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사림의 후예라니!
유승민, 사림의 후예라니!
  • 이강호 편집위원
  • 승인 202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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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이 불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사림(士林)의 피를 이어받아,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과 나라에 충성하는 기개와 품격을 지닌 대구의 아들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했다. 뜬금없다.

그가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그 같은 발상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비교의 맥락상으로서도 틀렸다. 그는 조선시대 사림정신을 보수(conservative)와 동일시하는 듯하지만 그게 근대적 보수의 정신이라 할 수는 없다. 근대적 의미에서의 보수는 무엇보다도 급진주의 폐해의 반대편이다.

더욱이 굳이 유사한 유형을 찾자면 한국의 정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는 386운동권 패거리가 오히려 조선시대 사림과 닮았다.

◇조선조판 운동권

KBS1 영상 캡쳐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반정(中宗反正), 배경에는 무오 갑자 두 차례의 사화가 있었다. 사림세력의 반발이 반정으로 이어진 것이니 조선조판 독재타도쯤 되겠다. 새로 옹립된 중종은 33세의 조광조를 기용했다. 조광조는 등용되기 전부터 사림의 영수로 추앙받던 인물이었고, 기용될 때 성균관유생 200인의 추천을 받을 정도였다. 말하자면 당시의 운동권 스타의 발탁이었던 셈이다.

조광조는 도학정치(道學政治) 내걸고 각종의 개혁조치를 맹렬히 밀어붙였다. 매우 ‘운동권스러웠다’ 할까? 스타일도 그랬지만 조광조가 내건 각종 개혁안도 여러모로 그랬다. 현량과(賢良科)를 실시, 어진 자를 추천으로 기용한다는 명분으로 사림들만 대거 등용했다. ‘코드 인사’다.

민생을 위한 조치도 있긴 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오직 사농(士農)만 있었을 뿐 그 어떤 조치에도 공상(工商)은 없었다. 어질게 베푸는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전부였을 뿐 경제를 통한 국부증진의 관점은 원천적으로 결여돼 있었다. 국방문제는 흔적조차 없었다.

오늘날의 386운동권 출신 패거리들이 시대를 넘는 유사성을 보인다. 경제성장과 국부증진에 대한 구상은 도외시한 채 오직 구호만의 경제정의를 외친다. 따지고 보면 조광조의 몰락의 계기가 된 위훈삭제도 그렇다. 과거 들추기를 통한 정치공세라는 점에선 문재인 정권의 적페청산이 그와 유사하다. 안보관의 결여도 빼다 박았다.

◇개국반대자를 정신적 시조로 했던 사림, 그보다 더 악성인 오늘의 운동권

사림의 계보
사림의 계보

사림은 개국 이래 줄곧 재야에 있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삼은 정몽주는 태조 이성계의 조선왕조 개창에 반발하다 나중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 의해 격살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사림이 마침내 조선의 중앙정치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성종 때 김종직이 발탁되면서다. 개국 이래 꽤 세월은 흘렀다지만 아이러니였다. 조선의 개국에 반대한 인물을 정신적 지주로 했던 세력이 조선의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이 기묘한 양상은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의 운동권의 모습을 보면 낯설지가 않다. 이들은 정부수립에 기어코 반대한 김구는 정도 이상으로 추앙하면서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한없이 깎아 내린다. 심지어는 주사파들은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인하고 북한에 정통성이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래도 당시 사림들은 비록 정몽주를 종조로 했어도 조선왕조에 대한 완전한 충성은 갖추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종북주사파들은 조선조의 사림들의 문제점에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악성이다.

조광조가 죽으면서 사림 시대가 물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한번 시작된 시대는 거듭되는 곡절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대세가 되어갔다. 그렇게 그 자신이 기득권세력이 돼가자 초기에 그나마 가졌던 개혁적 기풍도 다 잊었다.

백성의 삶은 날로 피폐해져갔으나 사림들은 글만 농단하는 숭문(崇文)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임진왜란, 정묘 병자 두 차례의 호란(胡亂) 등 대전쟁으로 온 나라가 연거푸 유린됐다.

◇사림정신이 아니라 좌익 급진주의에 맞서는 게 보수다

386세대의 좌익 급진주의는 한국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등장 이후 한 세대의 세월, 민주화 이후 30여년이 흘렀다. 그 세월을 거치며 우리사회는 적지 않은 대가를 치렀다.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386으로부터 확산된 하나의 경향성이 한국사회의 지난 30여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민주주의가 광장의 소동과 동일시되면서 먼지가 난무하고 고함은 가득해졌지만 경제는 허덕이고 있다. 북한의 위협과 중국의 방자함이 도를 넘어섰지만 종북반역세력이 마구 설쳐대는 상황이다.

사림정신이 보수일 수는 없다. 역사적 비교로서도 그렇지만 본질적 의미에서도 사림과 보수를 마치 통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틀렸다. 유승민의 사림 운운은 한편으로는 견강부회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사고방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근대적 보수는 급진주의의 파괴적 사고와 행태에 대한 반대지 퇴행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보수는 무엇보다도 386운동권 패거리들의 급진주의와 그것이 빚어내는 퇴행적 난장판의 반대편에 있다.

근대적 보수는 경험과 실재를 중요시한다. 그래서 급진주의를 빚어내는 좌익의 관념적 공허함에 반대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이다. 그래서 한국의 보수는 굳이 조선시대에서 비교할만한 싹을 찾자면 실학(實學)이다.

근대 국민국가 대한민국의 탄생과 이후의 성취는 어떤 점에선 피어나 이룩되지 못한 실학정신의 현대적 구현이라 할만하다. 유승민도 그렇지만 한국의 보수우파를 자임하는 모두가 이 점을 다시 되새겼으면 한다.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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