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게리 디커슨 CEO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게리 디커슨 CEO를 접견하고 있다. /연합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중국 현지공장에 대해 자국 기업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를 1년 유예했다. 당초 국내 반도체업계는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통제 조치 발표로 생산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예상했지만 이번 유예 조치로 한시름 놓은 분위기다. 하지만 반도체, 전기차, 바이오 등 첨단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살아있어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앞서 미국은 지난 8일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의 판매를 제한하는 내용의 강도 높은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 조치에 따르면 18나노(1㎚는 10억분의 1m)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플래시, 핀펫(FinFET) 기술 기반의 반도체 생산설비를 중국에 판매·반입할 경우 미국 정부의 허가가 필수적이다. 특히 반도체 생산공장이 중국 업체 소유인 경우 ‘거부 추정 원칙’이 적용돼 수출이 사실상 전면 금지된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미국의 이 같은 조치가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속도가 경쟁력인데, 미국 정부의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또 심사 과정에서 기술 유출의 가능성도 산재해 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 반도체산업을 정조준한 것이지만 중국에 생산공장이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수출통제 조치가 발표된 이후 지난 12일 SK하이닉스는 미국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KLA로부터 반도체 장비 납품 중단 예고를 통보받았다.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더구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DR5 등 차세대 D램과 낸드플래시 양산을 위해 중국 생산공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이 급격히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초격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쟁국보다 먼저 차세대 반도체 양산에 돌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차세대 반도체 장비 반입은 필수적이다.

특히 SK하이닉스는 DDR5 양산의 핵심인 EUV 노광공정 도입을 앞두고 있어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UV 노광공정은 빛을 이용해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이다. 이를 DDR5에 적용하면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더욱이 생산이 늘어나면서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쑤저우에서 반도체 후공정인 패키징 공장을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도 전체 D램 생산량의 50% 이상을 우시에서 양산하고 있다. 지난해 인텔로부터 인수한 낸드플래시 공장도 다롄에 있다.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가 그대로 시행됐다면 대부분의 메모리 반도체를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큰 타격이 불가피할 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울러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미국 반도체업계가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제품 양산이 시작되는 오는 2025년부터는 미국이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미치는 영향력도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반도체업계의 초격차 전략에 비상등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 미국의 한시적 유예 조치는 자국 반도체업계의 이익과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가장 중요한 고객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생산공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앞장서 장비 수출을 막는다면 큰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국내 반도체업계에서는 이번 유예 조치로 반도체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한시적 유예기간이 끝나는 1년 후의 상황도 미중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지금과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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