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질렀다. 윗사람이 나를 크게 나무란다. 유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 일을 모종의 감정으로 처리하면서 내 마음 안에서 다스려 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세 부류가 있다. 이는 물론 임상적인 실험과 조사에 따른 결과는 아니지만, 이 일을 겪어내는 사람들의 언어 사용(language use)을 들여다보면, 그 세 부류의 모습이 드러난다.
첫째는 “야단을 맞았다”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야단(惹端)이란 매우 떠들썩하고 어수선한 일이 일어남을 뜻한다. 그걸 맞았다는 것이니, ‘야단을 맞았다’라고 했을 때의 ‘맞았다’라는 건 ‘날벼락을 맞았다’라고 할 때와 비슷한 위상에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이 부류는 재수가 없어 시끄러운 일을 당했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다.
둘째는 “혼이 났다”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혼이 나가 버렸다.’ 이런 뜻이다. 윗사람의 나무라심이 너무 혹독하고 무섭고 심해서 내 안에 있는 나의 혼(魂)이 내 밖으로 다 나가버렸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는 부류의 주된 인식은 나무람의 혹심함 그 자체에 초점이 있고, 나를 나무라는 그분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으로 이 사태를 정리하고 있다 하겠다.
셋째는 “꾸중을 들었다”라고 말하는 부류이다. ‘꾸중’은 잘못을 ‘나무라는 일’도 되지만, ‘나무라는 말’도 된다. 그래서 꾸중은 ‘듣는다’라는 행동과 묶어진다. 그 힘든 와중에도 나를 나무라는 그분의 말을 들으려 하는 데에 ‘듣는 인간’의 고매함이 있다. ‘꾸중을 들었다’를 더 정중 겸허하게 ‘걱정을 들었다’로 말하는 이도 있다. 대단한 내공이 있어야 한다.
나무람을 당하는 동안 감정으로는 반발하며, 그 나무람을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나무람 자체에만 붙잡히면 애초에 내가 저지른 잘못을 돌아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꾸중을 ‘들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돋보인다. ‘듣는 인간’은 반성적 사고(reflective thinking)를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