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태홍, 자유민주국가 수호 위해 고귀한 생명을 던지신 분"
"봉태홍, 자유민주국가 수호 위해 고귀한 생명을 던지신 분"
  • 한대의 기자
  • 승인 2020.01.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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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우파운동'의 1세대 봉태홍 애국투사 6주기 추모제 열려...
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 6주기 추모제 열려… "자유민주국가 수호 위해 고귀한 생명을 던지신 분"

▲ 15일 파주 용미리 추모의 숲 1묘역, 애국우파운동가 1세대인 고(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를 기리는 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The자유일보 한대의 기자

오는 18일은 아스팔트 '우파운동'의 1세대, 봉태홍 투사가 우리 곁을 떠난지 여섯해가 되는 날이다.

'자유애국열사들을 기리는 사람들'은 고인을 기리기 위해 15일 오후 봉태홍 투사가 모셔진 파주 용미리 추모의 숲 1묘역을 찾아 그가 생전에 이루지 못한 뜻을 되새겼다.

이날 추모제를 주최한 '자유애국열사들을 기리는 사람들'은 애국우파 운동을 하다 유명을 달리한 사회운동가들을 추모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단체이다. 

추모제에는 봉태홍 투사의 생전 모습과 투쟁 역사를 기억하는 자유우파 진영의 시민운동가들과 청년들이 참석했다. 

▲ 15일 파주 용미리 추모의 숲 1묘역, 애국우파운동가 1세대인 고(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를 기리는 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The자유일보 한대의 기자
▲ 15일 파주 용미리 추모의 숲 1묘역, 애국우파운동가 1세대인 고(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를 기리는 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The자유일보 한대의 기자

이들은 '봉태홍 애국투사 6주기'를 기리는 추모사를 낭독하고 고인의 영전에 그가 피 흘린 헌신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를 헌화로 올렸다. 

추모사는 이계성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연대 대표가 봉태홍 투사의 6주기를 맞으며 올렸다.

이날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운동가들과 자유우파 청년들의 눈에는 봉태홍 투사를 잊지 못하는 그리움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 15일 파주 용미리 추모의 숲 1묘역, 애국우파운동가 1세대인 고(故) 봉태홍 라이트코리아 대표를 기리는 6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The자유일보 한대의 기자

아래에 봉태홍 애국투사 6주기를 맞으며 시민운동가들과 자유우파 청년들이 올린 추모사를 싣는다.   

[봉태홍 애국투사 5주기에 부쳐]


문정권에 의해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의 위기해 처하게 되니 거리의 애국투사가 그리워진다. 
 
봉태홍 투사는 1998년 김대중 좌익정권이 들어서면서 PC통신에서 ‘성산태두’라는 아이디로 김대중정권 비판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좌익세력 척결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아스팔트 애국투사”의 길을 걸었다. 
 
봉 투사는 실향민 2세로 친족들이 모두 공산당에게 학살당해 좌익들에 한이 맺혀 있었다. 공산좌익정권이 들어서자 김대중 노무현정권 퇴출운동에 앞장서면서 거리투사가 되었다.
 
봉 투사는 애국을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고 두려움이 없이 투쟁한 애국자였다. 좌익정권과 투쟁하는 많은 투사들이 있었지만 봉태홍 투사처럼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봉 대표는 보수꼴통으로 매도당하고, 돌팔매질 당하고, 멱살 잡히고, 경찰에 연행되고, 구치소에 끌려가고, 벌금을 물었다. 온갖 중상모략과 수모를 겪어도 묵묵히 애국투사의 길을 외롭게 걸어갔다. 
 
그는 아내가 근근이 벌어오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면서도 항상 비굴하지 않고 투지와 투쟁으로 짧은 생애를 살다간 애국운동가였다. 봉투사는 보수정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좌익세력 척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는 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같은 좌익세력과 목숨을 걸고 투쟁하다 폭력을 당하기도 했고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아스팔트 투사의 선봉장 역할을 했다. 좌익척결위한 애국운동의 현장에는 늘 그가 있었다. 우람한 체구를 갖춘 그는 생긴 것과 마찬가지로, 일당 천의 몫을 했다. 
 
