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이 만난 사람]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본사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본사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장기표의 눈은 맑고 선하다. 아직도 무지개를 찾아 헤매는 소년 같다. 순수한 사람이다. 고(故) 조영래는 "세상이 다 취해도 홀로 깨어 있으려 하는 그 지나친 순수함이 병이요, 그의 죄"라고 했다.

노동운동과 정치개혁에 매진했던 그는 최근 문명전환과 이에 따른 의식개혁이 관심사다. 주력하는 터전은 신문명정책연구원. 두달 전 대장동 부패수익 환수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상임대표를 맡아 연일 세미나와 집회를 열고 있다. 코로나19 진상규명시민연대 상임고문이기도 하다.

자유일보 회의실에서 19일 만난 그는 조영래와 함께 나의 우상이었다.

-코로나가 다시 창궐해 6.25 후 최고 난리다.

6.25가 아니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난리다. 성장(GROWTH)을 우선하는 성장주의에 치우친 생활방식, 문명의 귀결이다. 코로나보다 더 심한 조로나(ZORONA)까지 팬데믹은 계속 진화 발전해 기승을 부릴 거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물질 위주·성장 위주의 문명을 인류 생존이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삶의 질을 생각하고 이웃과 후손, 지구를 생각하는 신문명으로 하루빨리 바뀌지 않으면 인류가 멸절할지 모른다는 의식개혁이 절실하다.

-맞는 말이지만 ‘발등의 불’부터 꺼야지요.

생활 방역으로 전환하려면 사전에 대비를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병상 부족 사태에 코로나 여부를 확인하는 인터넷은 먹통이다. 방역패스로 학부모들은 걱정한다. K-방역을 자화자찬 할 때가 아니다. 대만은 주민 자율 협조와 스마트 방역으로 성공하지 않았나. 강제나 타율보다 우리도 자율방역으로 가야 한다."

-정부가 왜 이리 헤매는가?

방역 실패에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책임지고 물러날 순 없을 테니,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질병관리청장이라도 물러나야 한다. 무능을 넘어 무책임한 게 현 정부다. 정치는 잘못이 없더라도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큰 사건이 발생해도 시간만 지나면 된다는 식으로 뭉개고 있다."

장기표는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 대해 "경찰청장이 왜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맞는 말이다. 경찰관의 사건 현장 이탈이나 사전 신변보호 요청 외면 탓에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과거 정부 같았으면 경찰청장이나 행자부 장관이 날아갔을 거다.

-‘장기표는 무슨 죄가 그리 많은가’라는 칼럼(필자: 조영래) 얘기를 들었다.

어릴 때부터 세상을 바꿔보려 했다. 대학 1학기를 마쳤는데, 여기는 아니다 싶은 생각에 가나안농군학교도 생각해 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그때 조영래가 ‘장형, 함께 세상을 바꿔봅시다’ 하더라. 그래서 함께 공부하고 민주화 투쟁을 했다.

전태일 분신과 민청학련, 청계피복노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겪으며 동지인 조영래와 함께 모진 고통과 수난을 겪은 장기표다. 그의 아내 조무하는 26세 때 ‘혁명’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를 만나 45년을 살았다. 왕십리 다방에서 커피 한잔 앞에 놓고 혼약한 지 석달 만에 구속된 남편이 11년간 도피, 9년 동안 옥살이를 했다.

"누구나 치열하게 산다"는 이 부부는 10억원 대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사양했다. 장기표의 국민연금과 월남참전수당을 포함해 65만원, 부인의 30만원 연금을 합쳐 한달 95만원으로 25평 아파트에 산다. "돈 들 일이 별로 없다"며 싱긋 웃는다. 낙천적이다.

‘동지’였던 이부영·김근태·이재오·김문수가 제도권에 들어가 한때 권력을 맛보기도 한 반면, 장기표는 평생 ‘안 되는 길’만 갔다. 무모한 창당과 과감한 출마를 거듭한 ‘낙선 거사’다.

-선거에서 몇 번 떨어졌나?

두 자릿수는 아니고 일곱 여덟 번쯤... 아내가 논술 교사·문화센터 강사로 뛰며 생계를 도맡았다. 선거 때만 되면 아내 가슴이 철렁 할 거다.

