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에서 어린이들이 '핼러윈 몬스터 파티'(Halloween Monster Party)를 즐기고 있다. /연합
지난달 28일 오전 강원 춘천시 레고랜드에서 어린이들이 '핼러윈 몬스터 파티'(Halloween Monster Party)를 즐기고 있다. /연합

펀드런을 우려할 만큼 채권시장을 패닉에 빠뜨린 도화선은 강원도 레고랜드다. 레고랜드는 덴마크의 장난감 제조업체 레고에서 기획한 테마파크로 1958년 본사가 위치한 덴마크 빌룬에 처음 조성됐으며, 이후 선풍적 인기를 끌며 전 세계로 확장됐다.

강원도 레고랜드는 지난 2011년 강원도가 영국의 테마파크 개발업체 멀린엔터테인먼트와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하면서 첫 삽을 떴다. 멀린엔터테인먼트는 미국 디즈니를 잇는 세계 2위의 테마파크 개발업체로 덴마크 레고랜드 사업이 추진되던 시점부터 레고와 협력하고 있다.

강원도 레고랜드는 춘천시 의암호 내 중도로 낙점됐으며, 정식 명칭은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다. 축구장 39개 넓이인 8만4700평에 워터파크·테마빌리지·마리나·호텔 등이 들어서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테마파크로 조성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조성 부지로 예정된 곳에서 대규모 청동기 유적이 발굴되는 등 개발 초기부터 난관에 맞닥뜨렸다. 자금 부족과 계획 변경 등으로 올들어 지난 5월 정식 개장까지 기공식만 3차례 열렸고, 개장 시기도 7차례나 연기됐다.

지난 2013년 강원도와 멀린엔터테인먼트가 맺은 본협약(UA)은 양측이 출자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가 2300억원을 투자해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내용으로 체결됐다. 하지만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자 양측은 2018년 총괄개발협약(MDA)을 통해 멀린엔터테인먼트가 1800억원, 강원중도개발공사가 800억원을 투자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더구나 레고랜드 일대의 도로와 상수도 등 기반공사를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추가 자금조달을 위해 2020년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하고, 205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했다.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은 특수목적법인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기업어음이다.

당장 레고랜드를 건설할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을 발행했지만 강원도가 지급을 보증하면서 국채 수준의 대우를 받았다. 실제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선 만큼 채권시장에서 소화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BNK투자증권이 발행 주관사를 맡은 이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은 증권사 10곳과 자산운용사 1곳이 보유 중이다.

사실 강원도 레고랜드는 개장 이후에도 불공정 계약 등 각종 잡음이 이어졌다. 강원도와 멀린엔터테인먼트가 맺은 총괄개발협약에는 강원도가 레고랜드 용지를 100년 무상 임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테마파크 일부 시설 운영에 대한 강원도 수익률은 3%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가 지급 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만기는 지난달 29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7월 취임한 김진태 지사가 지급을 거절한데 더해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밝혀 강원도 레고랜드가 채권시장 패닉의 불쏘시개로 떠올랐다.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최문순 전 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을 추진하면서 생긴 빚을 국민의힘 소속 새 지사가 막대한 예산을 써가며 떠안을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고, 특수목적법인 아이원제일차는 지난 5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강원도는 "상환을 목적으로 한 기업회생 신청으로 법정관리인이나 새로운 인수자에게 공사의 자산을 제값 받고 매각하면 빚을 다 갚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선 이를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보고 있다. 특히 강원도는 기업회생 신청과 별도로 다음달 예산 편성을 통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상환 재원을 마련하기로 했지만 지방자치단체 지급보증 채권에 대한 불신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더욱 큰 문제는 시장 전반에 걸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자산유동화기업어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건설·증권사 등으로도 위기가 확산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부동산시장 활황을 타고 지방자치단체 외에 건설사와 증권사도 공격적으로 신용보강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용보강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담보가치가 하락하는 경우 초과담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나이스신용평가 등의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으로 건설사와 증권사가 신용보강을 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은 61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증권사 신용보강 물량만 46조원을 넘어섰다. 건설·증권사의 부도 도미노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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