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명예 퇴임사 (下)] 나도 몰랐던 '키팅 선생님' 별명··· 속 깊은 아이들
[어떤 명예 퇴임사 (下)] 나도 몰랐던 '키팅 선생님' 별명··· 속 깊은 아이들
  • 최성재
  • 승인 2017.12.14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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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무결석의 신화를 달성한 그 반은 출결 관리가 제일 힘든 고3, 그것도 남학생 반이었습니다. 불과 5년인가 6년인가 전의 일입니다.

담임이 모범을 보인다고 학생들이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닙니다. 개성이 아주 강한 반을 맡으면, 저 악명 높은 이해찬 세대부터 출결이 무상합니다. 출석부가 아니라 결석부가 됩니다. 그러면 동료 선생님들이 놀려댑니다. 저 반은 담임 혼자만 열심히 한다고 말입니다. 결국 사달이 났습니다. 하루는 종례시간에 들어갔더니, 출석부가 안 보였습니다. 침착하게 주번과 반장에게 확인하고 나서, 저는 유유히 뒤돌아서서 칠판을 마주했습니다.

“10,000원!”

이렇게 쓰고 아무 말 없이 교무실로 내려갔습니다. 막 제 자리에 앉으려는데, 교무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열 명 가까이 우당탕탕 달려왔습니다. 그중에 일등으로 들어온 학생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했습니다.

“선생님, 찾았어요! 출석부 찾았어요!”

“어디서 찾았니?”

“옆 반 라디에이터 뒤에 있던데요.”

“Good job! Thank you!”

저는 그 자리에서 만 원을 건네주었습니다.

한 달 후 또 출석부가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저는 일언반구도 없이 교무실로 내려갔습니다. 뒤에서 수군수군했습니다.

“누구야, 속 보인다, 또 만 원 벌려고, 야, 빨리 자수해라, 우리 선생님이 겉으로는 저래도 속으로는 엄청 화나신 듯하다.”

잠시 후 저는 B4 용지를 한 아름 안고 와서 빙그레 웃으며 흔듭니다.

“이게 출석부 복사한 거거든, 선생님이 좀 귀찮겠지만, 아무 걱정 없단다.”

그리고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바로 학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 다음날 출석부는 얌전하게 교무실의 2학년 5반 제자리에 꽂혀 있었습니다. 다시는 출석부가 사라지지 않았고, 출결 사항도 그 후로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이들보다 조금 나았지만, 전교에서 제일 문제가 많던 반을 맡은 적이 또 있습니다. 저는 몇 달 동안 그런 줄도 몰랐습니다. 단지 주관이 뚜렷한 학생이 꽤 있구나,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 유치장으로 면회 갔습니다. 구멍 숭숭 창문을 사이에 두고 폭행 사건에 연루된 우리 반의 짱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저는 자초지종을 듣고 그 자리서 진정서를 써서 제출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그 학생이 풀려났습니다.

“여러분, 우리 정군이 유치장에 갔다 왔다고 해서 외계인 보듯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는 00공원에서 여학생을 희롱하는 동네 불량배 두 명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고, 지나는 어른도 다들 못 본 척하고 슬금슬금 피하는 것에 한층 화가 치밀어서, 사나이답게 정정당당하게 정의의 주먹을 휘둘렀을 뿐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일을 목격하면, 외면하지 말고 선한 사마리아가 되어, 정의의 주먹을 휘두르기 바랍니다. 단! 정의의 흔적은 남기지 말기 바랍니다.”

역시 그 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번에는 학생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내 폭력 건이었습니다.

“야, 너네 담임 최성재 말이야.”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너네 담임 최성재 말이야.”

“최성재 선생님!”

“이 새끼 웃기네, 우리끼린데 뭘 그러냐?”

“우리 선생님은 다르단 말이야.”

“웃기고 자빠졌네.”

“이 새끼가!”

저는 그날 은근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역시 그 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영어 주관식 답안을 채점하는데, ‘젖소 부인 바람났네’라고 일필휘지한 학생을 발견했습니다. 그 기발한 은유(metaphor)에 깜짝 놀라서 그 다음날 학생들이 다 보는 앞에서 참으로 창의력이 돋보인다고, 장차 뭔가는 해도 크게 할 인물이라고 아낌없이 칭찬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얼마나 속이 깊었는지를 1년 후에야 우연히 알았습니다. 맹한 담임이 무안해질까 봐, 그 자리서 아무도 그게 영화 제목인지를 알려 주지 않았던 겁니다. 그때 당시 저의 별명은 학년말에 알고 보니, 키팅 선생님이었습니다. 교지에 그렇게 씌어 있더군요.

25년이 지나도 선연히 떠오르는 우리 2학년 7반, 공부는 12학급 중 12등을 도맡아 차지했지만, 운동은 발군이었습니다. 교내 체육대회에서 압도적인 차이로 종합우승했습니다. 시상식이 끝나자, 학생들이 우르르 저한테 달려왔습니다. 헹가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를 공깃돌처럼 가볍게 휙 공중 높이 집어던졌습니다. 순간 저는 아찔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사랑하는 제자들은 담임을 해어화(解語花) 다루듯 조심스레 다뤘습니다. 모진 겨울바람에 떨어지는 한 송이 동백꽃에 손을 뻗치듯, 일제히 손 그물을 펼쳐 저를 부드럽게, 부드럽게, 리드미컬하게 받아 주었습니다. 문득 왕안석(王安石)의 시구가 떠올랐습니다.

