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논객열전
문재인이 읽어야 할 감명스토리l #2
 lsh3508 2019-06-17 17:01:23  |   조회: 362

2번째 포로가 된 임종덕을 다시 찾아온 하나님

한편 임종덕은 월맹의 최북단의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이 곳은 당시 소련, 중국, 북한으로 쉽게 보낼 수 있는 포로들의 집합소였다. 그런데 이 수용소에서 임종덕은 기막힌 현장을 목격했다. 어느 날 임종덕은 수용소 사무실로 불려나갔다. 월맹군 장교 4명과 경호원 1명이 각자 권총을 차고 있었는데, 임종덕이 보는 앞에서 소련제 권총에 실탄 1발만 장전해서 임종덕에게 건네는 것이다. 6발이 장전되는 탄창에 1발만 넣고 탄창을 몇 바퀴 돌렸다. 그리고 이 권총을 임종덕에게 주면서 자신의 머리에다 대고 발사하라는 것이다.

권총 방아쇠를 당길 때 탄창칸에 다행히 실탄이 없으면 살고 만일 있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 한다. 그러니까 생존 확률은 61이다. 소위 러시안룰렛이란 살인 놀음판이다. 당시 책상에는 승자가 가질 돈이 놓여 있었다.

, 임종덕이 죽느냐, 사느냐에 따라 각자가 택한 것에 돈을 걸어놓고 놀음판을 벌리는 그야말로 인간의 목숨이 파리목숨이었다. 임종덕은 이 순간 하나님께 마음속으로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가 지금 이순간 이 악독한 무리들에게 제 생명을 빼앗긴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합니다”. 드디어 경호원의 명령으로 임종덕은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총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러자 이긴팀의 군인이 책상 위의 돈을 자신의 포켓에 다 넣었다. 수용소의 고위 관리자들이 하루하루 일과가 너무나 심심하니까, 러시안룰렛놀음판을 매일 한 번씩 하는데 어떤 날 권총 소리가 나면 죽은 자의 시체는 바로 옆에 있는 강으로 던져 악어가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임종덕은 이 절박한 현실에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나 깨나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에 매달렸다. 그리고 탈출의 계획을 세웠다. 다시 러시안룰렛놀음판에 불려나가면 지난번과 같은 상황에서 4초안에 현장에서 그들을 무력화 시키고 도망칠 계획을 세웠다. 4초란 것은 1초에 한명씩 박살하고 100미터 정도 떨어진 매콩강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1주일에 한 번씩 놀음판에 불려가던 순서가 임종덕에게는 한 달이 되었는데도 부르지 않았다. 임종덕은 날로 초조했다. 곧 월맹을 떠나 북한, 중국으로 끌려 갈 것으로 생각했다. 임종덕은 한 달동안 “4초 탈출이란 작전을 세우고 마치 운동 연습하는 흉내를 내면서 “4초 탈출의 연속 훈련을 한 달동안 계속했다

임종덕은 후일 그때 한 달동안 그들이 나를 부르지 않은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탈출을 완벽하게 성공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깨달았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임종덕이 그들에게 불려 나갔다. 4명이 권총을 차고 서로 2명씩 마주보고 앉았다. 이날 따라 여자 경호원이 총을 옆에 세워놓고 서 있었다. 임종덕은 경호원 옆에서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힘차게 불렀다. “하나님 한 달동안 훈련시켜준 4초 탈출의 승패가 지금 하나님 손에 달렸습니다. 우선 권총의 탄환이 첫 번째 탄창에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상대방 한명이라도 사살할 수 있습니다”.

이윽고 장교 1명이 자기들끼리 보는 앞에서 권총에 탄환 한 발을 장전 두루룩 돌린 후 임종덕에게 건넸다. 권총을 받은 임종덕은 순간 용기가 생겼다. 조금 전 그토록 불안했던 마음은 순간에 사라지고 틀림없이 하나님이 자신을 도와준다는 확신이 생기면서 한 달간 연습한 “4초 탈출작전을 개시했다. 드디어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는 척 하다가 가장 경계하는 표정의 상대방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소리와 함께 상대방이 꼬꾸라지자 임종덕은 평소 그린베레의 무술로 상대방이 권총을 꺼내기 전 평소 훈련했던 4초만에 그들을 격파하고 강을 향해 뛰었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이런 순간이었다.

