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 정부가 불안하다
[시론]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 정부가 불안하다
  • 박석근 문화 에디터
  • 승인 2017.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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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과 사법부가 한 몸 되어 놀아 난 '강정마을 구상권 면죄부'

[박석근 본보 문화에디터]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국가는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아테네였다. 당시 법체계는 관습법(慣習法)이었고 오늘날 같은 사법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시민은 소추권을 가졌으며, 재판은 추첨에 의해 선발된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에 의해 진행되었다. 판결은 배심원의 다수결로 결정되었다.

당시를 기록한 문헌을 보면 죄의 유무는 때때로 고소인과 피고소인 중 어느 쪽이 언변에 능하고 대중에 영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는 도시국가의 성장과 발전을 저해하였고 민중선동가들이 판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선동에 능하고 권력에 따라 바뀌는 재판의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배심원 자격에 제한을 가했다. 로마 시민 가운데 교양과 경험을 갖춘 40만 세스테르티우스 이상의 재산을 가진 로마 시민 중에서 추첨을 통해 선발했다. 이것은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사회방어’에 더 투철하다 믿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노예출신일지라도 이러한 자격을 갖추면 배심원이 될 수 있었다.

고대 도시국가에서 권력에 따라 유·무죄가 바뀌는 재판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이른바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고 있는 일련의 재판이 그것이다. 적폐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는 뜻이다. 애초에 정치의 꼬리표를 단 채 탄생한 단어가 아닌가. 따라서 이 정부의 ‘적폐청산’은 정치적 사안을 사법적 단죄로 몰아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중이 원한다면 '악마와 악수'라도 할 태세다.

근대 이후 문명국가는 정치와 사법을 엄격히 구별했다. 삼권분립(三權分立)의 원칙이 그것이다. 정치논리에 사법이 영향을 받거나 한 몸이 되면 민주주의가 금과옥조로 삼는 법치주의(法治主義)와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는 파괴된다. 그리고 그것은 인치(人治)가 된다.

새 정부 들어 서울 중앙지검 수사본부가 ‘적폐청산’이란 미명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원칙(無罪推定原則)을 배격하는가 하면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정부시책에 동조하는 일부 학자들은 “판결은 법률적 지식을 가진 인간이 내리는 잠정적 결론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대상이 아니며 존중받는 것도 아니다”라는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

최근 정부는 ‘제주 강정마을 구상권 청구소송’을 포기했다. 청와대는 재판 시작 전부터 '기일 무기한 연기' '소송 취하' 등을 언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통령 공약사항이었기에 처음부터 피해금액을 받아낼 뜻이 없었던 셈이다. 법원은 대통령의 '원만한 해결' 의사에 따라 정식 재판이 아닌 강제조정권을 발동했고,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구상권 포기를 선언했다. 청와대의 요청에 법원이 ‘알아서 기었다’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강제조정권 발동은 민사소송에서 예외적인 일이다. 또한 조정은 일방의 포기가 아니라 쌍방의 양보로 이루어진다. 이런 전후 사실관계를 살펴보면 정부가 재판에 관여했음이 명백하다. 참으로 정치와 사법이 한 몸이 되어 놀아난 꼴이다. 청와대는 삼권분립(三權分立)과 법치주의(法治主義), 그리고 죄형법정주의(罪刑法定主義)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법에 의한 지배’가 무너진 사회는 혼란스럽다. 공권력은 사권력(私權力)에 밀리고 탈법이 판을 친다. ‘홍길동’을 칭하며 어설픈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범죄인들이 난무하게 된다. 정부의 이번 조처는 그런 얼치기 ‘홍길동’들에게 면죄부를 안겨다준 꼴이다. 그 뜻이 아무리 장해도 ‘홍길동’은 방화, 강도살인, 재물손괴죄를 저지른 범죄단체의 수괴일 뿐이다. 일부 좌파 논객 주장대로 ‘홍길동’을 확신범이라 선해(善解)하자. 그러나 현행법은 확신범을 봐주지 않는다.

기원전 5세기 경, 권력에 따라 유무죄가 바뀌는 재판의 폐단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 정부가 불안하다.

강정마을 시위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강정마을 시위현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sgp@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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