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둘람선교회 대표 정운택 선교사
“복음 전하며 죽을 각오...제 사역지는 주님이 보내시는 곳이죠”

영화 ‘친구’로 전국민 알아보는 스타 됐지만...“많이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술자리 폭행·무면허 운전 등 인생 나락에서 극단적 생각하다 하나님 만나
‘교회로 가자, 교회로 가자’ 하나님 음성 들어...“성경 본질에 눈 뜨게 됐죠”

연예인·다문화 가정·소외된 아이들 등 어디든 달려가 복음 전하는 삶 살아와
“기독교 본질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값없이 주신 은혜 그냥 짊어져야”
목사·선교회대표 되고 몽골 교회 세우는 사역도...“사역자는 그냥 ‘소금’이죠”

지난 13일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정운택 선교사는 "천국의 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지난 13일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정운택 선교사는 "천국의 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산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복음을 전하면서 죽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천국이 저에게 실제가 됐어요. 천국의 증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삽니다. 주님과 사랑하는 관계 안에서 살아요. 사랑하는 내 주님이 나와 연합이 되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일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영화배우 출신 다운 비장한 신앙고백 이었다. 그렇지만 연기가 아닌 진실함이 담긴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가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된 사람인지가 뭍어났다. 지난 13일 광화문 자유일보 사무실에서 만난 정운택 선교사(아둘람선교회)는 인터뷰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설교를 하듯 외치기도 하고, 때로는 소탈하게 웃으며 그가 주님 안에서 만나 경험한 희노애락(喜怒愛樂)의 시간들을 가감없이 들려줬다.

무명 연극배우였던 그는 2001년 개봉한 영화 ‘친구’에 출연해 전 국민이 다 알아보는 스타가 됐었다. 정 선교사는 “당시 어떤 분들은 스타라고 불러주고, 사인해 달라고 하더라. 세상이 변해 있더라. 그때부터 많이 교만해지기 시작했다. ‘두사부일체’ 등 영화가 연속으로 잘 되고 배우로 자리잡으면서, ‘이 정도만 되면 참 좋겠다’고 했던 마음이 어느 순간 변했다”고 과거의 심경을 털어놨다.

정 선교사는 "출연했던 영화가 연속으로 잘 되면서 어느순간 마음이 어느 순간 변했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정 선교사는 "출연했던 영화가 연속으로 잘 되면서 어느순간 마음이 어느 순간 변했다"고 말했다. /김석구 기자 

그는 “당시 앞으로 코미디 장르는 안 할 것이라며 무리수를 두면서 제작까지 관여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후 2011년 술자리 폭행 사건, 2013년 무면허 운전, 2015년 대리기사 폭행 사건 등으로 전과 3범이 됐던 정 선교사는 인생의 나락의 시간에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다가 2015년 9월에 하나님을 극적으로 만나게 됐다.

“어느날 늦은 저녁 운전을 해서 술자리에 가다가 ‘교회로 가자, 교회로 가자’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아는 교회가 전광훈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사랑제일교회 밖에 없어서 그 교회로 갔는데, 마침 교회가 24시간 개방돼 있어서 들어가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이후 전광훈 목사님을 통해 1년반 동안 성경 말씀을 배우며 성경의 본질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정 선교사는 어렸을때부터 뭐든지 해서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다. 늘 성공을 위해, 최고가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며 살아왔지만 항상 성공의 근처에서 무너지는 경험을 했단다. 이제와 돌아보니 결국은 모든 과정이 하나님을 만나게 하려고 하신 거였다는 생각이 든다는 그다.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님으로부터 십자가 복음을 배웠고, 크로스포인트 성회 박정수 목사님께 말씀을 깊이있게 배웠고, 마가의다락방 기도원 박보영 목사님께 말씀을 행함으로 살아가는 삶을 배웠고, 멘토이신 심순희 목사님께 연합을 배웠으며, 연합은 제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것이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정 선교사는 하나님을 만난 후로 연예인·다문화 가정·소외된 아이들·크리스천이지만 실족한 사람 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김석구 기자
정 선교사는 하나님을 만난 후로 연예인·다문화 가정·소외된 아이들·크리스천이지만 실족한 사람 등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왔다. /김석구 기자

그렇게 하나님을 만난 후로는 그가 몸담고 있었던 연예계 지인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거나, 다문화 가정·소외된 아이들·크리스천이지만 실족한 사람 등 부귀빈천(富貴貧賤)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왔다.

