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정의 길 따라...] 전남 순천

제1호 국가정원 순천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갯벌
걸어도 좋고 자전거·배를 타도 좋은 광활한 갈대밭
흑두루미·저어새...겨울 철새들에게도 낙원이어라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순천만.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순천만.

광활한 갈대숲이 있는 순천만. 황금빛으로 물드는 저물 무렵의 갈대숲을 걷노라면 가을이 왔음을 실감한다. 갈대숲뿐만 아니라 순천에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 마을도 있고 선암사와 송광사라는 두 천년고찰의 풍경소리도 그윽하게 울려 퍼진다. 맛있는 음식은 더욱 풍성한 여행길을 만들어준다.

갈대밭 사이로 거니는 느린 가을 산책

전남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자리한 순천만. 행정적으로는 순천시 인안동, 대대동, 해룡면 선학리와 상내리, 별량면 우산리, 학산리, 무풍리, 마산리, 구룡리로 둘러싸인 북쪽 해수면만을 일컫는다. 갈대밭 5.4㎢(160만 평)와 갯벌 22.6㎢(690만 평)이 광활하게 펼쳐진 순천만은 2003년 습지 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2006년에는 람사르협약(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환경협약)에 등록됐다. 세계 5대 자연습지로 340여 종의 식물과 230여 종의 철새가 이곳에서 공존한다.

순천만을 처음 찾은 것은 1998년이었다.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철새 취재차 갔다가 거대한 갈대밭에 그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새벽안개가 점령한 우윳빛 갈대밭은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던 그대로였다.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 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 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恨)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女鬼)가 뿜어 내놓은 입김과 같았다."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낙안읍성마을.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낙안읍성마을.

순천만은 이제 순천만 국가정원으로 불린다. 대한민국 제1호 국가 정원인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 습지’는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인 ‘한국 관광 100선’에 5회 연속 선정됐고, ‘웰니스 관광지’로도 3회(2017년, 2019년, 2021년)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최근 ‘순천만 갯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새롭게 등재됐다.

순천만을 여행하는 첫걸음은 대대포구에서 시작한다. 이곳에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갯벌과 철새에 관한 다양한 전시물과 영상물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체험시설이 많은데다 갯벌과 갈대, 습지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출 수 있어 순천만을 탐방하기 전 돌아보면 좋다.

자연생태관을 나서면 본격적인 갈대숲 탐방이 시작된다. 순천만 갈대밭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걷기다. 갈대숲 사이를 걸어갈 수 있는 산책용 데크가 만들어져 있어 힘들이지 않고 광활한 갈대밭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생태 체험선을 타고 연안습지를 만날 수도 있다. 생태체험선을 타고 가다 보면 흑두루미가 보인다. 매년 평균 약 3,000마리의 흑두루미가 이듬해 2월까지 이곳에서 월동을 한다. 흑두루미뿐만 아니다. 재두루미, 저어새 등 겨울 철새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대대포구 주변 둑길을 돌아보는 방법도 있다.

이왕 순천만에 갔다면 용산전망대에 올라가 볼 것을 권한다. 용산은 용이 하늘로 오르다 순천만 풍광에 반해 머물럿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야트막한 산이다. 갈대밭 탐방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약 1km만 더 걸으면 전망대 정상에 닿을 수 있는데, 이곳에 서면 둥근 갈대군락들 사이로 S자를 그리며 미끄러져 나가는 물길을 볼 수 있다. 해 질 무렵이면 수많은 사진 애호가들이 순천만의 낙조를 담기 위해 찾는 촬영 포인트이기도 하다.

순천만에서 가을을 즐기는 탐방객들.
순천만에서 가을을 즐기는 탐방객들.

마음 고즈넉해지는 순천의 가을

순천만뿐 아니라 순천에는 보고 다닐 곳이 넘쳐난다. 선암사와 송광사, 낙안읍성의 고즈넉한 풍경은 바쁜 일상을 잠시 잊고 여유를 찾게 해준다.

조계산에 자리한 천년고찰 선암사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절이다. 백제 성왕 때인 529년 아도화상이 세운 고찰로 태고종의 본산이다. 매표소에서 절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이팝나무, 서어나무, 굴참나무, 팽나무, 조팝나무, 산딸나무, 느티나무가 우거진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기분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승선교가 있다. ‘선녀들이 승천한다’는 뜻을 가졌는데, 아치형의 다리는 이름만큼이나 아름답다.

선암사 반대편의 조계산 자락에 송광사가 자리한다. 선암사와는 굴목이재라 불리는 산길을 통해 이어지는데, 산길은 약 8km 정도로 부지런한 걸음으로 3시간이면 걸어볼 수 있다. 산길은 편백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이 터널을 이루고 있어 트레킹을 즐기기에 좋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낙안읍성에도 가보자. 초가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통 마을이다. 웅장한 성문을 지나 마을에 들어서면 마치 조선시대로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흙벽에 잿빛 초가지붕을 인 초가집들. 돌담 사이로 작고 예쁜 고샅길이 나 있고 고샅길마다 몇백 년은 됨직한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팽나무가 서 있다. 이리저리 얽혀 있는 비좁은 고샅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순천 드라마 세트장.
순천 드라마 세트장.

낙안읍성민속마을은 전시와 관람을 위해 만들어놓은 민속촌이 아니라 사람이 살고 있는 ‘살아 있는’ 마을이다. 주민이 초가에서 생활하며 민박집과 주막, 기념품 가게 등을 운영한다.

마을의 정경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성벽 길을 걸어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성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분~1시간 정도다. 성벽 위는 걷기 좋게 다듬어져 있다. 성곽에서 바라본 낙안읍성 마을은 평온하다. 성벽 너머로는 낙양의 너른 들판이 아득하다.

순천 시내에 자리한 순천드라마 세트장은 2006년에 개장한 오픈세트장이다. 드라마 자이언트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등 시대극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시대상을 만날 수 있다. 순천의 1960~70년대를 그대로 재현한 소도읍 세트장부터 60년대 태백 탄광 마을, 70년대 서울 달동네, 80년대 서울 변두리를 완벽하게 재현해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 즐겁다. 드라마 마니아라면 극 중 주인공의 흔적을 찾으며 둘러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처음부터 관광지 목적으로 제작된 촬영장이기 때문에 알차게 구성되었다.

[여행 정보]

순천의 별미 장어구이.
순천의 별미 장어구이.

 순천은 맛도 풍성하다. 별미 중 별미는 짱뚱어다. 짱뚱어는 미꾸라지와 비슷하게 생겼다. 청정 갯벌에서만 산다. 짱뚱어를 된장을 푼 물에 시래기, 호박, 무를 넣고 끓여 탕으로 즐겨 먹는다. 짱뚱어는 갈지 않고 통째로 넣는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아 처음 먹는 사람도 거부감이 없다. 속살은 부드럽다 못해 촉촉하다. 들깨 향이 향긋하게 우러나는 국물 맛은 개운하다. 장어도 유명하다. 대대포구 앞에 장어구이 집이 많다. 순천만 갯벌장어는 흙냄새와 비린내가 전혀 없고 육질이 쫄깃하다. 지방이 적어 기름기 많은 양식 장어에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다. 짱뚱어탕은 순천만에 위치한 순천만가든(061-741-4489)이 유명하다. 장어는 대대포구에 자리한 강변장어구이집(061-742-4233)과 대대선창집(061-741-3157)이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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