해 "1998년 연말부터 계룡대 공군본부에서 근무하면서 1999년 2월과 2000년 6월, 주소를 서울 소재 아파트에 둔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군인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근무지를 자주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 지역에 자가를 마련하고자 주소를 서울 인척 집에 둔 적이 있다"며 "공직자로서 사려 깊지 못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결국 정경두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논문표절·위장전입 논란에 시인하며 "불찰이다", "사려 깊지 못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도덕성 측면에서 이미 정후보자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야권의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것으로 보이며 인사청문회에서도 집중적으로 추궁 할 듯 하다...고 생각했건만 다른 장관들에게 시선이 쏠리면서 우야무야 되어버렸고, 청문회 서류 채택이 하루 밀린 정도가 유일한 타격이었다. 하술하다시피 보통 운빨이 아니다.


4.3. 천안함 및 연평도 발언 논란[편집]


'김정은이 천안함 사과 안해도 이해하자'는 鄭국방

KBS 신년기획 '한반도의 미래를 묻다'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 답방할 경우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우리가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 (비핵화가) 잘 될 수 있도록 한다는 차원에서 일부 우리가 이해를 하면서 미래를 위해서 나가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북한의 군사도발을 용서해주자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천안함 유족들은 이러려고 목숨을 바쳤나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또한 문재인 정부 인사의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여론도 늘고 있으며# 보수층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 가지고 일본에 꾸준히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며 규탄하는 여론을 조성하면서 10년도 안 된 천안함과 연평도는 사과 안 해도 좋으니 평화를 위해 묻어가자는 소리를 하고 있냐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국방부는 "남북관계 신뢰 구축을 위한 여건 조성 차원에서 한 발언"이라고 말하며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은 명백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북한이 책임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해명했다.#

2019년 3월 20일에는 서해 수호의 날에 대해 '서해상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불미스러운 남북간 충돌을 추모하는 날'이라는 발언을 했다가 백승주 의원의 북한의 도발이냐 충돌이냐 라는 추궁에 북한의 도발로 인한 충돌이라고 정정했다.#

또한 천안함 추모식 관련해 유족들의 의견을 왜곡한 것이 드러나 논란이 되었다.#

4.3.1. 해임 건의안 국회 발의[편집]


결국 3월 22일 자유한국당에서는 정경두 장관 해임 건의안을 국회 발의했고 28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정식으로 논의에 착수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늦어도 31일까지는 해임 건의안에 대한 표결을 마쳐야 한다.

5. 트리비아[편집]


대한민국 국군에서 처음으로 대장에 진급한 1960년대생이다. 물론 2015년 기준 8명의 대장 중 임관년도가 가장 늦다. 미군에선 2012년 대장에 진급한 존 리처드슨 제독(1960년생)이 첫 60년대생 대장이며[16] 중국 인민해방군[17]이나 자위대[18]에서는 정경두 대장의 진급 시점까지 60년대생 대장[19]이 배출된 적이 없다.

이는 대한민국 국군의 '기수문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는데, 사관학교 몇 기에서 합참의장이 나오면 다음 기수에서는 참모총장이 나와야 한다는 등의 일종의 관례가 그 예이다. 군 고위직의 기본적인 임기는 2년인데 사관학교 매 기수별로 해당 직위를 줘야하기 때문에 기수를 건너뛰지 않고 기수당 1년 3월~1년 6월씩 직위를 역임하다보니[20] 인사적체가 심한 편이며, 그 때문에 타국 장교보다 진급속도가 매우 늦은 편이다.[21] 때문에 정경두 합참의장 역시 2017년 기준으로 1960년대생으로 대장이 되었다고 해서 빨리 진급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일선에서 덕장이자 지장으로서 평가가 높았으나, 복무 말년에는 무엇보다도 어마어마한 운장의 위용을 과시했다.


•남부전투사령관 시절에 사령부에서 복무한 병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더 이상의 진급에 기대를 안 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등 전역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진짜로 본인의 중장과 대장 계급장을 쓰레기통에 버리셔서 병사들이 직접 파쇄한 일이 있다. 일단 여기서 뜻밖에 중장 진급을 하면서 참모차장직을 역임한 게 첫 번째다.



•대장 진급 및 참모총장 역임도 마찬가지로, 상기한 바와 같이 공사 30기는 총장이 나올 기수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최차규 총장이 각종 물의를 빚고 경질되면서 정부에서 공군 수뇌부의 세대 교체를 기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고, 이에 따라 얼떨결에 공사 30기로 참모총장직이 넘어오며 진급했다.



•이미 이 시점에서 공군 장교로서는 사실상 최고의 위치까지 갔지만, 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참모총장 재임 시절 육군에서 사조직 문제가 불거지고 일부 수상한 움직임까지 포착되면서 새로 들어선 정부가 육군 위주의 구조 혁파를 위해 비 육군 출신의 합참의장을 찾던 차에, 장관은 해군 출신인 만큼 합참의장에는 공군 출신을 기용하는 것이 좋은 모양새가 나왔고, 마침 공군참모총장이 평가도 좋아서 제복군인의 최정점인 합참의장에 올랐다.



