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 있는 한정식집 ‘한뫼촌’은 내가 좋아하는 한정식집이다. 맛은 물론이고, 건물에 역사성도 있다. 건물은 작은 한옥인데 무용가 최승희의 생가다. 게다가 가게 이름에 ‘뫼’가 마음에 든다.‘뫼’는 ‘산(山)’을 의미하는 한국 고유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사라져버렸다. 한국인은 ‘뫼에 오른다’고 말하지 않고 ‘산에 오른다’고 말한다. 사라져버린 순수 한국어를 아끼는 뜻으로 그 가게에 다닌다.‘강(江)’이라는 말도 그렇다. 흐르는 물을 모두 ‘강’이라고 하는데, ‘산’과 ‘강’ 모두 한자어로, 원래는 중국어다. ‘강’을 뜻하는 한국
시골살이를 해 본 사람들은 안다. 겨울방학이면 날마다 나무를 해야 했다. 겨울땔감을 위해 고사리 손이 보태진다. 갈퀴질을 하거나 삭정이 뿌리를 쪼아 망태에 메고 집에 오는 길, 집집마다 밥 짓는 아궁이 굴뚝에 연기가 피어난다. 외양간이 딸린 아래 채 소죽 끓이는 일이 맡겨 질 때마다 매캐한 연기를 맡으며 아궁이에서 시뻘겋게 타 오르는 불꽃의 추억. 생각조차 멈추게 한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만했다. 시쳇말 그대로 ‘불멍’의 시간.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군불을 때고 산다. 귀찮고 성가신 일이지만 뜨끈뜨끈한 방바닥을 등에
2006년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했습니다. 한식 조리법을 배우면서 한국인 가족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김도군 씨는 부인과 11살, 9살짜리 딸을 뒀습니다. 이 가족에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한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김 씨는 필자의 기분을 잘 이해했고 어려움과 고민을 알아채고 해결해줬습니다. 자신이 일본에서 생활한 경험을 얘기하면서 필자의 외로움을 잘 다독여줬습니다. 그는 종종 전화를 걸어와서 "밥은 먹었냐?" "밤에는 춥지 않냐?"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플 때는 병원에 함께 가줬습니다. 한국 생활에
정월 대보름이다. 우리의 세시풍속은 설날부터 정월 보름까지가 가장 풍성하다.세배, 연날리기, 윷놀이, 달맞이, 널뛰기, 나반걸래(20여집의 찰밥을 얻어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풍습), 부럼깨기, 귀밝이술 마시기 등. 이들 풍속은 대부분 새해에 액을 막고 무병장수를 빌고 이웃과 사이좋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이다. 코로나가 오기 전 지리산 지자체는 정월 대보름 달집 태우기를 큰 행사로 치렀다. 잔칫상을 차려 보름달 아래 소원을 빌며, 달집을 태우고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춤도 췄다. 또 이날은 지역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자리이자 선출직
대통령선거 때마다 킹메이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번에는 킹메이커라는 영화까지 상영 중이다. 일본에서도 수상이 탄생할 때 무대 뒤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능한 막후정치인이 존재한다.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킹메이커는 김윤환이다. 조선일보 도쿄 특파원 출신으로 70년대 후반 정계에 입문했다. 노태우와 경북고 동기로 전형적인 TK정치인이다.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탄생시켰다.그는 일본통으로 알려져, 나도 자택에서 보신탕을 접대받은 적이 몇 번 있는데 그에게 들은 역사적 비화가 기억난다.여야 3당 합당에서 노태우의 후계자로 김영
최근 이재명 대선 캠프는 ‘비동의 강간죄’ 입법을 주장하는 20대 청년 박지현 씨를 ‘여성위원회 디지털성범죄근절 특별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이에 윤석열 캠프 이명준 양성평등 특별 위원장을 포함한 많은 이대남들이 ‘역시 민주당은 2030 청년들을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다’며 분노를 표했다. 도대체 비동의 강간죄가 무엇이길래 이대남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것일까.비동의 강간죄는 ‘상대방의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인 성관계’를 한 사람을 강간죄로 처벌하자는 법이다.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는 현행 강간죄가 피해자 보호에 충분
한국인은 진정 외국인을 싫어하는 걸까요? 인종차별적인 속성이 있는 걸까요? 내 친구 모리스는 피부색 때문에 취직을 못 한 적이 있습니다. 전화로 그 이유를 통보받았다고 합니다.또, 외국인 강사가 있는 사무실에 들어오면서 나이 많은 한국인 상사들은 먼저 인사를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합니다. 그 상사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1년 여 한국에 살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의 상냥한 미소가 모두 위선이었던 걸까요? 왜 그들은 감정을 속였던 걸까요? 어느 날 버스에서 내 옆자리가 비어있는데도 다른 승객이 와서 앉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