“자연스럽게 물 흘러가듯이 이런 사역들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사역이라기 보다는 훈련의 과정이었어요. 처음에는 사역을 한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제가 그분들을 위해 사역을 하는게 아니라 그분들이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스승들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가장 큰 스승님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런 과정들을 겪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내 힘이 빠지고 진짜 주님을 의지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그에게도 복음이 실제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쉬운 세월들이 아니었다. 은혜가 충만할 때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떤것도 헌신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혈기’ 등으로 무너지는 자신을 보며 좌절도 많이 경험했다.  

“‘주님, 나는 왜 이렇게 안 되죠?’ 제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 힘들었어요. 어느날 예배 시간에 이런 마음으로 앉아서 주님앞에서 많이 울고 있었어요. 그때,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완전한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기독교 본질은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거구나.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언가를 살아냄으로써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그냥 짊어져 버리는 것이구나’라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정 선교사는 "기독교의 본질은 갚없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그냥 짊어져 버리는 것이란 걸 깊이 깨달은 후 변화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김석구 기자
정 선교사는 "기독교의 본질은 갚없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그냥 짊어져 버리는 것이란 걸 깊이 깨달은 후 변화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김석구 기자

신학교 과정을 마친 후 올해 목사 안수도 받게 된 정 선교사는 뜻하지 않게 아둘람선교회 대표로 사역하며 몽골에 교회와 십자가를 세우는 사역도 하게 됐다. 하나님이 연예계로 다시 돌려보낼 줄 알았다는 그는 이제는 진짜 ‘사역자’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단다.

“사역자란, 종이란, ‘내가 뭐를 하겠다’가 아니란 거죠. 주님께서 ‘아들아, 먼저 예수처럼 되거라. 연합이 되거라. 고등어가 되려고 하지말고 소금이 되라’고 하셨어요. 그럴려면 낮고 천한 곳, 말구유 같은 곳에서도 십자가 영광이 임해야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역자에요. 연예계에 있느냐 몽골에 있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디에 있든지 그냥 ‘소금’으로 있는게 중요한 거죠. 예수로 채워져서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에서 주 복음 전하리~’ 라는 찬송가처럼, 제 사역지는 주님이 보내시는 곳입니다.”

아래는 이날 정 선교사와 자유일보의 인터뷰 일문일답.

◇어느날 술자리 가다 “교회로 가자, 교회로 가자”는 하나님 음성을 듣다

-어떻게 처음 하나님을 만나게 되셨나요.

“전광훈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사랑제일교회에서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어요. 전광훈 목사님을 처음 만난게 2015년 5월쯤 이었어요. 비오는 날 장위동에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이프 패밀리’를 제작한 윤학열 감독님이 당시 전 목사님에게 저를 이승만 대통령 영화의 출연 배우로 소개시켜 주셨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불교신자 였어요. 종교가 달랐지만 출연료를 많이 준다고 해서 갔던거죠.(웃음)

2011년과 2013년에 저의 폭행사건이 터지고, 충무로에서는 당시 더 이상 저를 캐스팅 해 주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전 목사님이 저를 주연급 역할에 거액의 출연료까지 준다고 해서 당시에 출연하겠다고 했었죠. 그런데 제가 불교신자니까 교회로는 못 들어간다고 말씀드리고 교회 밖 고깃집에서 만났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깃집에 주차할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랑제일교회 주차장 주차를 했는데 웬지 찝찝하더라구요.

