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주
손광주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오는가? 그렇다. 우리에게 끝내 안보위기가 왔다. 출발은 북한 핵이다. 북핵문제는 1994년 김일성 사망 무렵에서 2000년 이전까진 해치웠어야 했다. 소련·동유럽이 붕괴되고 세계질서가 급변할 때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밀어붙였어야 했다. 그때는 중국·러시아가 북핵을 확실히 반대했기 때문에, 한·미·중 3국이 손잡고 북한을 ‘강제적 개방’으로 밀어붙였으면 가능했다. 중·북 국경이 1400km가 넘는다. 연(延) 100만 명의 탈북자가 나오던 시절이다. 한·미·중이 힘을 합치면 김정일 정권 레짐체인지(regime change)가 불가능한 게 아니었다. 수령독재정권이 바뀌면 북핵도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이 준 이 기회를 놓쳤다. 달러를 퍼주고 김정일 정권을 지원했다. 우리 스스로 다 망해가던 수령독재정권의 정치·경제·외교·군사력을 다시 복원시켜 주었다. 이 화근(禍根)이 결국 우리 목에 ‘핵 비수’로 돌아온 것이다. 지금 우리는 ‘북한이 과연 핵 선제공격을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상황에 빠졌다. 북한 ‘비핵개방’ ‘북한민주화’라는 용어 자체가 쑥 들어가버렸다. 남북간 국가 전략의 역전 현상이다. 기가 막힐 일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전략은 상대와의 힘의 관계를 타산하는 게 먼저다. 상대와의 힘의 관계를 파악하려면 우리 내부를 들여다봐야 한다. 남북관계에는 변하지 않는 현상이 존재한다. 북한의 힘이 세지면 대남 공세도 세지고, 남한 내 친북세력의 힘도 세진다. 1990년대 소련 붕괴-김일성 사망-식량난·대기근-중·북관계 악화 당시에는 북한의 대남공세도, 남한 내 친북세력도 급격히 약화됐다. 반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20여 년간 북한이 기사회생하면서 남한 친북세력도 그에 비례하여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 시기의 광우병 난동,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촛불’에 불을 붙인 반미친북 세력의 전위(前衛) 역할이 컸다. 이는 87년 민주화 당시 신생조직 NL주사파 핵심들이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내걸어, 복잡하던 재야 대중운동의 방향을 일시에 정리해버린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럼에도 87년 민주화를 아직도 ‘넥타이 부대’의 승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자신의 사고방식과 사회·정치적 행위들이 ‘결과적 친북’이 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흔하다. 70여 년 남북관계의 본질과 현상을 자세히 모르니 어쩔 수도 없는 일이다. 이들에게 오래된 공산주의 전위(avant garde, the front) 이론과 체제변동론을 설명해봤자 무망하다. 2008년 광우병 난동 때 대학 친구들 만나러 촛불시위에 나온 회사원들, 유모차 끌고 광화문 시위에 나온 80년대 학번의 ‘아지매들’과 촛불 중고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지금은 정치·언론·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가 친북세력의 영향 아래 있다. 지난 3·9 대선은 한국사회가 낭떠러지로 추락하던 중 기적적으로 나무넝쿨 하나를 붙잡은 것이다. 그 나무넝쿨 이름이 ‘0.73%’라고 보면 된다. 이런 문제들은 정부가 국민에게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다. 집권 정부·여당이 모든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종합한 뒤, 핵심을 정확히 타겟팅(targeting)하여 비타협적 ‘법치’와 ‘정치’로 풀어갈 수밖에 없다.

북한은 6·25전쟁 후 정권이 안정되자 60년대부터 남한 내 지하세력을 만들어왔다. 그동안 부침(浮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야권을 숙주(宿主)로 삼아 대통령과 당 대표 선출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60여 년 민주당을 이끌어온 당내 자유민주 세력은 소수파로 전락했다. 앞으로도 북한은 ‘핵 위협’을 앞세워 친북세력에 힘을 넣어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경제위기 등 한반도 안보 정세는 또다시 복잡해졌다. 정세가 복잡할 때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의 원칙은 ‘자유와 법치’다. 속칭 ‘중도’는 이 범주에 없다. 남한 내 친북세력부터 약화시켜야 한다. 친북세력 약화가 곧 김정은 정권 약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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