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이하 ‘블랙팬서 2’)가 불이라면 ‘알카라스의 여름’은 물이다. ‘블랙팬서 2’가 칼바람이라면 ‘알카라스의 여름’은 나무다.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영화가 11월 초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알카라스의 여름’은 3일, ‘블랙팬서 2’는 9일에 각각 개봉한다. 어떤 영화를 선택하느냐는 1백퍼센트 취향 차이. 영화를 보고 나온 후 느낌도 1백퍼센트 온도 차가 있을 것이다.

‘알카라스의 여름’ 솔레 가족의 달콤씁쓸 복숭아농장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

‘알카라스의 여름’(Alcarras)은 2022년 제72회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이다. 카탈루냐어로 된 영화가 이 상을 수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북동쪽 지방으로 북쪽은 피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며 스페인어와 더불어 독립된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화제 심사위원단은 비전문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앙상블과 소박하지만 감정적인 울림에 대해 만장일치로 찬사를 보냈다. 영화는 올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미리 소개되기도 했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작은 칸이나 베니스영화제, 혹은 아카데미에 비해 조금 더 딱딱하고 정치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작고 소박하다. 복숭아 농장을 하고 있는 가족을 중심으로 소소한 갈등과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내고 있다.

영화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작은 마을 알카라스를 배경으로 한다. 이 마을에 사는 솔레 가족은 3대가 함께 복숭아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여름 복숭아를 따기 위해 농장으로 모이는 가족들. 복숭아농장은 아이들부터 할아버지까지 즐겁게 놀고 먹고 일하는 생명터다.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지내온 솔레 가족에게 어느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식이 전해진다. 땅주인이 농장을 비우라는 것. 솔레 가의 할아버지는 땅에 관한 소유권 증서가 없다. 예전 땅 주인의 생명을 구하는 대가로 구두신탁을 통해 농사 지을 소유권을 상속받았다. 사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다. 저 나무는 아무개가 심은 거야,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며 나무와 사람을 연결시켜 추억하는 것이 의미있을 뿐이다.

농장이 없어질 위기에 솔레 가족 사이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할아버지는 복숭아나무가 곧 삶이다. 아들 세대는 작물의 현대화 등을 꿈꿨지만 여의치 않자 약간 현실도피적 성격을 보인다. 손주세대는 극명하게 갈린다. 복숭아농장 대신 태양광사업이 미래적이며 세계적인 흐름이라 보는 쪽과 농촌의 삶을 사랑하는 쪽으로 나뉜다. 솔레 가족과 마찬가지로 농업이 기반인 지역공동체 역시 위기를 맞는다.

솔레 가족의 마음이야 어떻든, 땅 주인은 수익성 높은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기 위해 복숭아나무를 모조리 베어낼 심산이다.(한국의 지금을 보면 안 그랬을 것을…) 그런 상황에서도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불도저에 갈리기 전 복숭아 수확을 마치려고 애를 쓴다. 이때만큼 복숭아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 적이 없다.

마지막 점심을 마무리하고 솔레 가족은 복숭아나무가 사라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본다. 사라지는 것은 복숭아나무일까 솔레 가족의 꿈일까 아니면 과거일까. 눈이 시리도록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영원히 평화로울 것 같았던 농장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미래는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지중해의 찬란한 햇살, 농부의 굵은 땀방울, 석양의 아름다운 들판…그리고 싸우고 투닥거려도 세상 소중한 가족까지, 영화는 한번에 여러 모습, 여러 생각을 전한다.

☞영화는 카를라 시몬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것이다. 시몬의 할아버지는 실제 복숭아 과수원 운영했고, 시몬은 어린 시절 농장에서 놀던 기억을 모티브로 시나리오를 썼다. 감독이 태어나고 자란 카탈루냐 지방을 표현하기 위해 아름답고 독특한 여름 풍경을 자랑하는 가로트하(Garrotxa)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시몬은 역시 어린 시절 경험을 녹여낸 장편 데뷔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으로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2개 부문, 스페인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32회 고야상에서 신인감독상을 포함한 3개 부문을 수상했다.