2008년 광우병 폭동 때, 광화문 한 복판에서 좌익들에 멱살 잡히고 끌려 다니면서 목숨 걸고 싸운 사람은 봉 투사뿐이었다. 봉투사가 목숨 걸고 투쟁할 때 구경꾼 노릇하던 이들이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한 자리씩 할 때도 봉투사는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온갖 혜택 받고 권력을 누린 자들이 광우병폭동이 일어나자 모두 몸 사리고 있을 때 봉투사는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다, 대한민국에서 애국운동을 하려면 봉태홍를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아스팔트 애국투사들이 김대중 노무현정권과 목숨 걸고 투쟁할 때 외면하던 자들이 권력에 붙어 한자리씩 차지하고 호의호식하고 있을 때, 봉투사는 아내가 근근이 벌어오는 돈으로 가난하게 살았다. ‘수구꼴통’ ‘보수꼴통’이라는 경멸과 조롱을 당하면서도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않고 한결같이 좌익척결에 헌신했다. 
 
정치에 뜻을 두고 공천을 신청해도 영혼 없는 인간들에게 밀려 그가 낸 공천서류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투쟁하다 폭행당하고, 벌금물고, 감옥가고, 수십개 전과자 딱지가 붙어도 봉투사는 구국의 일념으로 아스팔트투사자리를 지켰다. 
 
무리한 거리투쟁에 병을 얻어 강북성심 병원에 입원했을 때 문병을 갔더니 자기 걱정 말고 반드시 좌익세력 뿌리 뽑아달라고 했다. 독버섯 같은 좌익세력을 내버려 두면 나라를 잃게 된다며 병중에도 나라 걱정을 했다. 2011년 6월 현충일을 앞두고 봉대표는 인터뷰에서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 한 번 못간 게 미안합니다. 어차피 희생이 따르지 않고서는 이 길을 갈 수가 없죠. 생활의 불편은 오래 전에 포기했어요. 그래도 인생이 빵만 가지고 행복할 수는 없는 거잖습니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제 행복입니다.”라고 했다. 유명을 달리하기 1년 전인 2013년에 여름, 어느 기자가 입원 중인 봉태홍 대표를 찾아가 후회되는 일이 없느냐고 묻자 “그동안 아스팔트 생활하면서 집사람, 애들과 같이 외식도 못하고, 그 흔한 해외여행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된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가장을 잃은 봉대표 가족은 어려운 생활 속에서 살고 있는데 돌봐주는 사람이 없이 외롭게 살고 있다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선각자인 봉대표의 예견대로 우익세력이 정신 못 차려 문정권 집권으로 국가가 존망의 위기를 맞고 있다. 봉투사는 정치권을 기웃거리거나 사리사욕 위해 종북 좌익세력과 싸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의 애국운동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오직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6.25와 같은 비극이 더 이상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식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의 삶을 보여주기 위하여 애국투사로 활동했다. 
 
촛불시위하다 쓰러지면 열사로 추앙받으며 융숭한 대접을 받는데, 봉대표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 흔한 훈장을 받은 적이 없다. 좌익들은 촛불폭동하다 사망하면 '민주시민장'으로 호도했지만 봉대표는, '애국국민장'도 마다하고 조용히 떠났다. 그래서 그의 애국운동의 행적과 업적은 우리 태극기 세력이 물려 받아야할 정신이며 자산이다. 좌익정권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봉태홍 같은 많은 애국투사가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5주기를 맞아 봉대표의 뜻을 기리며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이계성/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대한민국수호 천주교연대 대표


gw2021@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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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길 2020-01-16 10:01:19
애국우파에도 이렇게 훌륭하고 정의로운 영웅이 있음에 새삼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분의 영혼을 추모하며,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호를 저승에서도 반드시 싸워 투쟁해 주실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썩어 문드러진 사이비 우파를 척결하고 봉태홍 열사와 같은 애국 태극기 세력이 이 나라를 바로잡아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가는데 일조하고자 합니다.
이런 열사를 널리 알려 주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