이번 대선 경선 출마 때도 아내가 내놓고 반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철 없는 이상주의자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심하게 했다. 그런 남편을 ‘사람은 착하지만 바보 같다’며 아내 조무하가 눈을 흘긴다.

장기표는 "일자리와 주거 불안으로 젊은 사람들이 실의와 좌절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무너진 교육, 고립된 외교. 안보는 벼랑 끝에 있다. 무엇보다 사회가 갈갈이 찢겨 분노와 원망을 뿜어내며 죽고 살기로 싸운다.

그는 민주주의 최후 보루인 법조마저 타락해 부패로 일그러진 민낯을 드러냈다"고 장탄식했다. 한가지 사실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며 날선 대립을 일삼는 언론걱정도 감추지 않는다.

대한민국 현주소를 "총체적 불안과 난국"이라고 진단했다. 그의 말을 빌면, 이 모두가 시대착오적인 종북 운동권 집단 등에 올라타 마구 내달린 문재인 정권 4년 7개월의 참담한 성적표다.

대장동 의혹 핵심인 이재명에 대한 비판은 강도가 더 높았다. "무능·무책임의 문재인보다 더 지독한 패륜·탐욕의 화신이다. 대통령 할 야심에 온갖 궤변 요설을 뱉어낸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뻔뻔함이 하늘을 찌른다."

-대장동 게이트를 정치인 중에선 최초로 폭로했다.

성남 사는 후배가 제보를 했다. 그 얘기를 확인해보니 사실로 보였다. 충격적이다. 대장동 게이트가 아니라 이재명 게이트다. ‘그분’은 누굴까? 이재명 아니라면 누구인지 일찌감치 밝혀졌을 거다. 이재명이 ‘그분’이고 주범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윗선과 몸통을 못본 체 한다. 이런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

"분노하고만 있기엔 너무 위급하다"며 장기표는 경선 주자 최재형과 손을 잡았다. 그러나 불과 일주일 뒤 최재형은 그와 상의도 없이 홍준표에게 달려가버렸다. 현실정치 속의 장기표는 그야말로 늘 뭔가 꼬이고 운도 없다. 이상에 눈 먼 ‘당달 봉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경기동부가 장악한 민주노총의 폐해를 묻자, "연봉 1억 가깝게 받은 귀족 노조원들이 노사정위나 최저임금위에 대표로 들어간다. 정부가 민주노총·한국노총만 상대하는 현실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진정한 노동자대표들이 들어가야 한다는 거다.

"정치가 가장 먼저 혁명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가 주도한 국민법정에서 이재명은 징역 30년, 김오수 검찰총장은 징역 1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장기표는 "국민법정의 형량대로 이재명이 기필코 후보를 사퇴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운동본부는 10월 28일 공식 출범해 전국 17개 광역시·도 단위별 본부까지 결성됐다.

"대통령은 정보문명시대에 맞는 이념·정책·비전·전략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거기에 맞는 후보가 자신뿐이라는 ‘무모한 생각’ 역시 감추지 않는다. 세력을 불리지 못해 실현되기 어려울 뿐, 경륜·역량 면에서 장기표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젊은 날 ‘우리 사랑으로 만날 때’라는 가슴 뭉클한 책도 냈다. 아내 조무하에게 바치는 감사와 미안함을 담았을 것이다. 맑은 영혼, 깊은 영성의 소유자인 그다운 책이다. 젊은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전태일 정신’과 ‘사랑의 정치’라는 두가지 축을 강조하는 일이 잦다. "정치는 사랑의 사회적 표현이자 실천"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1971년 노동열사 전태일이 산화했을 때 그와 조영래는 정성껏 장례를 치렀다. 이 둘이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전태일은 굉장히 어렵게 살았음에도 모두가 인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높은 이상과 꿈을 한시도 포기한 적이 없다"고 술회한다.

공정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신문명의 이상국가를 장기표는 꿈꾼다. 그 꿈이 언제쯤 이뤄질 수 있을까? 궁금해 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장기표: △1945년 생 △마산공고·서울대 법대 졸업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김대중납치규탄 10·2시위사건,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사건, 김대중내란음모사건 5·3인천대회, 중부지역당사건 등과 관련해 구속 또는 수배 △국민의힘 김해을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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