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없는 놈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오늘 아침 귀엽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귀엽지 않다는 거야
자기는 아주 멋지다는 거야

키가 많이 컸다고 말해 줬더니
자기는 많이 크지 않았다는 거야
자기는 원래부터 컸다는 거야

말이 많이 늘었다고 말해 줬더니
지금은 별로라는 거야
옛날엔 더 잘했다는 거야

102호에 다섯 살짜리 동생이 살고 있거든
자전거 가르쳐 줄까 물어봤더니
자기는 필요 없다는 거야
자기는 세발자전거를 나보다 더 잘 탄다는 거야

김개미(1971~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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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경주 솔거미술관에서 한 아이가 그림을 훼손한 사건이 일어났다. 아이는 전시관 한가운데 전시된 작품 위에 드러눕기도 하고, 미끄럼틀인양 미끄럼을 탔다. 아이의 이런 모습은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 작품은 통일신라시대 최고 명필 김생의 글씨를 박대성 화백이 모필한 대작이었다. 미술관은 그 작품을 천장부터 바닥까지 길게 늘어뜨려 전시했다. 작품이 훼손된 소식을 들은 노(老) 화백은 한 걸음에 달려와 탄식했지만, 미술관 관계자들에게 아이와 부모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고 당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 눈에도 그게 미끄럼틀같이 보이더라고."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 하나가 모래장난을 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아이는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 다가가 "너 누구니?" 하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모래장난을 멈춘 뒤 고개를 들고 필자를 빤히 쳐다보고는 "나야 나, 나라니까"하고 말했다. 필자는 그때 문득 구약성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양치기 모세가 불붙은 떨기나무를 보며 그 존재를 물었을 때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Ehyeh asher ehyeh)"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번역하면 "나는 나다"라는 뜻이다.

"너 누구니?" 하는 물음에 "나야 나, 나라니까"라는 대답은 천진무구한 어린이와 신만이 가능한 대답이다. 어린아이 마음이 되지 않으면 천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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