어느날 운전을 해서 술자리에 가다 '교회로 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정운택 선교사. /김석구 기자

그리고 그해 8월에 다시 저의 대리운전 폭행사건이 터졌어요. 사랑제일교회에서도 난리가 났죠. 그때 사실 저는 진지하게 자살까지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지금 기자들도 없으니 조용히 조사받고 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렇게 사건이 좀 무마되고 나니까 다시 이전의 방탕한 생활을 했죠. 그러던 어느날 운전을 해서 술자리에 가다가 ‘교회로 가자, 교회로 가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가 아는 교회가 사랑제일교회 밖에 없어서, 사랑제일교회로 갔는데 마침 24시간 개방해 놓아서 들어가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이후 전광훈 목사님을 만나 1년반 동안 성경을 제대로 배우게 됐습니다.” 

◇폐가에서 보일러 어는 경험하며 ‘영적 월동준비’에 대해 생각하다

-남양주의 폐가에서 1년 7개월을 머물렀던 시절도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광야였습니다. 나의 의로 하나님께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종교와 신앙은 다르더라구요. 예를 들어 불교는 깨달음이지만, 기독교는 철저한 ‘부활 신앙’ 이잖아요. 그런데 부활하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한번은 2015년 가을 쯤에 하나님을 만나고 얼마 안 된 시기에 금식기도를 했는데, 예수님이 40일을 했다고 하셔서 예수님보다 하루 더 많이 하려고 41일을 하려고 했어요. 사람들에게 다 알리고 다니면서 2L자리 생수통 2개를 들고 다녔어요. 그만큼 제 의가 더 강했던 거죠.

그리고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겼었어요. 세상을 못 내려놨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회복시켜서 영화계로 다시 돌려보내실 줄 알었어요. 그래서 매니지먼트도 구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면서 복귀할 준비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세상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올려주시면 하나님의 영광을 마음껏 올려드리겠다고 했어요.

그러다가 결국 남양주 폐가로 끌려 들어가게 된 거죠. 그때 주님께 머무르는 시간을 가지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 자아와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폐가에서 보일러가 어는 경험을 하며 성도들의 '영적 월동준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는 정 선교사. /김석구 기자

제가 다니던 교회 장로님이 제가 차가 없으니까 태우러 남양주까지 오셨었는데 한번은 10월 쯤 ‘월동준비’를 했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겨울에 보일러도 그렇고 다 얼어버리니까, 안 얼게 해야 한다고, 창문 우풍을 막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이따가 할게요’ 그랬는데 그 다음주에 또 물어보셨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주에 청주 여자 소년원에 집회를 하러 가려고 하는데, 물이 안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씻지를 못하고 그냥 내려가는데 ‘성도들이 월동준비를 과연 하고 있나? 영적인 월동준비를 하면서 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적인 ‘월동 준비’는 어떤 걸 의미하시는 건가요.  

“감리교·침례교에서는 ‘구원의 탈락이 있다’고 하잖아요. 저는 실제로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실족한 사람을 수도 없이 많이 봤습니다. 그때 물이 어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정확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영적인 월동준비를 해야 한다구요. 

당시 남양주의 폐가에서 살면서도 늘 복음을 전하러 다녔습니다. 새벽에 별 보고 나와서 별 보고 들어갔어요.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제가 죄 짓고 살 때 저와 같이 죄 짓던 사람들이 다 기독교인들 이었다는 거에요. 저는 그들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바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5분만 시간을 달라고 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차에 기름이 다 떨어지면 하늘에 삿대질을 하며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거냐고 따졌습니다. 불평불만을 쏟아놨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는 니가 나를 위해서 분주히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도 기쁘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더욱 바라는 것은 나는 너와 교제하고 싶다. 나는 너와 더 친밀한 교제를 하고 싶다‘고 라구요. 남양주 폐가에서 그런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하나님 은혜가 아니면 완전한 기쁨 이를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을 깨닫다

-사랑제일교회 이후 어떤 교회들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나요. 그리고 어떤 신앙의 성장 과정이 있으셨나요.

