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핼러윈 악몽' 그후 다시 찾은 이태원

이태원서 자란 30대 상인 "또래들의 죽음 믿기지 않아"
"고작 500m 골목, 추가병력 배치해 진작 통제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울컥...먹고 살 문제도 걱정" 착잡한 심경

154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사흘째인 31일 오후 사고 현장 바로 옆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있는 추모장소에서 한 젊은 플루티스트가 추모곡을 연주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154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 사흘째인 31일 오후 사고 현장 바로 옆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있는 추모장소에서 한 젊은 플루티스트가 추모곡을 연주하고 있다. /김석구 기자

"(이 사고현장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

31일 오후 국화꽃을 든 시민들이 ‘이태원 참사’ 사고현장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경찰 병력이 일대를 가득 채운 가운데 녹사평역부터 차량 통제가 이루어져 사고 현장 주변이 폴리스라인으로 통제됐다.

시민들은 이태원역 1번출구 앞에 꽃다발과 술병, 담배 등을 놓고가거나 차도 건너편에서 멀찍이 현장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에 탄식했다. 국화꽃을 든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는 시민들도 보였다. 사고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은 그날 현장에서 발생한 쓰레기들만 나뒹굴어 황량했다.

사고 현장 반대편인 4번 출구 앞에서 어머니와 환전소를 운영하는 김 모씨(만 33세)는 "이태원에서 놀 수 있는 골목은 뻔하다"며 사고가 난 해밀톤호텔 옆 골목을 지목했다. 김 씨는 "핼러윈이건 이태원 축제건 주말에 일반 사람들이 술 먹고 놀려고 오는 곳은 다 이 뒤쪽 골목이다.

밥 먹는 곳은 (사고 현장) 건너편인 이쪽이고 2차로 술 먹으러 가는 곳은 다 그쪽(사고 현장)이다"라며 "고작 여기가 전부인데 골목길까지 다 해봤자 500m가 안 되는 이 곳에 병력이 좀 투입되었더라면 충분히 통제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이태원에서 제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며 "그 전날과 전전날에도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할 건데 3년만에 재개되는거고 10만 명 넘는 인파가 올 것이라고 뉴스에 보도가 나왔다. 범죄 예방이나 이런 것들을 위해 추가 병력을 배치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3주 전에 이태원 지구촌 축제가 있을 때는 사람이 굉장히 많이 왔었는데 그때는 주최가 용산구청이었으니까 여기 소방서에서 아파트 앞 삼거리까지 차도가 48시간 동안 전부 통제돼 사람들이 차도로도 걸어다녔다"고 말했다.

김 씨의 이모(50세)는 "뉴스를 보고나서 집에서 잠옷 바람에 뛰쳐나왔다"며 "그때 여기가 아비규환이었는데 젊은 친구들이 사고가 난지 인식을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0명이 죽었다고 보도되었을 때였는데 새벽 1시에도 (사람들이) 여기 베트남 거리에서 술먹고 떠들길래 내가 웃지 말라고 소리질렀다. (가게 주인에게) 지금 여기서 사람이 죽었는데 장사 접어야 되는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도 지금이 대목이라고 좁은 골목에서 야외 테이블을 갖다놓고 두 시간마다 회전시켰다"고 탄식했다. 또 "애들이 공룡 유니폼 부피있는거 입고 걷지도 못하니까 더 넘어지기 쉬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밀톤호텔과 이태원 지하철역 일대의 업소 유리창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 5일 애도기간까지 휴점합니다’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의 안내문이 붙었다. 이태원 일대 업소 100여곳이 휴업에 동참한 가운데 사고현장 골목 인근에서 버거집을 운행하고 있는 이 모씨(31세)는 이날 이례적으로 가게를 지켰다.

이 씨는 "정말 이렇게 많을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여섯 시부터 사람이 많았다"면서 "9시부터는 사람들이 밀려 차도로도 일부 지나다니는 모습이었다"고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면서 "이쪽 상권 사람들이 굉장히 고민이 많다"며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저희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라고 말을 흐리며 착잡한 심경을 전했다. 당시 많은 인파와 시끄러운 음악 소리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알게 된 사실도 전했다.

이 씨는 "사건 당시만 해도 무슨 상황이 일어났는지 나를 포함해 아무도 몰랐다"며 "다들 시끄럽게 노는 분위기 속에 가족에게 연락이 오고 친구들한테 연락이 왔을 때 (밖에) 나가봤는데 그때 상황을 파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시신들이 실려 나가는 모습과 CPR하는 모습을 다 지켜봤다"며 "같이 일하는 동생들을 일찍 들여보내고 2시쯤 여기를 빠져나갔다"며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전에 구급차가 왔을 때도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이제 통제를 좀 해주나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한편, 참사 이틀이 지난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 현장에는 서울경찰청 수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투입돼 현장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한꺼번에 인파가 몰리게 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호텔 뒤편 골목길에 설치된 CCTV 영상과 SNS에 올라온 사고 당시 현장 동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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