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세계 35개 나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았다. /연합
30일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세계 35개 나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았다. /연합

국내 기업 부채의 증가 속도가 세계 35개 주요국 가운데 두 번째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자금시장 경색으로 기업의 은행 대출이 더 늘어나면 기업 부채발(發) 금융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가계 부채의 경우 감소세로 돌아섰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여전히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정부 부채 증가 속도 역시 빨라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31일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2.2%로 세계 35개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지난해 2분기 처음으로 가계 빚 세계 1위 타이틀을 얻은 뒤 1년째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가계 부채가 경제 규모, 즉 GDP를 웃도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정부 부채의 GDP 대비 비율은 47.8%로 24위를 기록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부채 증가 속도가 상위권이라는 게 문제다. 정부 부채 비율 증가폭은 1년 전에 비해 1.8%포인트, 직전 분기 대비 3.2%포인트로 각각 10위와 5위에 랭크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일반 정부 부채(D2) 비율은 올해 말 기준 54.1%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말의 51.3% 대비 2.8%포인트 높은 것이다. 일반 정부 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진 빚(D1)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를 합한 광의의 정부 부채다.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하는 35개국 가운데 비기축통화국 11곳은 이 비율이 지난해 평균 56.5%에서 올해 53.5%로 3%포인트 하락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일반 정부 부채 비율은 올해 처음으로 기축통화를 사용하지 않는 11개 선진국 평균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부 부채 비율을 기축통화국과 비교하며 확장 재정을 요구해 왔다. 특히 이재명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평범한 나라들의 국가 부채 비율이 평균적으로 110%가 넘는데 한국은 50%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비기축통화국은 기축통화국보다 재정건전성 악화가 거시경제 운용에 큰 부담을 준다.

기업 부채는 더욱 문제다. GDP 대비 우리나라의 비금융 기업 부채 비율은 2분기 현재 117.9%로 홍콩 279.8%, 싱가포르 161.9%, 중국 157.1%에 이어 네 번째로 높다. 직전 분기에는 116.8%로 7위였는데, 불과 3개월 만에 세 계단이나 뛴 셈이다. 우리나라 기업 부채 비율은 지난해 2분기 111.7%에서 올해 2분기 117.9%로 1년 새 6.2%포인트나 올랐다. 이는 7.3%포인트의 베트남에 이어 세계 2위의 증가폭이다.

이는 그만큼 우리나라 기업 부채의 증가 속도가 빠르기 때문인데,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은행으로 몰려가면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에서만 한 달 새 대출이 9조원 가까이 늘었다. 정부는 당장 막힌 자금흐름을 뚫기 위해 각종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의 기업 대출을 독려하고 있지만 급증하는 기업 대출 자체가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의 기업 대출은 당분간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자금시장 경색으로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결국 은행을 통한 간접 자금조달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 10년간 기업 대출은 연평균 4.1% 증가했지만 코로나19 이후 현재까지 2년 반 동안 연평균 증가율이 12.9%에 달한다. 기업 대출금액은 2019년 말 976조원에서 현재 1321조원으로 35% 급증했다. 반면 부채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2019년 37.7%에서 올해 39.7%로 높아졌다. DSR이 높을수록 상환능력이 취약함을 의미한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가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져온 가운데 또 다른 채무불이행 사태가 촉발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국제금융협회는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는 시대가 끝나가면서 많은 기업이 빚을 갚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낮은 금리 덕에 많은 기업이 싼값의 대출로 연명해왔지만 앞으로는 대출 비용이 오르면서 부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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