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흑인 차별정책'에 항거...선종 소식에 전세계 애도 물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정책)에 맞선 투쟁의 상징 인물인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가 26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투투 대주교는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사진은 투투 대주교가 지난 2016년 10월 7일 케이프타운의 성 조지 대성당에서 열린 자신의 85세 생일 축하 미사에 참석한 모습. /AP=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정책)에 맞선 투쟁의 상징 인물인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가 26일(현지시간)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투투 대주교는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으로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사진은 투투 대주교가 지난 2016년 10월 7일 케이프타운의 성 조지 대성당에서 열린 자신의 85세 생일 축하 미사에 참석한 모습. /AP=연합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차별정책) 해체 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데스몬드 투투 명예 대주교가 26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투투 대주교의 선종 소식을 알렸다. "남아공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 투투 대주교는 교계를 비롯해 비종교적 분야까지 포괄하는 보편적인 인권 옹호자였다"며 라마포사 대통령은 애도했다. 투투 대주교의 사인이 정확히 언급되지 않았으나, 1997년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뒤 투병해 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1931년 10월 7일 요하네스버그 빈민가에서 태어난 투투 대주교는 교사의 길을 걷다 열악한 흑인 아이들 교육 환경에 분노해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30세에 성공회 성직자가 된 후 1986년 대주교에 임명됐다. 1978년부터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운동에 뛰어들어 1984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무너지고 넬슨 만델라가 최초 흑인 대통령이 됐을 때 남아공에 ‘무지개 국가’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만델라 정부에도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고, 부패가 심했던 흑인 대통령 제이콥 주마 정부(2009∼2018)와도 각을 세웠다. "용서 없는 미래는 없다"는 구호는 인종 간 화해를 일궜다. 투투 대주교 재단은 일주일 간 애도 기간을 보낸 뒤 다음 달 1일 케이프타운에 있는 세인트조지 대성당에서 장례미사를 연다. 수도 케이프타운의 조르딘 힐 루이스 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8시부터 시청 건물과 지역 명소인 테이블 마운틴 등이 투투 대주교의 사제복 색깔인 보라색으로 물들 예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투투 대주교가 남아공에서 인종 간 평등과 화해를 이뤄냄으로써 복음에 헌신"했음을 언급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또한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인권 옹호자, 따뜻하며 유머러스한 모습을 기억한다"는 성명을 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그의 용기와 도덕적 투명성이 남아공의 억압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바꾸려는 우리의 약속을 고취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가난과 뿌리 깊은 인종차별 속에서 태어나 더 낫고 더 자유롭고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영적 소명을 따른 투투 대주교다. 그의 유산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해 울려 퍼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멘토이자 친구, ‘도덕의 잣대’였다"고 추모했다.

한편, 교계의 동성애 혐오에 맞섰던 투투 대주교를 향한 미국 유명인사들의 추모 물결은 정치적 올바름(PC)의 연장으로 읽힌다는 지적도 있다. 동성애 문제에 비판적인 복음주의 개신교가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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