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따른 '킹달러'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리차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각국이 미국을 뒤따라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환율은 7위안을 넘으며 통화가치 하락을 보였다. /연합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따른 '킹달러' 현상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리차에 따른 자본유출을 막기 위해 각국이 미국을 뒤따라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다. 최근 달러화에 대한 위안화 환율은 7위안을 넘으며 통화가치 하락을 보였다. /연합

글로벌 경제가 ‘킹달러’로 신음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행보가 달러 초강세로 이어지면서 각국의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미 연준의 공격적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킹달러 현상은 전 세계적이지만 일본과 중국에서 유독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금리격차에 따른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각국이 미국을 뒤따라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확장적 통화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 경제의 두 축인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원화의 동반 추락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시장 불안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3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달러에 대한 엔화와 위안화 환율은 심리적 저항선인 150엔과 7위안을 돌파해 각각 32년, 15년 만의 기록적 통화가치 하락을 보이고 있다. 일본과 중국의 외환당국은 시장 개입에 나서고 있지만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들어 엔·달러 환율은 30% 가까이 급락했다. 올해 1∼2월 달러당 115엔 안팎에서 등락하던 엔·달러 환율은 3월부터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해 지난 20일에는 일본의 버블경제 후반기였던 1990년 8월 이후 32년 2개월 만에 처음 150엔을 넘어섰다.

엔화가치의 추락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과의 금리격차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은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원자재·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기준금리를 공세적으로 올리고 있지만 일본은 나홀로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지난 27∼28일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도 단기금리를 마이너스(-) 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0%가 되도록 상한 없이 장기 국채를 매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의 정책금리(기준금리) 차이가 3%포인트로 벌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선 달러를 사고 엔화를 매도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엔화 약세 흐름을 막기 위해서는 일본도 정책금리 인상에 나서야 하지만 일본은행은 경기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규모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막대한 규모의 부채 때문이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일본의 국채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처음으로 1000조엔(약 9700조원)을 넘어섰다. 일본은행이 정책금리를 1∼2%포인트 올리면 정부의 연간 원리금 부담액이 3조7000억∼7조5000억엔(36조∼73조원) 늘어나는 구조다.

위안·달러 환율도 달러당 7위안 선을 훌쩍 넘어서며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까지만 해도 6.7위안 수준이던 역내 위안화 가치는 이달 25일 15년 만에 최저인 7.2위안으로 떨어졌고, 역외 위안화 가치도 7.3위안으로 2010년 이후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위안화 약세는 달러 강세에 따른 측면이 크지만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과 부동산경기 하락에 따른 타격에 대응하기 위해 통화·재정 확장정책을 실시한 것도 주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3차례에 걸쳐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1년 만기 대출우대금리(LPR)를 3.85%에서 3.65%로 내렸다. 여기에 올해 1∼9월 중국 중앙·지방정부의 재정적자도 전년 동기의 3배이자 역대 최대 수준인 7조1600억 위안(약 1403조원)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제로 코로나 정책을 수정하는 것 외에 단기간에 성장을 되살릴 카드가 거의 없지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제로 코로나를 자신의 주요 치적으로 내세워온 만큼 현재의 기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일본과 중국의 통화가치가 급락하면서 원화가치 추락에 대한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해외 자금의 아시아에 대한 투자 비중이 줄어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자본 유출 압력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로 가뜩이나 수입물가 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엔화와 위안화 약세는 일본과 중국의 경기둔화로 이어져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를 복합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 외환위기 트라우마가 소환되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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