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의 더불어민주당이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24일 오후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야야 간에 이미 합의된 대통령 시정연설을 거부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민주연구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민주당은 오후에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 이들이 내놓은 명분은 ‘정치탄압’이다. 하지만 검찰의 대장동 게이트 수사를 진짜 ‘정치탄압’으로 믿는 국민은 민주당 국회의원과 ‘개딸들’밖에 없을 것이다.

민주당이 대통령 시정연설을 거부한 것은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스스로 의회주의를 포기한 해괴한 사례에 속한다.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행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설명하고 국회에 협조를 구하는 것이 취지다. 쉽게 말해, "행정부가 내년에 이러이러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 예산이 이 정도 들어가니까 국회의원님들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내용이다. 영미(英美)식 의회주의에서 행정부-입법부 간 견제와 균형의 취지에서 출발했다. 영어를 직역하면 The Budget Speech of the President(대통령의 예산 설명 연설)이다. 국회는 행정부의 예산 편성에 대한 심의권을 갖는다. 국회는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들어보고 행정부의 예산편성이 불합리하다고 판단되면 얼마든지 견제할 수 있다. 아닌 말로 언론을 통해 조목조목 ‘박살’을 낼 수도 있고, 정히 대통령의 국정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면 국민 다수의 지지를 업고 예산 심의를 안 해줘도 그만이다. 대통령 시정연설이라는 관행 자체가 국회가 ‘갑’, 행정부가 ‘을’에서 출발한 것이다. 더욱이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다수당이 아닌가.

과거 권위주의 시기에는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도 하지 않았다. ‘행정부가 예산을 쓰겠다면 쓰는 것이지, 국회가 웬 말이 많아?’ 식이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니까 대통령을 국회로 불러서 ‘나랏돈을 쓰려면 미리 국회에 보고하고 양해를 구하라’는 취지인데, 민주당은 스스로 다수당의 권위를 포기한 것이다. 생떼를 쓰면서 밥을 안 먹는 것은 아이들인데, 이는 거꾸로 엄마가 밥을 안 먹고 떼를 쓰는 희한한 경우다. 민주당이 ‘이재명 방탄용’으로 국회를 악용하려다 보니까, 이런 무리수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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