•하지만 관운은 거기서도 그치지 않았다. 이런저런 논란으로 장관으로서의 권위가 실추된 송영무 장관이 문재인 정부의 국방 개혁 초안을 마련하고 물러나면서 송 장관 밑에서 별 잡음 없이 군을 통솔한 당시 정 의장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게 되었고 기어코 장관으로 임명된다.



이 정도면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래 관운이 가장 좋았던 장성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물론 가는 곳마다 위아래로 평가가 좋았고 상당히 깨끗하게 군생활을 이어왔다는 점이 그 관운을 가능하게 했겠지만, 어쨌든 특기할 만한 경우임은 틀림없다. 실제로 인터넷 뉴스 댓글 및 커뮤니티에서는 정경두 장관을 칭송하는 공군 예비역의 글들이 수두룩하다.


6. 주요 이력[편집]


6.1. 학력[편집]


•1978. 진주 대아고등학교 졸업[22]


•1982. 공군사관학교 학사


•1995.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C.S.C.


•2002. 한남대학교 경영산업대학원 경영학 석사


•2005.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A.W.C.


•2012. 충남대학교 평화안보대학원 고위정책과정



6.2. 경력[편집]


•1982. 04. ∼ 1982. 07. 공군 제3훈련비행단 제215비행교육대대 조종장교(소위, 학생조종사)[23]


•1982. 08. ∼ 1983. 07.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제123전투비행대대 조종장교(중위)


•1983. 07. ∼ 1985. 05. 공군 제11전투비행단 제122전투비행대대 조종장교


•1985. 06. ∼ 1988. 08. 공군 제3훈련비행단 제216비행교육대대 조종교관(대위)


•1988. 08. ∼ 1992. 12.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제122전투비행대대 편대장(소령)


•1993. 01. ∼ 1994. 07. 공군 공군대학 전략전술학처 공군작전교관(중령)


•1994. 08. ∼ 1995. 07.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지휘막료과정 위탁교육생


•1995. 08. ∼ 1996. 12. 공군 제1전투비행단 제102전투비행대대 비행대장


•1997. 01. ∼ 1998. 10. 공군 작전사령부 작전처 비행·합동훈련장교


•1998. 11. ∼ 1999. 11. 공군본부 기획참모부 전력정비계획장교


•1999. 12. ∼ 2000. 11. 공군본부 기획참모부 계획총괄 겸 항공기담당관


•2000. 12. ∼ 2002. 01. 공군 제16전투비행단 제115전투비행대대 대대장


•2002. 02. ∼ 2003. 12. 국방부 획득정책관실 공중/방공담당관(대령)


•2004. 01. ∼ 2005. 03.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공중전대학(Air War College) 위탁교육생


•2005. 04. ∼ 2005. 12. 공군본부 항공사업단 개발사업관리과 과장


•2006. 01. ∼ 2006. 11.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력소요처 방위사업협력과장


•2006. 12. ∼ 2008. 11.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력소요처 처장(준장)


•2008. 12. ∼ 2009. 11. 공군 공군사관학교 생도대 생도대장


•2009. 12. ∼ 2011. 04. 공군 작전사령부 남부전투사령부 제1전투비행단 비행단장


•2011. 05. ∼ 2011. 11. 계룡대 근무지원단 단장


•2011. 12. ∼ 2013. 03. 공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부장(소장)


•2013. 04. ∼ 2014. 04. 남부전투사령부 사령관


•2014. 05. ∼ 2015. 03. 공군본부 공군참모차장(중장)


•2015. 04. ∼ 2015. 09.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본부장


•2015. 09. ∼ 2017. 08. 공군본부 공군참모총장(대장)


•2017. 08. ~ 2018. 09. 합동참모본부 합동참모의장


•2018. 04.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 대한민국 대통령 공식수행원


•2018. 09. ~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6.3. 상훈[편집]


•2004. 10. 대통령표창


•2010. 09. 보국훈장 천수장


•2018. 09. 보국훈장 통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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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양호 전 합참의장(1993∼1994년 재임) 이후 23년 만에 나온 공군 출신 두 번째 합참의장이다.

[2] 전 총장 최차규는 후임 작전사령관이었던 29기 김정식 장군을 밀었다고 전해지나 실패했다. 일선 장병들도 김정식 장군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걱정을 했는데, 왜냐하면 김 장군은 하급자들을 험하게 굴리기로 악명이 자자했던 지휘관이었기 때문이다.

[3] 동기나 후배가 참모총장이 되면 전역해야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30기 동기였던 강구영 중장을 남겼다.

[4] 덕장으로도 알려져 있고 진급 적체 해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5] 공자대의 보수교육기관이다. 공자대 장교 양성교육기관인 간부후보생학교와는 다르다.

[6] 일본어로는 지휘막료과정(Command and General Staff Course)이라 하며 대위-소령 정도의 영관급 장교가 받는 교육이다. 한국에서도 합동군사대학 휘하의 공군대학에서 같은 교육을 한다.

