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때린다…"우크라 기동전에 러 속수무책"

도네츠크주 리만에 방치된 러시아군 전차 잔해. /EPA=연합
도네츠크주 리만에 방치된 러시아군 전차 잔해. /EPA=연합

우크라이나 전쟁이 9개월째에 접어든 가운데 일선 지휘관의 재량권을 강조하는 우크라이나군이 옛 소련식 '톱다운 의사결정'을 고수 중인 러시아군을 전술적으로 압도하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크라이나군 지휘체계의 경우 불확실성이 큰 전장 환경에서 일선 하급 지휘관이 자율적 판단을 내리도록 권장한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적군의 취약점이 파악되면 즉각 찌를 수 있도록 현장에서의 즉각적 의사결정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반면, 러시아군은 옛 소련 시절과 마찬가지로 모스크바의 최상층부에서부터 몇 단계를 거쳐서야 명령이 전달되는 구시대적 지휘체계를 지닌 탓에 일선 부대의 자율성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다고 WSJ은 지적했다.

이에 따른 차이는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동부 전선에서 대승을 거둔 데 이어 남부 헤르손주(州)에서도 러시아군 방어선을 뚫어내는 과정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평가했다.

우크라이나군은 8월부터 크림반도와 이어지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부 헤르손 방면에 대한 대대적 공세에 나설 의향을 내비쳤고, 러시아는 이에 대응해 남부전선에 숙련병과 장비를 집중 배치했다.

그러나, 정작 우크라이나군의 공세는 동부전선으로 향했다. 남부로 병력이 빠져나가 취약해진 러시아군 방어선을 기습적으로 공격해 1만㎢가 넘는 영토를 되찾은 것이다.

체계적인 후퇴에 실패한 러시아군은 대량의 장비와 물자를 버려둔 채 달아났고, 노획한 전차와 자주포 등으로 전력을 보강한 우크라이나군은 이제는 남부전선에서도 러시아군 점령지를 야금야금 수복 중이다.

우크라이나군은 기동력과 정보우위를 앞세워 가시거리 바깥에서 러시아군을 타격해 움직임을 제한하고 보급을 끊어 고사시키는 전술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서방이 제공한 군사첩보와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활용해 현장 지휘관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러시아군의 위치와 전장 상황 등을 확인하며 약점을 공략할 수 있었던 덕분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프랑스 전략연구재단(FSR) 소속 프랑수아 에스부르 국방고문 등 일부 전문가는 우크라이나의 전술이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 기갑부대가 펼쳤던 기동전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반면, 러시아군은 인터넷은 물론 휴대폰조차 터지지 않는 환경에서 통신거리가 수㎞에 불과한 무전기에 의존 중인 까닭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 싱크탱크 매디슨 정책포럼의 시가전 전문가인 존 스펜서는 "러시아는 소모전을 원했다. (수적 우세를 활용해) 대형을 이룬 채 집단으로 충돌하길 원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은 그렇게 해주질 않았다"고 진단했다.

러시아군 지휘체계상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힘들다는 점은 이런 전술에 대한 대응을 더욱 어렵게 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엘리엇 코언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은 "(러시아군은) 큰 결정을 내릴 능력은 있지만 결코 민첩한 군대라고는 말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우크라이나 국립전략연구소의 미콜라 비엘리에스코프 연구원은 "우리(우크라이나군)에겐 제공권도, 화력우세도 없었다"면서 "우리는 적절한 상황과 러시아군의 병력분산, 물자부족, 지형을 이용하는 것 외엔 가진 수단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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