강물로 뛰어든 임종덕은 지난날 특수전훈련 때 배운 대로 뛰어든 그 물속 그 위치에서 10분을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월맹군들이 강을 향해 사격을 퍼부었다. 잠깐씩 숨을 쉬기 위해 순간 수면에 올라와보니 월맹군들은 멀리 2백미터쯤 떨어진 강물에 사격을 하고 있었다. , 그들은 그동안 2백미터 이상 도망간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대형 물뱀과 악어들 속에서 살아나다.

임종덕이 뛰어든 강은 매콩강 지류이기 때문에 악어와 5미터 이상 되는 물뱀이 많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임종덕은 강물을 헤엄쳐 떠내려가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것은 하나님 저 악어들과 물뱀들이 나를 보지 못하게 저 동물들의 눈을 가려 주옵소서계속 이 기도만 했다. 월맹군 주둔 지역을 벗어난 임종덕은 드디어 밀림 속으로 숨어들었다. 매일 같이 큰 개구리를 잡아먹었으며 어떤 날은 4미터 이상 되는 뱀을 잡아 껍질을 벗기고 나무 위에 걸쳐 말리면서 1주일간 먹었다.

임종덕은 가끔 멀리서 들려오는 비행기 소리를 듣고 그쪽이 남쪽이라고 판단 계속 밀림 속을 걸었다. 어느 날 미군 헬리곱터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순간 그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강가의 백사장으로 뛰어나가 헬리곱터를 향해 미친 듯이 펄쩍 펄쩍뛰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헬리곱터는 베트공 복장을 한 임종덕을 발견하고 그가 베트공인 줄 알고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임종덕은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총탄에 단 한군데도 부상없이 밀림 속에 숨었다. 임종덕은 엄청난 절망감으로 쓰러져 누웠다.

의식이 몽롱해진 임종덕에게 다시 그 헬리곱터 소리가 들려왔다. 임종덕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 내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큰소리로 외치면서 무조건 백사장으로 다시 뛰어나가 헬리곱터를 향해 손을 흔들며 펄쩍 펄쩍뛰었다. 그 순간 미군 헬리곱터 조종사는 중요한 판단을 했다. , 비록 베트공의 군복을 입었지만 저 사람은 분명 월남군인의 패잔병으로 판단 그를 구출하기 위해 백사장에 비상 착륙을 감행했다. 임종덕은 헬리곱터에 타자마자 실신되어 공군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임종덕은 의식이 회복되자 자신은 미군 그린베레임을 밝혔다. 즉시 신원을 확인한 미군 수사관은 부모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려 주겠다고 연락처를 대라고 했다. 임종덕은 미국 공군 참모총장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연락을 취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수사관은 임종덕을 조금 이상한 눈초리로 보았다. 임종덕은 즉시 메모지에다 아버지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록해 주었다. 공군 참모총장 스티브 도마스 화이트 공군대장 이라고 적어 주었다.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

밀림 속에서 미군 헬리곱터에 극적으로 구출된 임종덕은 사이공의 공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즉시 미국 공군 참모총장 화이트 대장과 전화 통화가 되었다. 아버지 화이트 대장은 포로가 되었던 아들이 탈출해서 사이공에 왔다는 아들의 육성을 듣고 이게 혹시 꿈이 아니냐 아들아 너가 포로로 잡혀간 그날부터 네 어미와 나는 밤낮으로 너를 위해 기도했단다”.

당시 월남전에서 8명의 미군이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에 성공했는데 그 중 임종덕 대위가 제1호 탈출이었다. 그래서 미군은 물론이며 미국 내 참전 가족들의 환성이 대단했다. 화이트 대장은 아들아 내가 너를 직접 보아야 실감이 날 것 같구나 그래 어디 부상당한 데는 없느냐며 계속 울먹이며 질문을 했다.