“첫 신앙생활을 한 사랑제일교회에서 너무 감사하게도 성령의 뜨거운 임재 가운데 성경이 뭔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군지를, 그리고 십자가 복음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 시즌이 끝나니 하나님이 제 터를 옮기셨어요. 당시 한 목사님이 한국에 오셨는데 연예계에도 십자가 복음에 생명을 건 군사 하나만 세워지도록 기도하시는 박정수 목사님 이셨습니다. 그분에게 NIV 성경으로로 말씀을 쪼개서 2년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정 선교사를 여러 목회자들을 통해 배우게 하셨다. /김석구 기자
하나님은 정 선교사를 여러 목회자들을 통해 배우게 하셨다. /김석구 기자

그렇게 복음을 깨달았지만 하나님께서 신학교에는 안 보내셨습니다. 말씀을 배우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거만하게 가르치려고 하려고 하는 저를 하나님은 다시 짐을 싸라고 하시더니 마가의다락방 박보영 목사님을 따라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낸 자다’고 이야기 하셨어요. 그때부터 박 목사님 언저리에서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시가 2018년 여름 쯤이었어요.”

-그런 성장의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그런데요. 될 듯 하면서도 복음이 저에게 실제가 안 되더라구요. 은혜가 충만할 때는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나님 앞에 어떤것도 헌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결정적인 순간에 안 될 때가 많은거에요. 

예를 들면 제가 작은 아버지를 전도해서 주일예배에 모시고 가려고 우리집 앞에서 기다렸는데 작은 아버지가 늦게 오시는 거에요. 혈기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마음에 하나님이  ‘아들아 평안해라’ 라고 하시더라구요.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그게 안 되는거에요. 혈기가 누룩처럼 올라고 결국 전화로 화를 내고 제가 먼저 교회로 출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가는데 주님이 제 안에서 ’너 뭐하니 지금? 너 뭐하는 거야’ 라고 이야기 하시면서 제 안에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다시 차를 돌리고 집앞에서 작은 아버지를 다시 만나 모시고 갔습니다. 그렇지만 제 마음은 이미 예배를 드릴 준비가 깨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마가의다락방 교회에 올라갔는데, 원래 그 교회는 바닥에 전부 앉는 교회인데, 저희 작은 아버지는 무릎이 안 좋은데, 의자 자리 4개가 비어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날 제가 앉아서 많이 울었습니다. ‘주님, 나는 왜 이렇게 안 되죠?’ 그런벽에 부딪혔습니다.

여러 과정을 통해 이제는 '진짜 사역'을 한다는 정 선교사. /김석구 기자
여러 과정을 통해 이제는 '진짜 사역'을 한다는 정 선교사. /김석구 기자

그때 깨달은 것은, 결국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완전한 기쁨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기독교 본질은 내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거구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냄으로써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내가 짊어져 버리는 것이구나’라는 걸 영성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 사역’을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자녀들인데, 마귀는 자꾸 현실만 보게 합니다” 

-그래서 그 ‘진짜 사역’은 어디서 하셨나요.

“저는 사역지가 전국구 인데요. 예를 들면 ‘한국난치병협회’ 같은 곳에 집회를 갔어요. 거기는 150가정 정도가 있었는데, 코로나 시즌에 도우미 분들이 도와주지를 못하니까 어머니들이 우울증에 노출이 돼 있는 곳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어머니가 먼저 우울증이 오니까 먼저 떠나고, 그러면 몇주안에 아이들도 죽는다고 했어요. 이건 물질이나 복지, 구제로 안 되는 것입니다. 복지가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것이죠. 이런 분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예수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곳 어머니들께 제가 말했어요. 

‘속지 마세요. 어머니. 어머니가 세상편에서 아이를 본다면,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하게 이상한 아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시선으로 본다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한 자녀일 뿐입니다. 십자가의 독생자 예수를 대못박아 살린 한 어린이를 뿐입니다. 속지마세요. 예수를 영접하면 그 앞에 놓인 기쁨이 있습니다. 이 아이의 인생의 시간은 지나갑니다. 건강한 아이든 병든 아이든 우리는 질병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살리려고 하는 것은 영입니다. 

