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자, 황맥 벌판, 227.3 x 181.8cm (150F), 순지5배접, 암채, 2021. /작가 개인 공식홈페이지
 

"올해는 저를 전부 그림에 바친 생활이었어요. 시간이 넉넉하고 아파 눕지 않아 모든 것을 그림에 쏟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보리밭 그림으로 유명한 한국화가 이숙자(80)의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11월19일까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전시 이후 6년 만의 개인전이다. 황맥과 청맥을 그린 보리밭 연작, 초대형 작품 ‘백두산’, 자화상 등 1980년대 작품부터 올해 신작까지 작품세계 전반을 보여 줄 그림 4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눈길을 끄는 대형 작품들이 전시장 3개 층에 걸려 있다. 가로 9m 세로 2.2m 크기의 대형 ‘백두성산’(1층), 가로 7m가 넘는 ‘군우’(2층) 등이다. 얼룩소가 화면을 가득 메운 ‘군우’는 1987년 완성했던 ‘군우-얼룩소 1,2’에 2016년 ‘군우-얼룩소 3.4’를 더한 것이다. 원래 4폭으로 계획해 밑그림을 그렸다가 2폭만 먼저 완성해 전시,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를 계기로 나머지 2폭을 채웠다.

대표 연작인 ‘보리밭’ 그림도 여럿 나왔다. 이 화백은 1980년 이전 이미 보리밭 그림으로 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고령의 이 화백은 매일 오전 9시30분 작업실로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한다. 이런 나날을 보내며 최근 청보리밭 신작이 태어났다. 그 중 ‘분홍밭 장다리꽃이 있는 보리밭’(1981)은 수십년 전 전시됐던 작품이다. 첫 전시 때 마음에 안 들어 오래 고민한 끝에 새롭게 개작해 내놓은 것이다. "파기할까 했지만 자식이 부족하다고 버릴 수 없잖아요. 죽기 전에 처리해야지 벼르다가 손을 댔죠. 1981년의 나, 40년 지난 현재의 내가 합작한 작품인 셈입니다."

천경자(1924∼2015)의 제자였던 이 화백은 ‘보리밭 화가’라는 수식어에 얽힌 감정을 토로했다. "무슨 그림을 그려도 천 선생님 흉내낸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듣기 싫었는데, 보리밭을 그리면서 또 그 소리가 나오더군요. ‘자기 복제’처럼 똑같은 그림만 그리는 듯해서 부담도 됐죠." 하지만 결국 자신에게 떳떳한 사람 특유의 담담함을 얻는다. "내 모든 걸 작품에 쏟아부었으니 이젠 뭐라 불리든 상관없습니다."

이 화백은 50년 이상 돌가루 채석을 이용한 채색화를 수해왔다. 1977년 국전 출품작(청맥), 1978년 ‘맥파-청맥’으로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 1980년 ‘맥파-황맥’으로 제3회 중앙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채색화의 정통성을 수립한 ‘보리밭 작가’로 불렸으며, 이후 꾸준히 보리밭을 주제로 삼았다. 1990년대 누드화 ‘이브의 보리밭’ 연작을 통해 당시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다.

18일 이숙자 작가가 서울 선화랑에서 작품 ‘군우’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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