임종덕은 울먹이는 아버지를 오히려 위로하면서 그가 항상 아버지께 한 말을 했다. “아버지 하나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고 늘 얘기 했잖아요”. 임종덕은 1주일간 공군병원에서 요양을 하면서 3개월간의 포로 생활에서 특히 그 생사의 갈림길에서 끝까지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사이공에 도착한지 8일째 되는 날 임종덕은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긴급 통보를 받았다. “존손 대통령께서 귀관을 백악관으로 초청하라는 명령이니 급히 오십시오”. 임종덕은 즉시 아버지께 이 내용을 알렸더니 아버지도 이미 알고 있다면서 나와 함께 백악관에 들어가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은성 무공 훈장과 1계급 특진.

임종덕은 키가 팔대장 같은 거구의 존슨 대통령으로부터 은성 무공 훈장을 받으면서 감격했다. 한편 대위에서 6년 후 소령이 되는데 임종덕은 대위에서 바로 소령 특진을 받았다. 특히 은성 무공 훈장을 받은 것은 부하 3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포로가 되었다는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한다. 훈장 수여가 끝나자 존슨 대통령은 임종덕을 신기한 표정으로 아래 위를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 키가 1m64cm의 이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 엄청난 행동과 지혜가 있었는지에 궁금하다는 표정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공군 참모총장에게 귀관은 어떻게 이런 자랑스럽고 훌륭한 아들을 두었소하고 물었다. 대통령의 질문에 아버지가 답변을 못하자 임종덕은 대통령 각하 하나님은 항상 저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말하자 존슨 대통령은 다소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임종덕의 굳건한 신앙에 큰 미소를 지었다.

한편 임종덕의 포로수용소 탈출 기자회견을 계기로 그가 겪었던 수용소 생활과 특히 러시안 룰렛 즉, 권총 살인게임 등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 되었다. 감독에 마이클 치미노 주연 배우에는 로버트 드니로를 비롯한 존 케세일, 존 세비지 등이 출연한 이 영화가 바로 디어헌터 (The Deer Hunter) 였다.

그 후의 남은 이야기

백악관서 은성무공 훈장, 대통령 안보비서관.

존슨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백악관에 가서 은성무공훈장을 받고 특진하였다, 존슨 대통령이 화이트장군에게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었냐고 해서 하나님이 함께하기기 때문이라라고 하였다. 5년 후 닉슨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두 번째 백악관을 가서 대통령 안보비서관 임명을 받고 전 미 국무장관 키신저와 함께 외교활동을 했다.

미국 중국, 핑퐁 외교로 극비합의 성공

미국과 중국이 적성국가로 외교가 단절된 상태이고 당시 중국은 모택동의 문화혁명으로 외국의 어떤 문화도 침투할 틈이 없었는데 오직 탁구경기만이 중국정부와 국민이 거부반응이 없어서 임종덕비서관은 미국 탁구선수단을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등지로 순방하면서 탁구를 통한 양국의 스포츠 교류를 서서히 진행시켰다. 임종덕비서관은 당시 중국총리 주은래를 여러 번 만나면서 주은래가 동생처럼 호의를 베풀면서 임종래라는 이름도 지어주고 모택동도 다섯 번 만났다.

박정희 대통령의 소개로 결혼.

1971년 미국과 중국이 극비리에 정상회담을 합의하고 키신저가 가는 길에 인접한 일본에도 알려야겠다고 할 때, 한국도 알려야 한다고 하자 한국은 당신이 가서 알리시오 해서 처음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더니 그렇게 좋아하면서 일 하느라 장가 못간 노총각이니 중신은 내가 서겠다고 하며 육여사에게 당부하여 한국의 전통 가문인 민씨 가문의 규수를 소개하여 결혼하고 더욱 친밀해졌다.