정 선교사는 인터뷰 도중 복음 전하러 다니던 일을 회상하며 힘차게 찬양을 부르기도 했다. /김석구 기자
정 선교사는 인터뷰 도중 복음 전하러 다니던 일을 회상하며 힘차게 찬양을 부르기도 했다. /김석구 기자

영원한 보좌 우편에서 언약을 이룬 예수처럼 하나님의 영원 앞에서 보면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이 주실 천국의 상급을 바로 보십시오. 그것으로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들인데 마귀는 자꾸 현실만 보게 합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러 다녔어요.”

◇불완전한 '정운택의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다

-당시 신혼이었을 텐데 그렇게 전국으로 사역을 다니면 아내분 과의 갈등은 없었나요.

“중요한 건 그렇게 전국에서 집회를 하고 집에 들어오면 새벽이 됩니다. 그러면 아내가 그래요. ‘남들은 그렇게 섬기면서 당신 가정은 이게 뭐냐’고요. 아내 입장에선 너무 외로운 거였죠. 처음에는 제가 ‘내가 지금 뭐하다 들어온지 몰라!’ 이러면서 화를 냈어요. ‘너 명심해. 아무리 너가 내 아내라도 하나님의 종의 길, 좁은 길을 가려하는데 방해가 되면 쳐낼거야’ 라면서 오히려 제 의로움을 주장했어요. 

그런데 집에 들어갈 때마다 매번 그런 일이 반복이 되니까 어느 순간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워 졌습니다. 연약한 제 아내와 저의 겉사람을 통해 사단이 역사한 것이죠. 사단이 가라지를 집어 넣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또 싸우고 그게 무섭고, ‘하나님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해결해 주십시오’라고 다시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들아, 내가 너에게 가장 귀한 스승을 붙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뭔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깨닫게 하셨어요. 제가 살아 있었던 거에요. 제 생각과 감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반응을 하더라구요. 내 안에 내가 살아있으니 율법이 올라왔습니다. 정죄를 해 버리더라구요. 

그래서 어느날 집에 들어가기 전에 기도를 딱 하고, 들어가서 ‘여보 나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어. 그리고 내가 미안해’라고 말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는 주님을 볼꺼야. 당신의 응어리가 풀릴대까지 나에게 뭘 해도 좋아’ 그리고 그냥 앉아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에게 긍휼을 배푸시고 십자가 사랑으로 덮어주세요’ 이렇게 기도를 하는데, 마귀가 꼼짝을 못 하더라구요. 그리고제 아내가 ‘오빠 대화할 때는 상대방을 봐야지’라고 하는데 ‘아니야 그건 세상 논리, 세상 사람들 생각이고 우리는 둘이 대화할때도 주님을 봐야 돼’라고 말했어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십자가의 경험'이 필요했다는 정 선교사. /김석구 기자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십자가의 경험'이 필요했다는 정 선교사. /김석구 기자

그렇게 하니까 어느 순간부터 제 아내도 저와 함께 주님을 보기 시작했어요. 아내에게 제가 말했어요 ‘니가 나에게 무언가를 받으려고 하는데, 인간은 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예수님께 받으려고 해야 돼. 내 남편이 밖으로 많이 나돌고 그러지 말고 나를 즐겁게 해 줘야 되고, 그게 충족돼도 나중에 더 큰 요구가 와. 안 채워져. 예수님 내가 내 남편에게 상처를 받았지만, 섭섭하지만 예수님, 예수님이 나를 채워 주십시오. 생명수를 주십시오. 예수님께 달라고 해야 돼. 사람은 섬겨야 할 존재지 받을 존재가 아니거든.’ 그래서 지금은 제 아내도 그걸 이해하고 깨달았어요.

저희 교회 성도들이나 집회에 참석한 분들에게도 저는 주저 없이 ‘나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주저 없이 생명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믿지는 마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저는 십자가의 사랑을 쫓고, 불완전한 정운택의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전 인류를 향한 십자가의 사랑이 내 안에서 넘쳐납니다. 이건 완전한 것이거든요.”