한국에서 약 40년간 생활하면서 음식에 관한 책도 몇 권 냈는데 최근에는 이라는 책을 냈다. 한국 음식문화를 둘러싼 수수께끼가 있다. 한국의 중국요리는 왜 그렇게 맛이 없는 것일까.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의 공통된 의문이다. 일본의 중국요리는 중국인도 높게 평가하지만, 한국의 중국요리를 높게 평가하는 중국인은 없다.한국은 지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중국과 관계가 깊다. 조선은 중화문명권의 우등생을 자처하며 일본을 아래로 내려봤다. 그런데도 생활문화의 기본인 음식에 있어서는 중국의 영향이 느껴지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애틋하게 유혹하는 목소리를 가진 가수 ‘에바 페론’ 하면 제일 먼저 남미의 공산독재자 후안 페론의 퍼스트레이디이자 성녀, 무상복지의 포퓰리즘을 연상하게 한다. 필자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아르헨티나는 우리나라의 정반대 쪽에 위치한 팜파스라는 대초목이 펼쳐진 세계 7위의 풍요로운 농축산국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제3세계 사회주의 포퓰리즘이 휩쓸고 간 재난의 빈국, 수도 부에노아이레스에는 벌건 대낮에 날강도가 설치는 치안 사각의 가난뱅이 나라로 전락했다.예술이 권력이 되
명징한 겨울날은 유달리 하늘이 파랗다. 능선이 하늘 아래 선명하게 펼쳐져 있고, 숲에 들면 나무들 속속들이 자신을 보여준다. 각자 참 모습은 꾸밈없고 청명하다. 그런 날, 산청 남사마을에 사는 이호신 화백의 ‘지리산 생활산수’ 그릴 장소를 안내하기로 했다. 오늘은 하동의 4계 가운데 겨울을 그리기로 한 날. 시키지 않았고 끝낼 날 언제일지 모르는 이화백의 ‘지리산 생활산수화’는 5개 시군의 4계절 생태와 역사문화, 삶의 모습을 담는 것. ‘아무도 주목하지 않으니 지리산에 사는 빚을 갚는 마음으로….’지리산은 한 문화권이라는 특질 아
한국에서 보낸 첫해는 사계절의 변화로 천국을 거니는 것 같았다. 한국인 친구들도 사귀었다. 필자는 그때서야 입국 첫날 공항에서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고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여성과 새벽 4시에도 안전하게 혼자 걸어 귀가하는 여성의 일상도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그리고 보통의 보수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분석하기 전에 1년 동안 한국을 어떻게 느꼈는지 먼저 말해야 하겠다. 여기 한국의 자연, 즉 땅 하늘 그리고 바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만약 어떤 이름의 신을 믿는다면 또는 초자연적인 힘을 믿는다면, 독자는
#설 차례상한국에는 아직도 중국식과 한국식이 섞여있는 유교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설날 상차림도 그렇고 어른들에게 자리 양보 하는 미덕도 참 보기 좋다. 설날 홍동백서식의 제사상차림은 중국에서는 많이 없어져서 제대로 된 차례상은 한국 가서 배워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한국에 시집온 한 여교수는 남편이 종갓집 종손이라 설날 차례상을 12개의 상으로 나눠서 차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은 설날이 여성들에게는 ‘노동절’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나 보다. 중국도 제사를 모시지만 이 정도로 엄격하지는 않다.#자리 양보대중교통 이용할 때, 중국
문재인 정권에 대해 외국인 기자로서 기억에 남는 것을 써 본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언제나 뉴스가 되는데, 특히 일본인 기자로서 잊을 수 없는 것이 몇 개 있다.그중 하나가 2018년 8.15 광복절 기념 연설이다. 친일의 역사를 부정하고 독립운동의 역사를 칭송하며 "광복은 결코 외부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라 말했다.이 말에 놀랐다. 한국의 공식 역사 인식과 달라서다. 교과서에서는 ‘광복은 연합국의 대일전쟁 승리에 의해 초래됐지만, 동시에 우리의 끈기 있는 독립운동의 결과이기도 하다’고 가르쳐 오지 않았는가.이를 갑자기 ‘외부로
토요일 밤 이태원에 갔다. 버스에서 내렸는데 거리는 인파로 북적였다. 모든 것이 거대한 혼돈처럼 보였다. 작은 악마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곳은 정말 재미있을 거야. 여기는 중동에서 온 남자의 천국일 거야."나는 호텔을 찾을 수 있는 곳을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했고, 한국인에게는 물어보면 안 되었다. 나는 아직도 공항에서 친절을 베풀어 준 그 여성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아있다. 나는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좀 도와줄 수 있나요? 며칠 묵을 숙박시설을 찾고 있는데요." 그의 이름은 모리스라고 했다. 큰 키에 운동
