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천
이주천

10월 19일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으로, 여순 10·19사건 발생 74년 만에 정부 차원 추모식을 가졌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참석해 추념사를 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영상메시지를 전달했다. 이상민 장관은 추념사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과거사를 해결하고 아픈 현대사를 치유하겠다"며 "정부를 믿고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국민의 눈높이’란 자칫하면 인기에 영합해 과거사를 다시 재단하겠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발언이다. 막말로 제주4·3사건의 경우처럼, 희생자 숫자를 채워서 넉넉하게 배상해 주겠다는 것인가?

더 심각한 것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영상 메시지에서 한 발언이다. "진실을 온전하게 규명해 여순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바로 세우겠다"며 "희생자 명예 회복을 약속"한 것이다. 이미 74년 동안 여순사건은 역사적 진실 규명에 마침표를 찍었다. 제주4·3폭동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여수의 14연대가 주동이 되어 상관들을 무참하게 살육하고 군경찰서를 습격, 방화해 전남 일대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던 군반란사건이다.

이미 수많은 연구가 쏟아져 나와서 결론이 난, 역사를 또다시 바로 세울 필요도 없는 사건이다. 그러길래 수십 년 동안 좌익연구가들조자 별다른 반발이 없었다. 한 총리가 언급한 "역사적 의미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은 군반란사건을 민중항쟁으로 재해석하겠다는 것인가?

과거 우리는 세 차례 좌익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력이 개입해 역사를 왜곡한 경우를 목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 만들어낸 ‘제주4.3사건진상규명정부보고서’(위원장 박원순 변호사)였다. 제주4.3폭동을 미화하여 민중항쟁으로 간주하는, 좌편향 민중사관 역사관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 연구위원이나 조사위원으로 행세하면서 사건을 철저하게 왜곡했다. 그 조사위원들의 임기도 종결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명예회복을 넘어서서 ‘너도 나도 무더기 보상’을 실시했고 1인당 9000만 원씩 보상이 결정됐다. 신고자 수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1715명으로 마감된 것을 정략적 차원에서 다시 지역별 할당제를 실시해 숫자가 부풀려졌다. 2014년에는 1만4231명까지 피해자 신고를 하게 된 결과, 남로당 주동자들도 끼어넣기 식으로 희생자로 삽입되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폭도사령관까지 무고한 희생자로 둔갑시켰다.

그러다 보니 9년 동안 제주도 일대에서 군경을 학살, 제주도민들을 볼모로 삼고 행패를 일삼았던 반란주동자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들만 자랑스레 남게 됐다. 더욱 가관인 점은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과 의료·생활 지원금, 국가 기념일 지정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촉구했다는 것에 있다. 5·18민주화특별법과 제주4·3사건특별법 경우로 가게 해달라는 요청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5·18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용어 변경, 특별법이 만들어지면서 광주가 성역화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 유공자 명단을 지금도 떳떳하게 공개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제주4·3특별법으로 제주도가 좌익의 성역화가 됐다. 그리고 제3단계로 여수와 순천 일대가 민중항쟁의 성역으로 탈색되고 국민들의 귀중한 혈세가 지출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원래 제주4·3특별법도 처음에는 억울하게 죽은 자의 명예회복만이라도 해달라고 사정해서 실행된 것이다. 하지만 보상으로 넘어갔고, 그 지역이 천혜의 관광지에서 ‘좌익의 성지’로 탈색됨을 무력하게 바라본다.

‘진지론’과 ‘문화헤게모니론’을 주창한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오늘날 한국이 처한 놀라운 좌경화 현실을 바라본다면, 기쁨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른다. 도대체 윤석열 정부는 좌익의 진지론 전략에 영합해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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