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히잡 시위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구타당해 숨진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에 항의하는 학생들의 사망이 잇따르고 있다. 17일(현지시간)까지 시위에서 숨진 사람은 최소 215명으로 이 중 18세 미만 미성년자가 27명에 이른다.

이란의 비극은 서구 근대문명과 이슬람 전통의 충돌에서 기인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이 이란을 1,2차 세계대전의 전진기지로 삼는 한편 석유 패권을 둘러싸고 자국의 이익을 이란에 강요한 것이다. 한때 중동에서 가장 서구화된 국가였던 이란이 이슬람 혁명 이후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변신한 배경이 이것이다.

하지만, 이란의 강경 이슬람원리주의자들은 집권 이후 국민 통합에 실패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종교 최고지도자에게 경제적·정치적 어려움을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전국적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수백 명의 시위대가 군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의 히잡 시위도 그런 항의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결국 관건은 근대화의 수용 여부다. 근대화를 상징하는 서구 문명이 자국 이기주의로 인해 이란 등 이슬람 세계의 현실 경영에 실패했다고 해서, 근대화의 본원적 가치마저 부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제국주의 이권에 오염된 것이긴 해도 근대문명의 세례를 맛본 이란 국민들이 세속주의에 대한 미련을 끊지 못하는 것이 그 증거다.

국내 페미니즘 진영에도 이란의 히잡 시위는 남의 일일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 열린 2022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이란 여성 선수가 히잡을 쓰지 않고 경기에 나선 뒤 자취를 감췄다는 실종설이 한때 나돌기도 됐다.

그런데 국내에선 이상하게도 잠잠하다. 단순 형사사건에도 피해자가 여성이면 ‘여자라서 죽었다’며 남성 혐오를 부추기는 국내 페미니스트들이 그보다 몇만 배 심각한 이란의 비극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혹시 국내 페미니스트들의 진짜 목표가 근대화의 거부에 있기 때문 아닐까? 근대화의 결실인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좌파 세력들이 전근대를 상징하는 이슬람에 대해서는 유대감을 드러내왔다.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의 기이한 침묵도 이런 맥락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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