한국에 산 지 벌써 15년이 됐다. 내가 처음 한국 땅을 밟은 것은 2005년 늦가을이었다.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줄 그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인터넷으로도 접하지 못했다. 내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친구 제임스가 알려준 지식이 전부였다. 그는 "한 1년 정도 잘 먹고 지내기에 딱 좋은 곳이야." 라고 말했다. 모험을 떠나야 하겠다는 느낌이 왔다. 나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아부다비를 떠났다. 아부다비는 모든 것이 편리하고 잘 정비되어 있고 노동환경도 좋은 곳이었다.내가 왜 지구 동쪽에
한국에 너무 오래 살아서 이미 한국에 많이 동화된 편이다. 그래서 한국이나 한국인의 장점과 단점을 논하기란 마치 자국민의 장점과 단점을 논하는 기분이랄까, 여하튼 일단 역할에 충실해 보기로 했다.대학 생활을 할 때 너무나 낯선 ‘음식 나눠 먹기’ 문화를 체험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한국인 친구들과 함께 식사해야 할 분위기였지만 한국문화에 익숙하지 않았을 때라 썩 달갑지는 않았다.공교롭게도 점심 메뉴로 다 같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를 주문하게 됐다. 그 한식 식당은 큰 편이었는데 우리 일행에게는 각자 음식 그릇에 따로 찌개를 끓여
한국의 전통요리였던 개고기 요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국정서’를 즐기고 싶은 외국인 기자로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것도 시대의 흐름이니 어쩔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수많은 ‘외압(外壓)’을 견뎌왔던 전통문화가, 국내의 폭발적인 반려견 붐이라는 ‘내압(內壓) ’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점이 흥미롭다.한국의 반려견 붐은 놀랄 정도다. 그 상징이 ‘반려견’이라는 말의 등장이다. 개(동물)는 이제 사람의 소유물이 아닌, 사람의 반려(파트너)이기에, ‘애완견’이라는 말은 개에 대한 차별인 것이다. 한국 언론에서 어느샌가 ‘애완’이
한국에 공사(公私)를 구분하라는 말이 있다. 일본에서는 공사를 혼동하지 말라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같은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근본적 사고방식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공과 사가 원래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혼동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며, 한국에서는 원래 경계가 애매하기 때문에 확실히 구분하라는 것이 아닐까 한다.일본에서 ‘공(公)’은 시간, 공간에 따른 사회적 역할과 같은 개념이다. ‘공’적인 자리에 ‘사’적인 것을 들고 오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업무시간에 개인적인 전화를 받지 않는다. 개인 핸드폰은 사물함에 넣고 일
미세먼지 대신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KF94 마스크를 쓰게 된 지 거의 2년이 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위기 속에서 마스크가 생필품이 되어 버렸다. 국내 완전 접종률이 80%를 돌파했는데도 확진자가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 아이에게 씌워 준 마스크를 언제 벗겨줄 수 있을지 막막하다. 게다가 추가 접종 간격을 3개월로 단축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자가격리 면제 혜택을 준다고 했는데,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10일간 격리해야 된다고 말이 바뀌었다.나는 코로나 이후 네 번이나 격리 생
규칙을 소홀히 하라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규칙 이야기를 하면, 유독 일본이 강조되는 것 같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하고 출발하는 일본 전철·버스가 신기하다는 외국 기사를 많이 봤다. 일본에서는 전철·버스 시간표나 비행기의 이륙시간이나 비슷한 개념이기 때문에 당연히 지켜진다. 이처럼 일본 사회에는 ‘모든 구성원이 규칙을 지킨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는 것을 귀국 후 새삼 깨달았다.오랜만에 일본에서 가족이 운전하는 차를 탔다. 일본은 안전하게 운전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시속 60㎞ 도로에서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