노벨평화상 감이 된 탁구공

1971년 키신저의 중국 극비방문에서 합의한 대로 19722월 닉슨대통령이 중국을 공식 방문하여 양국 공식성명이 발표되었다 불과 2.5g의 작은 탁구공이 미중외교를 성사시킨 1등 공신으로 노벨평화상감으로 선정되어 세계를 흥분시켰다.

이민동포를 위한 LA 동양선교 교회 설립

임종덕비서관은 LA출장 중에 한국에서 온 목사의 부흥회에 참석 했다가 설교한 목사님을 본 기억이 났다 20여년전 195315살 때 이승만 대통령과 아버지 화이트장군과 여의도 미군공군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한국공군군종감 임동선 목사의 설교를 듣고 감동받은 목사였다. 그래서 임종덕비서관은 임동선목사에게 70년대에는 한국에서 이민을 많이 올텐데 와서 서로 위로받을 이민교회를 세우자고 하여 1970년 동양교회를 창립하여 8000명의 교포가 모인 가장 큰 한인교회가 되었다. 1975년에 임종덕비서관을 장로추대를 했으나 자신이 장로 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장로학과 장로란 책 두 권을 필독하고 부족하다고 사양했다.

미국 대통령 3대에 걸친 안보비서관

함께 일한 헨리 키신저가 국무장관이 되어 미, 중 외교에 전념하여 순조롭게 이루어졌는데 1974년 양아버지가 83세로 서거하고 화이트장군은 재산을 임종덕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하바드대학과 모교인 미 공군사관학교에 기증했다.

임종덕비서관은 닉슨, 포드, 카터,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안보비서관을 잘 수행했다.

중국과 친선경기로 시작한 핑퐁외교도 1979년 양국 간 국교가 수립되었다.

미군철수를 고집하는 카터 대통령과 결별

카터대통령이 주한미군을 4,5년 사이 완전 철수하겠다고 할 때 주한 미군사령부참모장 싱글러브소장이 철군반대를 주장했다. 이틀 뒤 519일 카터대통령을 싱글러브장군을 소환하고 참모장 직에서 해임시킨 후 카터대통령은 임종덕비서관에게 당신의 조국이란 입장을 떠나서 나의 철군계획과 한반도 정책에 대해 말해보시요하여 현재 4만여 미군이 주한하여 북한이 도발 못하며, 한국은 경제부흥과 더불어 미국이 바라는 민주주의국가로 성장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 카터가 국가안전보장 이사회에서 과거 월남전에서 도망한 도망병을 전부 사면하라는 지시에 아무도 말 안할 때 장군 진급심사를 두 달 앞둔 임종덕은 싱글러브장군과 같이 불이익을 받을 줄 알면서도 전투 중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친 자를 대통령이 사면하면 앞으로 전쟁터에서 누가 미국을 위해 생명 바치겠냐고 했다.

임종덕은 대통령비서관이 걸림돌이 되어 결례가 되므로 자진해서 자리를 옮기겠다고 건의하여

백악관을 떠나면서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발길은 교회로 향하고 텅 빈 교회에 들어가서 모처럼 하나님께 긴 시간의 감사기도를 드리고 1986년 육군대령을 예편하면서 LA동양교회 장로가 되었다.

미국 육사의 교과서 주인공

6.25 당시 밥을 얻어먹지 못하여 물배를 채우려고 종로구 내자동 우물가를 찾아가서 허기에 지처 힘없이 누어있던 임종덕 아이를 6.25 타임즈 종군기자가 찍은 사진이 유명한 풀브라이트 종군기 자상을 수상한 사진 우물가의 소년이다.

임종덕 소령은 당시 영화 제작사로부터 기막힌 소재를 제공한 대가로 당시 15만불을 받았고 또한 미국 육군사관학교는 임종덕의 수용소 탈출과 15일간의 정글 생활에서 살아나온 과정을정글 탈출기란 책으로 만들어 육군사관학교 정식 교과서로 사용했다.

 

2019-06-17 17:01:23
이 게시물을 공유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