◇“크리스천 배우들에게도 ‘예수 똑바로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2017년부터 뮤지컬 ‘베드로’에 출연하기도 하셨는데요.

“2016년 3월 쯤에 저하고 알고 지내던 지인이 뮤지컬 제작을 한다며 저에게 출연을 부탁했어요. 그 지인은 세상에서 타락한 기독교인 이었는데, 술집에서 만나서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 그랬더니 놀라더라구요. 뮤지컬의 조연을 제의했는데 처음에는 제가 안 한다고 했었어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형님, 이제 세상 정운택이 죽었다면서요’라면서 제가 조연이라서 안 한다고 받아들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니가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면 하겠다. 대신 출연료·스케쥴은 알아서 해 달라. 군말없이 받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불효자를 웁니다’라는 악극 뮤지컬을 먼저 하게 됐었습니다.

당시 지방 공연을 다니면서도 복음을 뜨겁게 전했습니다. 공연을 함께 하는 크리스천 배우들에게도 ‘예수 똑바로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어요. 뮤지콜 공연을 할 때 항상 제 배역이 쉬는 시간에는 항상 성경을 읽고 기도를 했습니다. 방석을 깔아놓고 일부러 그렇게 했어요. 당시 배우 50명 중에 30명이 기독교인인데 기도하는 사람을 한명도 못 봤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다른 배우의 출연료를 봤는데, 제가 돈 계산을 하기 시작하더구요. 월세, 저축 등... 그렇게 제 겉사람과 속사람이 충돌하는 걸 경험하면서 이제는 (뮤지컬을) 떠나야 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청년때 목표였던 울산 KBS홀에서 공연을 마지막으로 내려놓고, 잠시 필리핀으로 선교활동 간다는 명목으로 놀러가려고 계획을 세워놓고 이제 감독에게 통보를 했습니다. 그리고 울산이 제 본가여서 집에 들려서 잠을 자고 있는데 오전에 갑자기 전화가 왔어요.

정 선교사가 2017년출연했던 뮤지컬 '베드로' 포스터.
정 선교사가 2017년출연했던 뮤지컬 '베드로' 포스터.

문화선교극단의 김동철 대표 였는데, 기도 가운데 주님께서 저에게 연락을 해 보라고 하셔서 연락을 했다는 거에요. 김 대표도 다른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이 ‘베드로’란 작품을 준비하라는 마음을 주셔서 하게 됐다고 했어요. 그렇게 주님 인도하심에 따라 합류하게 됐는데, 물질이 없어서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이 잘 사는 줄 알았는데(웃음), 대학로 연극배우들보다 더 가난하더라구요. 제작비 300만원을 가지고 25명이 공연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도 받고 자비를 들여가면서 공연을 했어요. 

그렇게 베드로 1차 공연을 마치고, 2차 공연은 CTS에서 연락이 와서 또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3차는 드디어 대학로에서 하게 됐어요. 김동철 대표가 소천하는 바람에 3차에서 마무리 됐습니다.”

◇목회자 100명이 달라 붙어 실패한 청년을 교회로 다시 데려오다

-김 대표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난 건가요. 

“김동철 대표가 혈액암을 앓고 있었는데 당시 의료보험도 못 냈습니다. 김 대표 친형이 홍천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친형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한달에 1~2번 정도 홍천까지 가서 13시간 수혈을 받았어요. 새벽에 춘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김 대표, 우리가 주의 종들인데 어쨌거나 본인 형의 의료보험으로 치료를 받으러 가는 것은 거짓이다. 바로잡아라’라고 말했는데 김 대표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치료를 못 받을까봐 두려워 했어요. 

