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풀밭에 떼 지어 핀 꽃다지들
꽃다지는 꽃다지라서 충분하듯이
나도 나라는 까닭만으로 가장 멋지고 싶네

시간이 자라 세월이 되는 동안
산수는 자라 미적분이 되고
학교의 수재는 사회의 둔재로 자라고
돼지 저금통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자랐네

일상은 생활로, 생활도 삶으로 자라더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도 오랜 공부가 필요했네

배우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미적분을 몰라도 잘 사는 이들
잘 살아서 뭣에다 쓰게
쓸 데가 없어야 잘 산다는 듯이
꽃다지들 저들끼리 멋지게 피어 웃네

유안진(1941~ )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꽃다지는 우리나라 도처에서 자라는 풀이다. 노란 꽃을 피우고 줄기에 여러 송이 꽃이 어긋나게 달린다.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잘 자라기 때문에 사람들은 잡초라 하지만 꽃다지는 잡초가 아니다. 꽃다지는 농작물이 자라는 데 해를 입히지 않고 관상용으로도 적합하다. 흔하디흔한 개망초도 그렇다. 꽃대 하나 꺾은 다음 꽃병에 꽂고 식탁에 올려보라. 그 조그맣고 하얀 꽃은 특유의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 시선을 끌어당긴다. 우리는 흔한 것과 귀한 것, 비싼 것과 값싼 것, 잘 생긴 것과 못 생긴 것 등 이분법에 너무 익숙하다.

이 시의 제목은 ‘공부’다. 시의 내용은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출세하고 좋은 배필을 만나 잘 살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 해야 하는 게 세상의 법칙이다. 시인은 ‘풀밭에 떼 지어 핀 꽃다지들’을 보며 공부가 별 소용없음을 깨닫는다. 꽃다지 무리는 저희들끼리 오순도순 잘 살고 있다. 시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꽃다지는 꽃다지라서 충분하듯이 나도 나라는 까닭만으로 가장 멋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노란 꽃다지무리 속에서 한 개체의 아름다운 자태를 발견한 것이다.

나이 든 사람들은 ‘배우고 돌아서서 잊어버리고’ 딱히 ‘쓸 데가 없지만’, 한편 ‘풀밭에 떼 지어 핀 꽃다지들’을 보며 ‘나도 나라는 까닭만으로 가장 멋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잘 산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미적분을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그래야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올리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 ‘학교의 수재가 사회의 둔재로 자라는’ 것은 가끔 있는 일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