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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층 대학졸업자 세계최다국민이 안보맹이라니!
 lsh3508 2019-07-12 15:05:31  |   조회: 186

대한민국의 촛불세력 집권 후 사회 현상

 

-파괴적 소수가 나라를 접수하니, 창조적 소수가 이에 영합하고, 이기적 다수가 부화뇌동하여 악의세력인 김정은 도당까지도 한핏줄/우리끼리란 정서로 껴안으려는 차각에 빠져 있다. 판문점/평양/싱가폴 선언이 이들 파괴적 소수와 이기적 다수의 결합과 승리를 보장할 대의명분이라고 오인한다!

 

어느 집단이든 그 집단을 (1)현상유지하려는 세력과 (2)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세력과 (3)아예 해체해 버리려는 세력이 있다. 3개 세력을 각각 이기적 다수 창조적 소수 그리고 파괴적 소수라고 일컫는다.

 

이기적 다수는 곧잘 보수주의자로 불리는데,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는 서로 원수지간이지만 다투어 진보주의자로 불리길 원한다. 특히 파괴적 소수가 그러하다. 그러나 그 뒤를 따르면 가면 갈수록 신기루만 아른거리다가 이윽고 수렁으로 빠지고 벼랑에서 떨어지고 골짜기에 갇히고 우물에 빠진다. 실은 파괴적 소수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 퇴보주의자이고 악의 세력이란 말이다. 이 양자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양항대립적 가치가 공존하는 정치 게임을 벌리고 있으면서, 불의와 악을 선과 정의로 포장하여 과도합리와 내지 과잉동조하는 대민 심리전의 명수이기도 하다.

국가 지도자는 주로 이기적 다수 즉 범상한 무리 중에서 나온다. 창조적 소수가 천신만고 끝에 새로운 사회나 국가를 건설하면, 그 다음에는 이기적 다수가 더 이상 이를 발전시키지 않고 기득권유지와 현실안주로 눈앞의 쾌락을 즐기려 함으로 위장평화가 유지되기도 한다. 쾌락은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를 전제로 추구된다. 빛 좋은 개살구같이 지도자란 인간도 이런 와중에 자기최면에 걸리고 자신을 거울에 바로 비쳐보지 못한다. 창조적 소수 마져 인간의 3대 속성인 양심과 자아 그리고 본능을 균형조화 통합시키지 못하고 어느 한곳에 탐닉되고 만 나머지, 악과 불의에 마비되어 파괴적 소수와 동침하가 마련이다. 한편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가 동시에 출현하여 현실에 부화뇌동하는 이기적 다수를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발악하지만, 후자의 승리로 끝나는 어부지이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이기적 다수가 지배하는 무사안일/위장평화 시대가 길면 길수록 혼란과 모순의 현실타파를 지향하는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가 잉태/발육/성장/개화하는 기간도 길어지는데, 이 불안정과 불확정의 시기에 새로운 사상과 기술이 잠재해 있다 폭발 승화 할 태세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최후 승자가 창조적 소수자냐, 파괴적 소수자냐에 따라 국가의 창조적 혁신이냐 파괴적 퇴행이냐가 판가름 날 것이다.

근대화를 먼저 이룩한 서양의 다수 국가들은 창조적 소수가 사회 지도층을 형성하여 국가발전과 국력신장을 견인함으로서 현대국가를 성취하였던 것이다. 이런 국가를 닮아 대륙의 범상한 다수국도 나날이 발전하여 한 세대만 지나면 이전 세대의 창조적 소수의 수준으로 올라선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로 이어지는 산업화 시대의 유럽이 바로 그러했다. 중심은 영국이었다. 독일과 거의 같은 시기에 신흥강국 미국이 내전을 계기로 파괴적 소수를 궤멸시킨 후 씩씩하게 그 뒤를 따랐다. 이 때 서구와 미국은 창조적 소수의 지도자들이 자신들보다 앞선 창조적 소수를 적극 후원했는데, 그들이 바로 과학기술자와 경제인이었다. 오늘날도 과학기술자와 경제인 중에 창조적 소수가 제일 많다.