[7] Air War Course. 간부고급과정을 말한다. 고급지휘관을 위한 교육이다.

[8] 간부 선에서는 전임 참모총장인 최차규 장군을 까면서 비교 내지 반대급부로 칭송을 받는 경우가 많고, 그게 아니더라도 조직 내에서 "참모총장님은 좋은 분, 덕장이다" 라는 말이 임기 중 유달리 많이 돌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간부들은 물론이고 그를 겪은 일반 병들에게 굉장히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9] 다만, 인민군은 어디까지나 '당'군이기 때문에 당직이 더 높은 리명수 참모총장이 박영식 인민무력상보다 군 내에서 지위와 발언권이 더 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10] 아무래도 군 내부의 반응을 의식한 것 같다. 라기 보단, 원래 군인은 허리를 세우고 악수하는 것이 원칙이고, 이는 기초군사훈련을 받을 때 군대예절 과목에서 다 가르친다. 장교 임관식에서도 대통령 앞에서 허리 숙이고 악수하는 소위는 없고, 일개 병사들도 높은 사람들 앞에서 허리 숙이고 악수하는 법은 없다. 더 나아가 직속 상관 관계일 경우 관등성명을 대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붙인다.

[11] 전임 보직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차이점은 정경두 장군의 경우 국방장관을 시키기 위해 군에서 강제로 전역시켰다는 것. 송영무 전임장관이 여기저기서 사고치고 다니는 등 상황이 상황인지라...

[12] 만약에 정경두 장관 후보자가 장관에 임명되고 나서 직접 미국 국방부 담당자들과 만나 사업 낙찰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다면 KAI의 본사 겸 공장이 있는 하동-사천-남해나 진주 지역의 국회의원 출마도 무리는 아닐 수 있었다.

[13] 하지만, T-X 프로그램이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넘어가면서 물거품이 됐다. 다만, 이번 수요는 공군만의 수요이기 때문에 향후 보잉-사브에서 납품하는 기체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미군 전체의 수요물량 중 남은 650대와 다른 지역에 대한 판매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14] 내부 소식에 따르면 정 장관과 수행인원들은 이날 하루만 세 번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고 한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정복 입고 이임/전역식, 전투복으로 환복하고 다과회, 양복으로 환복하고 취임식 및 인수인계를 했다고. 정 장관은 양복이 없어서 [15] 그 주 초에 급하게 하나 새로 맞춰야 했다고 한다.

[15] 양복이 없다는 것은 카더라이긴하다. 설령 진짜 양복이 없었더라도 입던 양복을 버렸거나,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구매를 한 적이 없다면 여태까지 참여한 모든 결혼식 및 장례식을 정복을 입고 방문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본인 직계가족 관련 행사에 그렇게 입고 나올 수는 있지만 단순 지인 결혼식 등에 그렇게 입고 가는 것은 민폐이다. 하다못해 양복 대여점 빌려 입기라도 했을 것으로 추정.

[16] 미국은 대장 보직이 40개에 이르고 기술통 출신 등은 해군핵추진프로그램 등의 자리 때문에 50대 초반에 대장을 달아버린 케이스가 많다.

[17] 중국은 70-80대 군원로들이 근래까지 활동했던 탓에 젊은 군대를 만들려고 많이 깎은 게 60대 상장들이다. 2015년 9월 기준으로 1955년생 상장(남경군구 정치위원인 쩡웨이핑(郑卫平)과 해군 정치위원인 마오화(苗华) 2명)이 제일 젊다.

[18] 자위대는 대장 보직이 4개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사적체가 심각한 편이다. 장관급 간부의 경우 방위대학교의 기수에 철저히 맞추는 편이다.

[19] 중국의 경우에는 엄밀히는 상장을 기준. 대장은 1955년 이후에 보임된 적이 없으므로.

[20] 물론 2~3기수, 3~4기수마다 한 번씩은 해당직위를 맡지 못하는 기수가 나온다. 그래야 그나마 1년마다 고위직이 교체되는 사태는 피하다보니..

[21] 모 나라에 국방무관으로 파견된 육군 대령에 따르면, 타국 대령들은 40대 초반인데 반해 유독 국군의 대령들은 50대를 넘어서는 고령이라는 것.

[22] 학교를 1년 일찍 들어가서 59년생과 함께 졸업하였다. 대아고 10기 졸업생.

[23] 지금은 공사 졸업하거나 학사장교로 임관 시 조종경력은 0시간이며, 공군사관학교 예하 제212비행교육대대에서 T-103 초등훈련기를 이용해서 11주간의 초등비행과정을 이수한 뒤 3훈비에서 35주간의 중등비행교육과정을 거쳐 1전비에서 고등비행교육을 받게 된다. 학교에서 조종교육을 받은 ROTC 출신만 이곳으로 바로 배속되어 중등비행과정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지금 조종장교로 임관한다면 중위 끝물이나 대위가 되어서야 빨간 마후라 받고 정식 조종장교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2019-03-31 20: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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