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날을 계기로 생각해보는 '핼러윈 데이'

핼러윈은 비성격적이자 반기독교적 축제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 이를 경계해왔다. 사진은 핼러윈 데이에 앞서 2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좀비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 /AFP=연합
핼러윈은 비성격적이자 반기독교적 축제로 대부분의 개신교 교파에서 이를 경계해왔다. 사진은 핼러윈 데이에 앞서 29일(현지시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좀비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 /AFP=연합

10월 31일은 종교개혁의 날이다. 1527년 루터(1484~1546)가 독일 비텐베르크대학 교회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써붙인 날, 인류사에 거대한 변화를 부른 종교개혁의 시발점을 기념한다. 종교개혁의 전개 과정이 자유민주주의·인권·법치를 향한 발걸음 그 자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10월 31일을 핼러윈 데이(Halloween day)’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속화와 상업주의는 이를 더욱 대중적인 행사로 만들었다.

핼러윈의 기원은 고대 켈트족의 섣달그믐날 풍습과 로마카톨릭의 성인 대축일 전야제가 결합됐고 미국을 경유해 세계적인 놀이문화로 발전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었다. 우리의 ‘나례(儺禮)’처럼 섣달그믐날 탈을 쓰고 행하던 액막이 행사가 ‘귀신 쫓아내기’ 풍습이라면, 핼러윈은 ‘귀신 맞이하기’에 해당한다. 그나마 조선시대 들어 성리학자들에겐 원칙적으로 배격됐다. 주술적 세계를 부정하는 게 유학의 기본 자세였다. 인신 제사와 관련 있는 핼러윈의 기원 역시 모든 문화권에 보편적으로 있었던 것으로 특별할 것 없다. 구약성서(창세기) 속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사건이 유대교도만의 것은 아니듯, 어린아이들을 희생물로 바쳐 완성됐다고 전해지는 에밀레종, 심청전에 나오는 처녀공양 역시 비슷한 흔적이다.

축제의 근저엔 다신교적 정신이 배어 있다. 그런 점에서 핼러윈은 非성경적이자 反기독교적 축제이며, 대부분 개신교 교파에서 핼러윈을 경계해 온 이유다. 반면, 핼러윈의 본 뜻이나 유래를 모른 채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이 날의 매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북한과 일부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들 외엔 상업주의와 맞물린 축제로 즐긴다. 모든 문화권의 인류가 샤면시대를 거쳐 왔기에 토속적 ‘민속’엔 주술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것이 불교나 기독교 등 고등종교가 등장하며 사라졌지만 일부 토착문화 형태로 흡수돼 살아남았다. 핼러윈도 그 중 하나다. 로마카톨릭이 조선에 들어올 때 ‘제사문화’와 크게 부딪혀 대규모 순교를 치른 끝에 유교 제례문화와 공존하는 쪽으로 나아간 것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핼러윈이 미국을 거쳐 전 세계에 퍼졌지만, 개신교 정신으로 건국한 미국에서 처음부터 권장된 것일 리는 없다. 1840년대 대기근을 피해 온 아일랜드계 이주민에 의해 전해져고, 20세기 초반 현재의 핼러윈 형태로 정착했다. 카톨릭 지역이던 아일랜드·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들의 민속행사에 불과했으나, 1930년대 이후 아이들이 분장하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과자를 얻는 풍습으로 자리잡았다. ‘아이들을 위한 날’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아일랜드 이민자의 급증, 非개신교 이민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로 핼러윈도 미국 내에서 빠르게 퍼졌다. 처음엔 주로 귀신·마녀·악마·괴물 등 괴기스런 복장이 많았으나 점차 다양해진다. 마법사·피에로·천사·동물들, 동화·만화·영화·게임 속 주인공들, 각종 직업의 유니폼, 다양한 민족 의상, 산타클로스, 역사적 인물들 등 무궁무진해졌다. 한마디로 ‘변장 대잔치’, ‘귀여운 일탈’로 여겨지는 경향도 있었다. 핼러윈은 어느덧 관련 소품을 만드는 업체, 각종 유흥업소나 쇼핑몰에겐 이른바 ‘대목’으로 인식된다. 성 발렌타인을 기념하는 ‘발렌타인 데이’, 한국에서 시작된 ‘빼빼로 데이’처럼 단순 상업적 축제가 된 것과 유사하다. 핼러윈은 물질적 다신교 문화였던 로마 등 유럽에 기독교문화를 보급하기 위한 ‘점진적인 변화’로 채용한 방법이기도 하다.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탄교 관련자들 발언들 보면 핼러윈의 연원을 이해하기 쉽다. "핼러윈은 사탄이 마음 놓고 활보하는,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톰 생귀네트), "기독교인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1년에 한 번 사탄숭배를 허락해서 기쁘다"(안톤 라비Anton LaVey 1930~1997)는 ), 하나같이 ‘사탄 숭배’의 한 방식이라고 증언한다. 어린이들이 자연스레 귀신·도깨비를 친구로 여기게 되며, 그것을 재미로 즐기는 동안 선악개념을 혼동하게 된다는 것을 가장 위험한 점으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날 ‘재미가 선악의 기준’이 돼 버린 세태와 잘 맞아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핼러윈을 음주·마약의 광란 파티로 즐기는 전통이 남미에서 북미로 전파됐다는 지적이 있다. 본래 망자들을 기리던 남미의 전통이 가톨릭문화에 융화되자 점차 무덤을 찾아 세상을 떠난 친구나 친지들을 기리며 술마시며 노는 날이 되었고, 이것이 북미로 전파됐다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일부 영어학원의 원어민 강사들을 통해 핼러윈 파티가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다. 영어유치원 등을 통해 어려서부터 친숙한 경우까지 생겼다. 하지만 아주 대중화된 축제도 아니고 ‘무분별한 서구 따라하기’라는 비판도 있다. 미국 교포들 커뮤니티에선 유난히 핼러윈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런 가운데 핼러윈은 창의성을 뽑내는 행사로 발전한 측면이 있다. 몇년 전부터 이태원·홍대·신촌 등 젊은이들의 번화가에 본격적 코스프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간단한 또는 본격적 분장을 한 사람들이 몰려들어 새벽까지 파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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