그 시점이 제가 천천히 사랑제일교회에서 마가의다락방교회로 옮겨갈 때인데, 마가의다락방 박보영 목사님의 비서 중 한 명인 전도사님이 저와 많이 친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박 목사님이 그 친구에게 맡긴 일이 있었는데 저에게 그 일을 좀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뭐냐하면 방황하는 한 청년을 돌아오게 하라는 거였는데, 박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보내는 사람마다 다 실패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국 제가 그 청년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 영화배우 정준호 형을 비롯해 제가 아는 연애인들을 총동원해서 그 청년에게 보내는 영상을 찍었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그 청년에게 ‘우리가 널 응원하고 있어. 시간내서 밥 먹자’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면서 1년반 만에 그 청년을 마가의다락방에 데리고 들어가게 됐습니다. 목회자 100명이 달라 붙어서 실패한 친구를 제가 교회로 다시 데리고 온 거였죠.

그러자 박보영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그 청년을 데리고 온 것을 알고서 저를 불러서 ‘너무 귀한 일을 했다. 내가 정운택 성도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그때 제가 ‘제가 아는 가난한 문화선교극단의 김동철 대표가 혈악암으로 투병중인데 형의 의료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병원비를 좀 내 주세요’ 그랬더니 ‘아무 걱정하지 마라. 다 도와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김 대표를 다 도와주면서 병원 치료와 수술까지 전액 지원해 주시면서 의료보험 문제도 다 해결됐습니다. 골수이식 기증자가 나타나서 골수이식가지 했고 수술도 잘 됐습니다. 그렇게 모든 치료도 다 받고 완치판정까지 받았는데, 결국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소천하게 되어서 너무 마음이 아팠죠.”

CTS '내가 매일 기쁘게' 출연 당시 김동철 대표와 정운택 선교사의 모습. /CTS 화면 캡처
CTS '내가 매일 기쁘게' 출연 당시 김동철 대표와 정운택 선교사의 모습. /CTS 화면 캡처

◇“내가 알고 있던게 사랑이 아니라 그분이 보여주신게 사랑이더라구요” 

-올해 목사 안수도 받으셨는데요. 목회를 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2017년에 제가 파혼을 했는데, 당시 김동철 대표가 홍천에 같이 바람을 쐬러 가자고 했었어요. 김 대표 형님이 목회하시는 강원도 홍천의 예수생명교회로 같이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영적 멘토인 LA에 계신 심순희 목사님을 화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그렇게 그 분을 만나 올해 2월말까지 그분이 강의하시는 한 신학교를 다니게 됐어요.

그리고 그 후 김동철 대표가 죽고 장례를 치르게 됐는데, 박보영 목사님이 소식을 듣고 또 부르셨습니다. ‘돈 필요하지. 일단 가서 무조건 위로해줘. 아무것도 걱정하지마. 다 해줄게’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장례식을 가는데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원래는 심순희 목사님이 강의하시는 신학교를 다니다가 한 학기를 쉬고 있었어요. 그런데 김동철 대표가 죽으면서 다시 그 신학교를 다니게 됐습니다. 정말 신기한 건 그 신학과정이 끝나고 제가 지금 사역하고 있는 아둘람선교회가 만들어지고, 몽골에 교회도 세우게 됐어요. 그리고 저희 선교회에서 김동철 대표 형님인 김동순 목사님을 선교사로 파송하게 됐는데, 제가 예수생명교회 다음 담임목사가 세워질 때까지 지금 그 교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올해 목사 안수식때 가족들과 함께. /정운택 선교사
올해 목사 안수식때 가족들과 함께. /정운택 선교사

-결국 본인의 부르심을 잘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부르심을 찾아 오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연예계로 가서 벼랑 끝 연예인들을 복음으로 세워야 하는데, 어린이난치병협회 가는 곳에 가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요? 대전에 있는 귀신 들린 정호영 선생님 집에 와서 제가 뭐하고 있나요? 하나님 내 사역지는 어딥니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이해를 못했는데, 어느날 몽골에 가서 십자가를 세우고 있더라는 거죠.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선교사님께 어떤 분이신가요.

“그분은 사랑입니다. 생명, 사랑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게 사랑이 아니라 그분이 보여주신게 사랑이더라구요. 희생과 대속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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