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바다를 불의 바다로 잠재우다
사람의 바다를 불의 바다로 잠재우다
  • 글 최응표 한국사바로알리기미주본부 대표/ 영역 남신우 북한인권국제연대 대표
  • 승인 2020.02.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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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월은 대한민국이 군사적,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을 때 입니다. 대대적인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후퇴를 거듭하자 트 루먼 대통령은 철수를 결정하고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을 한국에 파견 합니다. 철군을 미군 장교단에게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승만도 그즈음 미군의 철수를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새로 부임 한 8군 사령관 리지웨이는 인사차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저는 미8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미군을 여기 머물게 하기 위해 왔습니다.” 라는 인사말로 이승만 대통령을 안심시켰습니다.

▼ 국군에게 돌격하는 중공군

리지웨이 장군에게 철군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지휘관으 로서 적의 위치와 전투력을 파악하지 않는 것만큼 심각한 죄는 없다’ 고 생각하던 리지웨이는 먼저 적의 동향부터 파악하기로 하고 작전 명‘ 위력 수색 작전 울프하운드 작전을 벌입니다. 리지웨이는 중국군이 공세 종말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 세종 말점이란 군대가 공격을 지속할 수 있는 한계선을 말합니다. 리 지웨이는 8군 25사단 27연대에게 적의 동향과 전투력을 가늠할 수 있 을 정도까지만 진격한 뒤 중국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 면 후퇴하라고 지시합니다. 이것이 위력 수색 작전이었습니다. 수색대는 1951년 1월 15일 작전을 개시해 평택까지 북상했지만 중 공군은 그림자도 볼 수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수원까지 진출했는데 도 눈에 띌만한 중공군의 공격은 없었습니다. 리지웨이의 예측이 맞

은 것입니다. 연달아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오로지 보병만으로 전투를 했던 중국군은 전투 손실이 너무 컸고 게다가 너무 빠르게 남하한 탓 에 보급선이 길어져 중공군 병사들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보고를 들은 리지웨이는 콜린스 참모총장을 설득해 반격의 기회를 얻어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썬더볼트 작전’입니다. 이때 리지웨 이의 그 유명한 명언이 나옵니다.

▲ 투항하는 중공군
▲ 투항하는 중공군

“펑더화이가 사람의 바다를 만들면 나는 불의 바다를 만들 것이다”

중국군 총사령관인 펑더화이가 사람으로 바다(인해 전술)를 만든 다면 자기는 불로 바다(火海-화해 전술)를 만들어 중국군의 인해 전 술을 미군의 막강한 화력(火力)으로 제압하겠다고 설득한 것입니다. 울프하운드 작전을 통해 공산 세력의 전력을 파악한 유엔군은 1951년 1월 25일 드디어 썬더볼트 작전을 개시합니다. 길어진 보급 선으로 겨우 연명하던 중국군은 썬더볼트 작전을 도저히 감당할 수 가 없었습니다. 만약 리지웨이 장군의‘ 울프하운드 작전’이 없었고 뒤 이은‘ 썬더볼트 작전’이 실패해 미군이 철수했다면 대한민국의 운명 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국을 지키는 것이 곧 자기 나라를 지키는 것 과 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6ㆍ25 전쟁에 임한 리지웨이 장군의 올곧은 정신이 철군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살려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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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판

In January 1951, Republic of Korea was in a precarious situation both militarily and politically. The U.N. Forces had to withdraw when the Chinese army came in to fight. President Truman decided to withdraw from the Korea and dispatched General Joseph L. Collins, the U.S. Army Chief of Staff, to Korea to inform the field officers of the President’s decision to withdraw. Syngman Rhee was also concerned about the U.S. troop’s withdrawal from Korea. General Matthew Ridgway, the new

투항하는 중공군

The Human Wave was Subdued by Fire Wave

commander of the 8th Army assured President Rhee when he first met with the President, “I came here not to withdraw the 8th Army, but to have them stay here.” It was unthinkable for Gen. Ridgway to withdraw the 8th Army without knowing the situation. He was determined to find out the situation of the war. Ridgway decided to find out enemy’s force and movement. He called the ‘Enemy Force Search Operation’ to be ‘Operation Wolfhound.’ General Ridgway believed that the Chinese army was near the end of their capability to attack. He ordered the 27th Regiment of the 25th Division of the 8th Army to advance only to size up the enemy forces and their whereabouts, then withdraw quickly when they achieved the objective of their operation. That was the essence of the Enemy Force Search Operation. The Search unit began its operation on January 15, 1951, and advanced north up to Pyong Taek City, but could not see a single Chinese soldier. They went up further to Suwon, but did not encounter any Chinese units attacking them. Ridgway was correct. The Chinese won many battles, but they fought only with infantry units therefore suffered tremendous casualties. They moved south too fast so their supply line was too stretched out. The soldiers were tired and very low on morale. When he got all the reports, Gen. Ridgway convinced Gen.

투항해서 포로가 된 중공군

Collins, the Army Chief of Staff, to let him counter-attack the Chinese army. That became the “Operation Thunderbolt.” General Ridgway was quoted which became quite famous, “If Peng Duhuai wants to use human waves tactics, I will counter and subdue him with my sea of fire tactics.” The U.N. forces began its Operation Thunderbolt on January 25, 1951 after they got the report about the Chinese forces. The supply line for the Chinese army became very long and difficult. There was no way they could fight and overcome the Operation Thunderbolt. If there was no Operation Wolfhound or Operation Thunderbolt later, and if the U.S. troops withdrew from Korea, what would have happened to Korea? General Ridgway who believed strongly that he would be saving his country by saving South Korea saved Korea by refusing to withdraw from the peninsula.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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