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KC국제문학상 받은 나카니시 스스무 토야마현 문학관장

나카니시 씨는 일본고전문학의 꽃 <만요슈>를 백제어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만요슈에서 딴 새 연호 ‘레이와’의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연호의 창안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 명망가에게 주어지는 영예다.

일본문학가 나카니시 스스무(中西 進·사진) 씨에게 제13회 창원KC국제문학상 및 상금 5000 달러가 주어졌다(김달진문학관 주관). "만요슈(萬葉集) 연구의 탁월함"을 인정받은 것이다.

7~8세기 일본 시·노래 4523편이 수록된 <만요수>를 백제 언어의 연장으로 해석해 낸 것에 대한 평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미 일본에서 주요 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창원KC국제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제정된 상으로, 뛰어난 성취를 보인 시인·작가에게 주어진다.

그의 만요슈 연구성과가 보여준 "동아시아 시야에서 행한 비교문학적 연구의 확장성", "학문적 견실함과 열린 융화적 자세는 국경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귀감"됨이 선정 이유로 언급됐다. 도쿄대학에서 일본 고전문학을 전공한 후 대학교수를 지내다 은퇴한 나카니시 씨는 현재 토야마현(富山縣) 문학관 관장으로 있다(高志の國文學館). 2019년 새 연호(年號)의 창안자로도 유명하다. 당대 최고의 명망가 지식인이란 뜻이다. 일본이 7세기 중반 독자적 연호를 쓰기 시작한 이래 248번째 연호 ‘레이와’(令和)를 나카니시 씨가 만요슈에서 따왔다.

나카니시 씨에 따르면 만요슈의 주요 작가 ‘야마우에노 오쿠라’(山上憶良 660~733)는 백제 멸망 후 부친과 함께 건너온 귀화인이다. 백제의 성씨 옥(玉)이 ‘오쿠’로 발음되며 변형된 이름이라는 것이다. 만요슈를 고대 한반도 언어로 읽을 수 있다는 주장이 처음은 아니다. 이영희(李寧熙 1931~2021)가 쓴 <또 하나의 만요슈>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1944년 귀국해 경남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고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후 한국일보 기자 시절 <또 하나의 만요슈>를 집필했다.

이 씨는 만요슈를 일본식 한자음·훈독의 ‘신라어’에 기반해 풀어낸다. 만요슈의 일본어를 신라어의 향가 이두식 한자표기로 보는 주장이다. 이 씨가 원어민 수준의 일본어와 옛경남방언을 구사한다는 게 큰 강점의 하나였을 것이다. 1989년 발간한 이 책은 종래의 학설을 뒤엎으며 일본에서 100만 부 넘게 팔리는 등 선풍을 일으켰다. ‘또 하나의 만요슈’는 1990년대 한국에서 일간지 연재 후 <노래하는 역사>로 출간된 바 있으나 절판된 상태다. 고대한국어와 만요슈 관계를 계속 연구할 사람이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말년의 이 씨가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이 사랑하는 자국 최고(最古)의 시가집을 나카니시 씨는 백제어로, 이 씨는 신라어로 해석해 낸 셈이다.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의 이민은 일찍부터 있었으며, 7세기 백제 멸망 후엔 한층 대규모로 이뤄졌다. 인류사에 흔히 벌어져 온 자연스런 현상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의 흔적을 당연히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한반도는 삼국통일 이후 조선을 거쳐 엄청난 언어적 변화를 겪었다. 현대한국어의 맹아가 등장한 것은 20세기 들어서의 일이다.

일본의 만요슈와 고대한반도 언어와의 관계란 문제의식 자체로 벌써 흥미진진하다. 그 뿐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본 황실의 제사에 현대 일본인들이 알아 들을 수 없는 정체불명의 문구가 사용되며 한반도 남부 방언으로 뜻이 통한다는 지적 또한 그렇다. 한반도에서 잊혀진 고대의 흔적을 확인하며 인류문명의 전파 양상에 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인접 국가와의 언어·습속적 접점이 과거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줄 수 있다.

이른바 ‘국사’ 즉 지나치게 자기 중심으로 ‘미화’ ‘강화’된 역사, 그로 인한 편견의 극복에 매우 유효할 것이다. 이런 연구에 대해 만일 과도한 자부심을 느끼는 한국인이나 자존심의 상처를 받는 일본인이 있다면, 모두 불합리하긴 마찬가지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민족이 형성되기 이전의 일을 ‘민족주의’에 매여 반응한 결과일 터이기 때문이다.

만요슈 연구의 일인자로 꼽히는 나카니시 씨의 만요슈 해설집. /아마존 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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