갑작스러운 발전에는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이기적 다수가 미처 이해 못하고 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허점을 파고드는 것이 파괴적 소수의 달콤한 유토피아 유혹이다. 공산주의의 최종단계는 지상낙원과 무정부/무국가를 표방한다. 유럽의 후진국가였던 독일이 압축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파괴적 소수가 국가 권력을 잡게 이르렀다. 이들이 일으킨 재앙이 바로 양차 세계대전이다. 이 어둠의 세력에 독일보다 더한 압축성장의 길을 달리던 일본도 끼여 덜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세력이란 파괴적 소수는 2차대전 후에 한때는 세계의 약 절반을 장악했다. 소련과 중공과 동구와 몽골과 북한이 바로 유토피아를 내건 파괴적 소수의 중추세력이다. 탈냉전시대 도래와 함께 공산주의 이론은 진부화되고 지구상의 절대다수 국가가 신세계질서의 공유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협력적 국제안보를 수용하는 대세변화가 초래 정착된 것이다. 파괴적 소수가 맑스의 병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발전5단계설을 금과옥조의 진리라고 전제하여 이기적 다수를 세뇌시킨 바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초반의 오늘, 전지구상에서 공산주의 이론은 번지 없는 주소의 우편물과 같이 아무도 수용 않는 폐기처분 대상이 되고 있다. 더 이상 이기적 다수도 부회뇌동하여 공산주의에 현혹 도취될 수 없도록 합리적 사고와 이성적 판단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너무도 황당한 일이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벌어지기 시작했다. 창조적 소수가 앞장서고 이기적 다수가 신바람을 내서 불과 한 세대 만에 이룩한 근대화의 압축성취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막상 최대의 수혜자인 이기적 다수가 이해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입에 꿀을 바른 파괴적 소수가 그들에게 유토피아를 속삭이기 시작하자 이에 말려들고 만 것이다.

이들이 바로 무뇌인간 집단인 한국의 좌파세력이다. 그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란 양대 공산주의 거물 주도의 전형적인 파괴적 소수로서 햇볕정책을 금과옥조처럼 믿도록 민중을 세뇌시킨 다음 집권 10년간 절대다수 국민을 이기적 다수로 포용하여 학술계와 문화계를 교두보로 선점하였다. 집권기간 중 홍위병이나 다름없는 전위대인 전대협과 한총련을 앞세우고 그 본대인 민노총이 핵심이 되어 이른바 촛불혁명에 성공하여 문재인이 재집권케 됨으로서 적폐청산이란 미명하에 철두철미한 반대세력 진멸작전으로서의 정치보복을 최고우선 과업으로 시행하고 있다. 국가의 입법/사법/행정을 모조리 김대중과 노무현의 아류인 문재인이 특정지역 연고세력을 대거 국가요직에 등용 포진시켜 파괴적 소수의 선봉역할을 담당시키고서 고려연방제 통일을 위한 진격에 총 매진하고 있다!

시대착오적인 공산주의 신봉세력으로서 이들 파괴적 소수가 대한민국을 완전무결하게 점령 장악하고 말았다. 가장 뚜렷한 망국정책은 안보말살책동이다. 평화와 번영이란 미명하에 이기적 다수를 언론이 무차별새뇌시킴으로서 문자 그대로 惑世誣民病國殃民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휴전선(MDL/NLL)을 무장해제시키고 국군을 무력화시킨체 남북간을 고속도로와 철도로 연결공사를 하여 적의 기습남침과 단기 난폭전을 보장함으로서 2천만 인구 밀집지대인 수도권 주민을 개전초기에 인질로 전락시켜 항복의 백기를 들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직접 핵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를 일언반구도 한바가 없었음에도, 북핵현상동결/주한미군철수 카드를 미국과 북한간에 성사시키려고 제2차 미북정상회담을 앞두고서 김정은 십부름꾼 노릇으로 온갖 비굴한 추태를 국내외에서 연출하고 있는 진짜 파괴적 소수의 두목이 바로 문재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이기적 다수가 문재인과 김정은이란 남북의 파괴적 소수의 두 두목이 짜고 치는 화투 놀음에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들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고 완전히 홀린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 대한민국호는 암초가 깔린 급류 속으로 정신없이 야암항해를 하고 있는 꼴이다. 풍랑속에서 좌초 아니면 파선/침몰이란 최악 사태도래가 불가피한 상황임에도 이를 알리는 경고음이나 적색신호가 안들리고 안보인다. 남북의 파괴적 소수가 서로 손을 맞잡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이며 우리끼리를 외치면서 한핏줄임을 과시하고 있는 이 순간, 이에 공감 동조하는 비급한 이기적 다수의 만행과 역적노릇에도 “I do not care”란 자세를 취하는 다수의 전직고관대작과 유식자들의 망국적 작태 연출이 대세를 이룬다. '설마, 설마'하면서 어리석은 이들은 내년과 후내년의 총선이나 대선에서 민의가 작동하거나 하나님이 보우하사 정권교체가 꼭 성취된다는 자기희망적 망상에 도취해 있다. 이미 창조적 소수와 파괴적 소수를 가릴 줄 모르게 된 한심한 이 나라의 이기적 다수인지라 정치무관심세력이나 냉소주의자로 변질되었거나, 상업주의언론에 의해 마취되어 극단적 이기주의자 내지 현실도피자로 전락된 나머지 학습된 무기력 상태(learned helplessness)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판이다. 설상가상으로 자중지 난으로 지리멸렬된 현 야당속에도 파괴적 소수가 보호색으로 위장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 우리를 더욱 실망시킨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악의 세력과 싸울 양대 지주인 1천만 기독교/교회 세력과 2천만 참전/보훈/향군단체의 대세가 파괴적 소수의 회유와 협박으로 저항의지를 상실한체 무기력해 지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2019-07-12 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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