掃地待花落(소지대화락)

惜花輕著塵(석화경착진)

땅을 쓸고 꽃이 지길 기다리노라

꽃에 티끌 한 올이라도 묻을세라

그사이 제 몸은 다시 붕 솟아올랐습니다. 한 열 번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어떤 놀이기구가 있어 그처럼 짜릿하면서도 그처럼 포근할 수도 있을까요? 저는 그날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저라고 말썽 많은 학생들만 지도한 건 아니었습니다. 모범 학생 한 명만 더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휴대폰이 없을 때였습니다. 아리따운 아가씨 목소리였습니다.

“선생님, 저 용00예요.”

“아, 그래 오랜만이다. 한 5년 됐지?”

“예, 고려대 유전공학과 3학년이에요. 선생님, 선생님, 저 있잖아요. 드디어 들었어요! 바흐(Bach)의 ≪무반주 첼로모음곡 6곡≫ 전곡을 들었어요! 그것도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의 연주로 들었어요!”

저는 수업 시간에 고전 중심으로 책도 곧잘 소개하지만 클래식 음악 얘기도 자주 해 줍니다. 그중에 바흐 이야기가 나오면 ≪무반주 첼로모음곡≫과 ≪미사 B단조≫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들어야 한다고, 꼭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각각 ≪구름에 둘러싸인 고고한 산≫이요, ≪먹구름 위에서 푸르게 빛나는 하늘≫이라고 합니다. 첼로의 영원한 거장 카잘스가 우연히 발견한 바흐의 난해하지만 더없이 고상하고 아름다운 첼로 모음곡을 30년간 연구해서 세상에 널리 알렸다는 얘기도 곁들입니다. 그 여학생은 그걸 5년간 마음에 꼭꼭 새기고 있다가 마침내 듣고는 주체할 수 없는 ‘환희의 송가’를 불렀던 겁니다.

최근에 교실이 선진화되면서 유튜브를 이용하여 수업 시작 5분 정도 클래식 중심으로 음악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해설도 곁들여서요. 성악곡은 원어의 일부를 칠판에 적고 그 아래 영어로 한 단어 한 단어 풀이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베르디(Verdi)의 ≪히브리 노예의 합창≫을 들려주며, 첫 악절에 해당하는 가사를 칠판에 씁니다.

Va, pensiero, sull’ali dorate

(Go, thought, on the wings of gold)

(가라, 생각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

Va, ti posa sui clivi, sui colli

(Go, yourself put on the slopes, on the hills)

(가라, 언덕 위로 날아가라)

수업 진도에 여유가 있으면 악보도 조금 그려 주고, 계명으로도 불러 줍니다.

미레도솔 솔솔미도 도시레파

솔솔솔도 미레미레 도시

제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다빈치(da Vinci)의 저 유명한 ≪지네브라(Ginevra)≫를 깔아 놓고 1년간 알아맞힐 기회를 줍니다. 딱 한 번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상점 10점을 주었습니다. 세계 최부국 미국도 다빈치 그림은 그것 하나밖에 없지요. 워싱턴 미(美)국립미술관에서 메릴 스트립( (Meryl Streep)이 30분인가 60분인가 그 그림에 대해서 1년 내내 설명을 해 준답니다.

1978년 중국에서 제일 먼저 혁신이 일어난 분야는 경제가 아니라 교육입니다. 그때부터 중국의 교육이념은 사호소년(四好少年)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전인교육(全人敎育)과 같은 개념인데, 지덕체(智德體)에 하나가 더 추가된 것입니다. 지덕체미(智德體美), 곧 예술을 추가한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중국이 이제 교육에서, 특히 수학과 과학, 체육과 예술에서 우리나라를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체육과 음악과 미술과 문학은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 주는 필수 교육과정입니다. 인성이 절로 순화되고 품성이 절로 반듯해지지 않습니다. 예체능을 반드시 배우고 스스로 즐겨야 그렇게 됩니다. 여러분의 삶도 보다 풍요롭고 행복하기 바랍니다.

I wish you every happiness! (2017. 12. 12. 기억을 더듬어 정리함.)

◇ 필자 최성재는?

서울대 영어교육과 졸업

전 영어교사

문화·교육평론가

csj@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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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2018-12-13 21:50:33
참으로 따뜻하고 인격젹인 선생님이십니다. 늘 한결같이...변함없이 그길을 걸으셨습니다. 나이어린 저희에겐 교사의 꿈을 맘껏 펼칠.길을 만들어 주셨으며, 학생들을 향한 열정은 동료 교사들에게 늘 도전을 주었습니다. 힘든 병마와 싸움에도 요동치 않으시고 늘 아이들이게 , 동료교사들에게 인격적이신 최성재 선생님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삶을 응원합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김처사 2017-12-15 18:04:39
감동적입니다. 이 글을 널리 퍼뜨려야겠습니다. 이 분의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바로.

정수현 2017-12-15 11:34:47
교권이 많이 추락한 요즘 투철한 교육철학으로 이렇게 고군분투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아직 우리나라 미래는 밝다고 봅니다. 우리나라도 키팅선생님이라는 대명사대신 우리나라선생님을 대표할수 있는 한글대명사가 나올수있도록 미디어들이 녹녹찮은 우리 학교현장을 재 조명하여 선생님들을 격려해주시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