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필섭
공필섭

대만은 아열대의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위스키 증발율이 10%-15%나 된다. 엔젤스 쉐어(Angel’s share)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2%에 비하면 꽤 높은 편이다.

기후로 인해 대만 위스키는 10년 이상 고숙성이 매우 힘들다. 게다가 보리 작황이 불가능한 기후이기 때문에 몰트 증류에 치명적이다. 그러니 싱글몰트 증류소 설립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선은 그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변의 만류와 높은 사업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몰트 애호가였던 대만 킹카그룹 회장 리텐차이는 우직하게 밀어붙여 2005년 증류소 ‘카발란’을 만든다.

5년 후, 2010년 스코틀랜드에서 국제 블라인드 테이스팅 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에서 스코틀랜드, 영국 등 기라성 같은 몰트들을 제치고 카발란이 1위를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그 제품은 숙성기간이 고작 3년밖에 안되는 ‘카발란 클래식’이었다. 설립된 지 5년, 숙성 3년의 신생 위스키를 관계자들은 우습게 여겼다. 그 비웃음을 불식시킨 건 ‘지옥의 증발율’이었다. 높은 증발율로 인해 짧은 숙성기간에도 오히려 깊은 맛이 나게 된 것이다. 반전이었다.

대만 작가 김용의 ‘영웅문’은 무협소설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온갖 인간 군상의 심리를 송·원·명의 역사적 서사와 엮어 크게 히트쳤다. 카발란 역시 이후 국제대회에서 수백 번 수상을 하며 70개 국에 연간 1000만 병을 공급하는 저력을 보인다.

지난 6월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카발란 솔리스트 쉐리’가 등장한다. 이 위스키를 음미하며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 옛날 경부고속도로와 제철소를 극렬히 반대했던, 그런 편협한 시선들을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은지, 리텐차이의 카발란을 한잔 하며 곱씹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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