"와칸다 포에버" 보스만 없이 돌아온 블랙팬서

'블랙팬서 2'.
'블랙팬서 2'.

마블의 블랙 파워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가 11월 9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개봉한다. 이제 IT만 한국이 테스트베드가 아니다, 블록버스터 영화도 한국 개봉이 가늠자 역할을 한다. 한국 관객들이 지적이면서도 트렌디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진 덕이다.

‘블랙 팬서’는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마블 원작 영화라는 점에서 2018년 개봉 당시 화제가 됐다. 마블 히어로들은 따로 또 같이 영화를 구성한다. ‘어벤저스’처럼 여러 히어로가 동시에 출격하는 경우가 있고 또 각각의 솔로무비가 별도로 만들어진다. 블랙 팬서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처음 등장했고, 이후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히어로로 등록됐다.

영화 속 와칸다는 숨겨진 왕국이다. 최강 희귀 금속인 비브라늄과 뛰어난 과학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1편에서는 공중부양열차와 호버크래프트, 홀로그램, 비브라늄으로 제작된 첨단 무기들과 전투복 등이 등장했다. 와칸다의 중심에는 왕인 티찰라가 있다. 현대 문명세계에서 탱자탱자 잘 살고 있던 그는 운명적으로 자기의 뿌리 와칸다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비브라늄과 왕좌를 노리는 적들의 음모에 대항한다.

1편은 2억 달러의 제작비와 1억5000만 달러의 마케팅비를 투자해 약 13억468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슈퍼히어로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최초로 아카데미상(음악·미술·의상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18년 개봉해 539여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같은 데이터는 2편 제작을 당연시하게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긴다. 티찰라 역을 맡은 배우 채드윅 보스만의 암 투병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그리고 2020년 끝내 사망하면서 전 세계 블랙팬서 팬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마블은 속편을 만들면서 티찰라 역에 새로운 배우를 캐스팅하는 대신 극중 티찰라가 사망한 것으로 설정했다. 야구로 치면 영구결번으로 존경을 표한 것이다. 보스만의 사망으로 인해 속편 개봉 역시 당초 예고됐던 2022년 5월에서 11월로 6개월 이상 연기됐다.

2편 ‘블랙팬서:와칸다 포에버’는 티찰라의 장례식부터 시작된다. 메인 예고편을 보면 흰옷을 성스럽게 차려입은 와칸다인들이 티찰라의 장례식을 치르는 장면, 여기에 채드윅 보스만 얼굴이 등장한다. 이어 "나락에 떨어져 본 자만이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지"라는 대사와 함께 깊은 물속 왕좌에 한 인물이 내려앉는다. 새로운 왕의 탄생이다. 이어 비브라늄의 패권을 둘러싼 음모와 함께 최강의 적 네이머와 탈로칸의 전사들이 와칸다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는다. 이에 대항해 슈리(레티티아 라이트), 라몬다(안젤라 바셋), 나키아(루피타 뇽오),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음바쿠(윈스턴 듀크), 아네카(미카엘라 코엘), 아요(플로렌스 카숨바) 등은 와칸다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렇다면 2편에 새로운 슈트를 입고 등장할 블랙팬서는 누구일까. 음… 여자일 가능성을 점쳐 본다.

☞채드윅 보스만(1976-2020): 2016년 대장암 진단을 받고 4년간 투병하다가 2020년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보스만은 2003년 TV드라마로 데뷔했으며 이후 흑인사회의 상징적인 인물들을 연기하면서 주목받았다.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MCU에 합류한 이후다. 보스만은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블랙 팬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어벤져스 엔드 게임’ 등에서 와칸다의 왕이자 블랙팬서인 티찰라를 연기했다. 2018년 독립된 캐릭터로 ‘블랙팬서’를 이끌면서 "와칸다 포에버"라는 유행어를 남겼으며,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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