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찬
이범찬

1871년 처음으로 독일을 통일시켰던 재상 비스마르크는 "역사의 문을 뛰쳐나가는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말고 확 잡아채야 한다. 기회를 버려두면 위기로 돌아온다"고 설파했다. 그는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놓치지 말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책무라는 것이다. 독일 콜 수상은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라는 기회의 창이 잠시 열렸을 때 놓치지 않고 낚아채 통일이라는 역사적 책무를 다했다.

우리가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북핵위기는 어디에서 왔는가. 그간 해결할 기회의 창은 열리지 않았던가. 아니다. 기회의 창이 열렸으나 전직 대통령들이 무지하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들 북핵 위기는 지략과 용기 없는 전직 대통령들의 탓이다. 행운은 용기 있는 자의 편이라고 하지 않는가.

지금의 북핵 위기는 역사의 기회를 잡아채지 못하고 놓침으로써 위기로 돌아온 것이다. 김정은은 억제에서 선제공격으로 핵 독트린을 바꾸고 남한을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면서 도발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한미일이 군사훈련을 하는 상황에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대담함을 보이고 있다. 이에 훈련을 마치고 귀항하던 레이건 미 항공모함이 다시 동해로 돌아와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이제 한반도 안보위기는 상시화되는 듯하다.

북한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는 남한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인식한다. 북한 김가(金家) 정권이 존재하는 한 핵 무력을 통한 적화통일 노선은 지속될 것이다. 이런데도 이승만 정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가 평화 평화를 외치면서 북한에 양보하고 지원해 왔다. 미국이 북핵을 해결하고 통일을 도와주겠다는데도 거부했다. 심지어 북한은 핵을 가질 의지조차 없고 핵을 개발하면 책임지겠다며 국민을 속이기도 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사용하려 할 경우 북한의 최후가 될 것"이라고 강력 경고하면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했다. 그러나 실행에 들어가기 직전에 전면전을 우려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의 정밀폭격은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한 대북 공격이 된다. 북한은 미국 군사력 앞에서는 하루 아침 해장거리도 되지 않기 때문에 전면전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최고지도자의 오판과 용기가 부족했다.

1994년 당시 북한은 김일성의 사망으로 붕괴위기에 처해 있었다. 중국은 아직 현대화되지 않아서 미군은커녕 핵을 제외하고 한국군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무기력한 옐친이 제대로 국정을 이끌지 못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미국은 아프간과 이라크의 수렁에 발을 담그기 전이어서 유럽 및 중동 주둔 미군까지 별 부담 없이 빼서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었다. 중국과 러시아 방해 없이 북핵을 제거하고 가장 적은 피해로 통일한국을 세울 수도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 지원금(5000억 원)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내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1·2차 북핵 위기로 세계가 난리 났는데도 일부러 눈을 감고 국민을 윽박지르는 천하태평 같은 소리를 했다. 진정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지와 실태를 몰랐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이고, 알고 이렇게 말했다면 대국민 사기를 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보좌진이 반드시 핵 문제를 짚어야 한다고 간언했으나 핵 문제에 대해서 김정일한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미 재무부의 자금세탁 우선 우려 대상으로 지정된 방코델타아시아(BDA) 자금 반환시 우리가 직접 나서 북한으로 송금을 적극 도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서는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러면서 9·19군사합의를 통해 우리군을 무장해제하고, 자유통일을 위한 핵심 수단인 확성기 방송과 전단살포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이 객관적 근거나 증거, 현실적 가능성이 아닌 신념이나 상상에 따른 기대(wishful thinking)로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대사를 허투루 판단하고, 지레 겁을 먹고 기회를 발로 차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비싼 평화가 이기는 전쟁보다 낫다"는 굴종적 평화를 노래할 때가 아니다. 북한이 실질적 핵보유국이 되어 핵 선제 공격을 하겠다는 이 마당에, 대화와 평화로 윤 정부를 압박하지 말고 엄중한 북핵 위기에 대해 책임감을 통감하고 반성해야 마땅하다. 오늘의 북핵 위기는 북한에 대한 오판과 무분별한 대북지원 그리고 미국의 군사적 북핵 해결을 막무가내로 막은 전직 대통령들의 책임이다. 북한의 핵 개발은 못 막은게 아니고, 평화, 평화하면서 안 막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핵 위기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신의 옷자락을 놓치지 말고 역사적인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위기가 기회이고 그 기회를 놓치면 위기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임박한 7차 북핵실험 이후 전개될 위기 가운데 나타날 수 있는 신의 옷자락을 역사적 기회로 낚아챌 윤 대통령의 훌륭한 지략과 용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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