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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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대변인 시절 매일 아침 대통령에게 언론 브리핑을 할 때 대통령을 물어뜯거나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증폭시키는 기사가 태반이어서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사소한 것도 꼬투리 잡아 윤석열 대통령을 욕하는 좌파 언론에게 하는 말 같지만, 이 글의 작성자는 놀랍게도 김의겸 현 민주당 의원이다. 흑석동 부동산 투기로 청와대 대변인에서 물러난 김의겸은 총선 출마를 위해 민주당 공천을 받으려다 거부당하자 새로 창당한 열린민주당에 들어간다. 그는 자신이 정치하려는 이유를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맵니다’란 입장문에 담았는데, 그 글의 결론은 바로 다음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언론 보도로 피해를 보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의원이 된 김의겸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사소한 걸 꼬투리 잡아 대통령을 욕하는 언론의 행태가 전 정권보다 심해졌는데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그건 ‘주어’를 헷갈린 탓, 김의겸이 한 말은 바로 다음이었다. "‘아니면 말고’ 식의 언론보도로 (언론사가) 피해를 보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언론사가 쓸까 말까 망설이는 가짜뉴스도 면책특권을 가진 자신이 먼저 터뜨려 줌으로써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로 만들겠다는 뜻, 더 감동적인 건 김의겸의 열린 자세다. 그는 공인된 언론사뿐 아니라 유튜브까지도 보호대상에 포함시켜 줬다.

지난 한 주를 뜨겁게 달군 ‘한동훈 장관의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보자. 이 정보는 네티즌들이 ‘더 참사’(더 탐사)라 부르는, 찌라시 수준도 안 되는 유튜브 채널(전문용어로 사이버 렉카)이 갖고 있던 것, 여기서 먼저 의혹을 터뜨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워낙 허황된 얘기인지라 제대로 된 언론사들은 외면했을 테고, 해당 유튜브는 고소 고발돼 채널이 없어지는 해피엔딩이 됐을 것이다. 그래서 김의겸이 나섰다. 그는 ‘더 참사’가 보도하기 전인 10월 25일 국감장에서 술자리 의혹을 제기하며 녹취록을 튼다. 말도 안 되는 내용에 한동훈 장관은 화를 냈지만, 김의겸은 끄덕없다. 그에겐 면책특권이란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정보를 제공한 ‘더 참사’는 2시간짜리 풀 영상을 튼다. 엄청난 슈퍼챗 (유튜브 시청자가 보내주는 돈)이 쏟아진다. 신이 난 ‘더 참사’는 전날 방송을 다음날에도 재탕한다. 또 슈퍼챗이 쏟아진다. 이런 일이 매일 밤 반복된다. ‘더 참사’의 구성원들은 원래 김건희 여사를 스토킹하던 사이버 렉카 채널에서 일하던 이들, 하지만 돈 문제로 싸움이 났고, 결국 독립해 따로 채널을 만들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계가 막막하던 와중에 대박이 터진 것인데, 아마 ‘더 참사’는 쏟아지는 돈다발을 보면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김의겸 의원님, 협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회의원의 좋은 점은 면책특권만이 아니다. 자기 편은 무조건 감싸주는 동료 의원들이 있다는 것도 큰 힘이 된다. 이재명 대표 지키기에 바쁜 와중에도, 민주당은 가짜뉴스 살포로 곤경에 처한 김의겸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먼저 전직 법무장관 박범계, "그런데 한동훈 장관께서, 제 기억으로는 한 2분 정도, 그 질문을 하는데 바로 답이 부정적인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 장관이) 생각 정리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쪽의 카드가 어디까지 있는지를 좀 탐색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점은 좀 의아스럽다." 다음 양이원영 의원, "너무나 강한 부정에 흥분하는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다." 박성준 대변인, "대통령과 장관, 그리고 거대 로펌 변호사들이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국정감사장에서 질의한 것은 국회의원의 당연한 책무다. 무엇이 잘못됐다는 것인가?" 박홍근 원내대표, "차분하게 답변하면 될 일 아니냐. 그런데 과도하게 화를 내고 자기 직을 걸면서 끝까지 질의 의원들에게 면박을 줬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 김성환 정책위의장, "갈수록 증거가 추가로 나오는데, 사실이라면 이 일은 제2의 국정농단에 해당될 만큼 엄청난 사건이다.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은 떳떳하다면 그 시기의 동선을 낱낱이 밝히길 바란다."

뜨거운 동료애에 가슴이 뭉클해지는데, 덕분에 진지하게 얘기할 가치도 없는 술자리 의혹은 일주일째 인터넷을 달구고, ‘더 참사’는 오늘도 돈더미에 파묻힌 채 잠이 든다. 첼로와 피아노가 있는 고급 바에서 술을 마실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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