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1·4 후퇴의 비극
1951년 1·4 후퇴의 비극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20.0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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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0주년 특별기획 24편

1951년 1월 중공군의 공격 목표는 서울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철원과 연천에서 4개 군을 앞세워 서울을 압박했습니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 북방에 방어선을 구축했고 터키 여단과 미 제25사단 그리고 영연방 제27여단 등을 배치했지만 이미 밀리기 시작한 전세를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워낙 병력이 부족해서 1개 대대가 10km 정도를 감당해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중장은 서울이 중공군의 포격권에 들어가고 동부 전선과 서부 전선이 중공군에 의해 동서로 나눠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1월 3일 서울을 포기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1월 4일 서울은 중공군에게 함락됩니다. 1ㆍ4 후퇴로 인구 140만이 모여 살던 한반도 최대의 도시 서울이 텅 비게 됩니다. 서울에 남은 것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들과 환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뿐이었습니다. 리지웨이 장군은 공산군을 피해 남쪽으로 가려고 한강 주변에 모여든 피란민의 행렬을 보고“ 우리 시대의 최대 비극 중 하나가 연출되고 있었다.”며 1ㆍ4 후퇴를 회고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리지웨이 장군은 얼굴을 마비시키는 칼바람 속에서 수십만의 한국인들이 달리고, 넘어지고, 뒹굴면서 빙판을 건너 남쪽 기슭의 꽁꽁 얼어붙은 평지 쪽으로 달아나고 있는 비극적 모습을 보았습니다. 피란 살림과 어린애들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무거운 짐을 실어 나르는 소들도 있었습니다.

◇왜 764만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남쪽으로 피난했느냐?

끔찍한 피란길에서 누구 하나 가련한 이웃을 도와주기 위해 발을 멈추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런 처참한 광경을 보고 리지웨이 장군은‘ 우리 시대의 최대 비극’이라고 한 것입니다. 1ㆍ4 후퇴로 피란길에 나선 사람들은 서울 지역에서만 120만, 전국적으로는 764만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수의 피란민이 뼛속까지 얼어붙는 추위 속에 기약 없이 남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물론 2개월 후인 3월에는 다시 서울을 되찾게 되지만 당시에는 누가 그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런 죽음의 행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인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대체 공산 치하가 어땠기에 그처럼 엄청난 피란민이 죽음을 각오하고 남쪽을 향해 탈출했느냐는 하는 것입니다.

1.4 후퇴 당시 남으로 피난하는 피난민들의 행렬.
1.4 후퇴 당시 남으로 피난하는 피난민들의 행렬.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미래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6ㆍ25 전쟁에서 팔다리를 잃은 윌리엄 웨버(William Weber) 미 육군 예비역 대령은 “6ㆍ25 전쟁이 20세기를 나누는 분기점이 된 전쟁이라는 점을 많은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2차 세계 대전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전쟁이라면, 6ㆍ25 전쟁은 세계를 공산주의로부터 구했던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엔 수많은 목숨과 웨버씨처럼 팔과 다리를 절단해내는 희생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럴 때 미래의 축복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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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판]

The Tragedy of the Retreat on January 4, 1951

In January 1951, the Chinese army’s objective was the capital city of Seoul again. They sent 4 army corps units through Cheol Won and Yon Chon toward Seoul. The ROK army and the U.N. forces set up their defense line in the north of Seoul with a Turkey Brigade, the 25th Division of the U.S. Army, and the 27th Brigade of England, but they were not able to change the course of the war.

There were not enough soldiers to stop the onslaught of the Red Chinese Army that a battalion had to cover 10 km of the defense line. General Matthew Ridgway, Commander of the U.S. 8th Army was concerned about the bombardment into Seoul by the enemy and also the Allied forces being split into the west and the east fronts by the Chinese. He ordered evacuation of Seoul on January 3rd.

The Chinese occupied Seoul on January 4th. We called it the 1.4 Retreat. The Capital City of 1.4 million people became completely empty all of a sudden after the 1.4 Retreat. General Ridgway watched the refugees near the Han River heading to south running away from the Red Chinese army, and lamented that it was the biggest tragedy of our lifetime. That was true.

Gen. Ridgway witnessed the tragic scene when hundreds of thousand refugees were running, falling, and skidding on the frozen river and fields in sub-freezing temperature that cut into their faces. There were pull carts packed full with household items and children.

Oxen pulling the carts, people pushing the carts. On the icy roads, everybody was for himself. Nobody gave a hand to help each other. That was what Gen. Ridgway called, “the biggest tragedy of our lifetime.” About 1.2 million people fled from Seoul during the 1.4 Retreat, and 7.64 million refugees fled nationwide. Millions of refugees were moving toward south in a freezing weather, so cold even the bones felt like frozen.

Seoul was recovered quickly in two month, in March 1951, but nobody knew that when they were running away. You have to learn from history and tragedy. If you learn and remember what happened during the Korean War, we have a future. If you don’t, we don’t have a future.

There will be only a curse if we ignore the history. Retired U.S. Army Colonel William Weber who lost all his limbs in the Korean War said, “Not too many people realize that the Korean War was a watershed in the 20th century.

If the 2nd World War was to safeguard democracy, the Korean War was to save the world from the communism.” Republic of Korea is what she is now thanks to all the sacrifices like Col. Weber’s and others. We should remember the historical facts. Only then, we shall have the blessings of the future.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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