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직후 폐기된 낙하산 재활용해 만든 옷으로 큰 인기

7일 문화재청이 1950~1960년대 풍물 3건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한다고 예고했다. 위쪽부터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1), ‘1960년대 신생활복’(2), ‘일제시대 강제징병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3). /문화재청 제공

1950∼1960년대 시대상황과 사회 흐름을 보여주는 의류 총 3건이 국가등록문화재가 될 전망이다. 17일 문화재청은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 ‘1960년대 신생활복’ ‘일제시대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 등을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한다고 예고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에 들어서기까지 그동안 거쳐온 시절을 돌아보게 해줄 추억의 풍물이자 역사적 증표일 수 있다.

1950년대 낙하산 블라우스는 6·25 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직후 태어났다. 목 부위와 소매 장식이 돋보이는 당시로선 최신 유행의 멋장이 블라우스지만, 시작은 ‘폐품 활용’이었다. 대구에서 최경자 디자이너가 전쟁 때 쓰이고 폐기된 낙하산을 재활용해 만든 옷이 인기를 얻자, 이후 수입 나일론 원사를 사용해 블라우스를 만들게 됐다. 나일론은 당시 사치품으로 분류돼 수입 금지된 상태였다. 오늘날 천연섬유를 선호하며 나일론을 조악한 화학섬유로 여기는 통념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나일론으로 만들어지게 됐으면서도 여전히 ‘낙하산 블라우스’로 불렸다. 나일론이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절의 편직·봉제 기술 등을 보여준다.

1960년대 신생활복 역시 최경자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옷으로, 파란색 원피스 형태를 하고 있다. 치마와 저고리를 분리하지 않은 게 특징이다. 저고리에 단추를 활용해 탈부착형 고름을 달았다. 편의성과 장식성을 겸한 것이다. 한복의 현대화 개량화 과정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신생활복은 복식사 측면에서도 의미 깊다. "국민의 의복생활을 개선하며 (전후)재건 의식을 고취하고자 신생활복장을 제정해 널리 보급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는 과정의 한 단면을 증언한다.

‘일제시대 무사귀환 염원 조끼와 어깨띠’ 역시 그 시절 시대상을 생생히 일깨워주는 역사 유물이다. 징집된 아들이나 남편 또는 오빠가 무사히 돌아오길 간구하는 마음의 결정체에 해당한다. 어머니와 누이, 아니면 친족 여성 누군가가 손바느질로 제작했을 것이다. 특히 출정 군인을 위해 한 조각의 천에 1천 명의 여성이 붉은 실로 한 땀씩 박아 1천 개의 매듭을 만들어 준다는 일본 풍습 ‘센닌바리’(千人針·천인침) 흔적도 남아 있다.

이번에 등록 예고된 의류 3건은 예고기간(30일)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의 심의·검토를 거쳐 문화재 등록 여부가 확정된다. 한편, ‘청포도’ ‘광야’ 등의 시로 잘 알려진 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1944)의 친필 편지 및 엽서는 예고 기간을 거쳐 17일 국가등록문화재로 확정됐다. 1930년대 작성한 이 편지와 엽서는 이육사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귀중한 자료다. 그 외, 1921년 건립된 이후 독립운동과 사회계몽활동이 이뤄진 주요 장소의 하나 ‘서울 구(舊)천도교 중앙총부 본관’ 역시 국가등록문화재에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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