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강규형

세계의 거의 모든 교향악단은 매해 마지막 공연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연주한다. 그의 위대한 교향곡 9번을 경건히 들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뜻이 있고, 베토벤의 전체 음악을 관통하는 주제인 <암흑에서 광명>으로의 정신이 가장 잘 구현된 작품이 <합창>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합창>은 영혼의 음악이다. 청력이 손실된 상태에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완성한 곡이며, 듣다 보면 인간이 만들어 낸 작품이 아닌 듯한 느낌까지 든다.

내가 실황과 음반으로 들은 9번은 셀 수 없이 많다. 연주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이 곡을 대하는 모든 지휘자의 공통적인 마음은 경건함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 곡을 빠르게 연주한 지휘자들도 꽤 있었다. 토스카니니나 젊은 시절 카라얀은 빠른 템포로 이 곡을 연주했지만, 그냥 빠른 것이 아니라 구조와 개성,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연주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연주는 전설적인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연주(혹은 54년의 루체른 실황연주)와 카를 뵘(Böhm)의 1970년 스튜디오 녹음이다. 이 연주들은 느긋한 템포로 연주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냥 시간만 늘린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혼을 집어넣고 연주하니 육중한 느낌이 든다. 예를 들어 뵘 지휘 빈 필하모닉의 헤비급 연주는 긴 시간이지만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인 연주였다.

<합창>은 절대로 가볍게 일상적으로 연주돼서는 안 되는 곡이다. 올해도 한국의 교향악단들은 9번을 연주하면서 공식 일정을 마쳤다. 매해 마지막 공연으로 9번을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레퍼토리의 변화를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가끔 보인다. 새해는 송년 음악회의 정신이 살아나는 광명의 시대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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