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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파이낸싱(PF)은 금융사가 신용이나 담보 대신 특정사업의 사업성과 장래의 현금흐름을 보고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법이다. 수익성 기반 대출이기 때문에 차주의 신용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을 토대로 대출을 심사하는 것이다.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건설사의 과도한 자금부담을 피하기 위해 시행과 시공을 분리하는 사업구조가 보편화됐다. 건설사는 시공을 담당하고, 토지 소유권 확보·인허가·자금조달을 시행사가 전담하면서 시행사의 자금조달 방법으로 부동산 PF가 활성화됐다.

이처럼 시행사의 신용이나 담보가 아닌 수익성을 보고 대출하는 것인 만큼 프로젝트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금융사도 안전장치를 강구한다. 국내 시행사는 대부분 규모가 작고 신용등급 역시 낮기 때문에 시공사인 건설사가 지급 보증, 채무 인수, 책임 분양 등 다양한 형태의 보장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금융사는 건설사 보증이라는 안전판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사가 부도 위기에 몰리면 금융사 역시 부동산 PF를 담보로 발행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과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에 대한 매입보증 책임을 지는 등 연쇄 타격을 받게 된다.

최근 자금시장 경색으로 자금조달이 막히면서 건설사 부도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특히 금융사는 차환되지 않는 물량을 직접 매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초저금리로 호황을 누려온 건설사나 부동산 PF 대출을 대폭 늘려온 금융사가 ‘빚잔치’에 따른 부메랑을 맞고 있는 것이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지난 18일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등을 대상으로 2000억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고, 20일에는 롯데케미칼에서 5000억원을 단기차입하기로 했다. 롯데건설은 또 일반대출, 담보차입 등으로 1조원 이상의 자금조달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롯데건설이 올해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부동산 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3조1000억원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태영건설은 지난 20일 (주)군포복합개발PFV의 채무 2500억원 중 960억원의 채무보증을 결정했다. 시공사로 참여하는 군포역 복합개발사업과 관련해 시행사의 사업비 대출에 대한 자금보충 약정에 따른 것이다.

건설업계는 최근 제2금융권의 부동산PF 자금줄이 막혀 있는 상황이다. 금융사가 신규 대출은 꺼리고, 대출을 연장할 때는 빡빡한 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해도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 금리는 연 5%대였지만 6월 이후 가파르게 뛰어 법정 최고금리인 20%에 가까운 고금리를 요구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은행의 부동산PF 대출도 기대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부동산PF 대출 심사를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제2금융권보다 보수적으로 대출을 심사해 위험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고, 자산 규모가 크기 때문에 웬만한 부실은 감수할 수 있지만 부동산PF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등 몸사리기에 들어간 양상이다.

현재 부동산PF와 관련해 유동성 리스크가 가장 큰 곳은 증권사다. 지난 2013년부터 부동산PF 시장의 주도권이 은행권에서 증권업으로 손바뀜됐기 때문이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증권사가 매입을 보증하거나 신용보강을 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과 자산담보부단기채 중 이달에 만기가 오는 규모는 약 6조6000억원, 다음달에는 약 10조7000억원에 달한다. 지금과 같은 자금시장 경색이 지속될 경우 부동산PF 대출이 많은 중소형 증권사부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23일 금융당국 수장들이 모여 부동산PF 시장 정상화를 위한 방안을 내놓자 관련업계에서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건설사와 증권사가 신용보강한 만기 도래 자산유동화기업어음 규모는 연말까지 32조3908억원, 내년 상반기까지 57조3759억원에 달한다. 신용보강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담보가치가 하락하는 경우 초과담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부동산PF 부실화로 인한 자금시장 경색의 급한 불은 끈 상태다. 하지만 부동산PF 부실화 위기가 일반 우량기업의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으로 전이될 경우 내년 상반기엔 부도 도미노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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