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숲모기 암컷(사진)은 번식에 필요한 양분을 얻기 위해 인간의 피를 빨아먹는다. 이 과정에서 뎅기열, 황열병, 지카 바이러스 등 여러 질환을 옮긴다.

같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있어도 유독 모기에 잘 물리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여기에 속한다면 피부에 서식하고 있는 미생물을 탓해야 할 것 같다. 수많은 피부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산성 유기화합물 ‘카복실산’이 모기 자석 인간을 만드는 주범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체취가 모기를 유인한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내용이지만 정확한 메커니즘이 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미국 록펠러대학의 레슬리 보스홀 박사팀과 바이오테크 기업 킹덤 수퍼컬처스 연구진이 3년여에 걸친 실험 끝에 피부에서 생성된 카복실산이 모기를 끌어들인다는 사실을 규명한 연구결과를 생물학저널 ‘셀(Cell)’에 발표했다. 카복실산은 피부에 사는 유익균이 피지를 먹어치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로 피부를 보호하고 촉촉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

연구팀은 모기 유인물질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피실험자 64명의 팔에 하루 6시간 동안 나일론 스타킹을 착용시켜 체취를 모았다. 그리고 이를 5㎝ 크기로 자른 뒤 마치 이상형 챌린지를 하듯 1:1로 모기에게 노출했다. 이집트숲모기 암컷 수십 마리를 가둬둔 공간의 양옆에 두 사람의 체취가 배인 스타킹 조각을 각각 놓고 어느 쪽에 더 많이 몰리는지 순환 대결 방식의 실험을 진행한 것이다.

실험에서 33번 참가자가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모든 대결에서 승리하는 압도적 결과가 도출됐다. 단 몇 초만에 승부가 갈리기 일쑤였을 만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났다. 이에 연구팀이 이 사람의 시료를 분석했고 모기의 선택을 가장 적게 받은 19번 참가자와 비교해 무려 100배에 달하는 카복실산이 검출됐다.

인간은 피부의 피지를 통해 카복실산을 만드는데 피부에 서식하는 수백만 마리의 유익균이 피지를 분해하면서 더 많은 카복실산을 형성해 치즈 또는 발 냄새와 유사한 향을 만들어 모기를 끌어들인다는 게 연구팀의 분석이다. 사람마다 생성량이 달라 모기에 더 많이 물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보스홀 박사는 "모기는 인간의 체취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해 향수로도 체취를 감추는 것이 불가능했다"면서 "3년 동안 어떤 음식을 먹었든, 사용한 비누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33번 참가자의 시료에 모기가 몰려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또 "이를 볼 때 지금 모기에 잘 물린다면 3년 뒤에도 똑같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물론 연구팀은 체취가 모기를 유인하는 유일한 요인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모기는 자신의 시각과 인간이 호흡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체취, 체열 등 광범위한 정보를 취합해 목표물을 추적한다는 이론이 가장 유력하다. 과학적 증거는 희박하지만 혈당치와 혈액형, 심지어 성별이나 나이가 영향을 미친다는 시각도 있다.

보스홀 박사는 "이번 연구는 체취가 모기의 공격을 초래할 핵심 인자가 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인간을 물고 병균을 옮기는 다른 종의 모기에도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지, 타인의 피부 미생물을 이용해 마이크로바이옴을 변화시켜 카복실산 생산량을 줄일 수 있을지 등에 대한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록펠러대학의 레슬리 보스홀 박사(왼쪽)가 이집트숲모기를 활용해 모기가 사람의 어떤 체취를 선호하는지 연구하고 있다./록펠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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