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궁전 '황금 오르도'··· '칸'은 따로 首都가 없었다
이동궁전 '황금 오르도'··· '칸'은 따로 首都가 없었다
  • 최영재 기자
  • 승인 2017.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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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재현해 놓은 칸의 이동 궁전. 슬라브어로 '황금의 오르도'라 불렀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몽골에서 시작된 세계사 4

◇ 아시아와 東유럽의 통일

몽골의 유럽원정군 총사령관 바투(Batu, 킵차크 한국-汗國의 창건자, 1207-1255, 징기스칸의 손자)는 1242년 원정에서 돌아오자, 볼가강 근처에 독자적 정권을 세웠다. 그는 사인칸이라는 칭호를 내세우고, 북코카사스와 우크라이나 초원의 유목민과, 그 북쪽 삼림지대 루-시의 마을들을 지배했다.

그 궁정(宮廷, 궁궐)을 터키어로 ‘백색의 오르도(Ordo)’라고 불렀다. 오르도란 칸(황제)이 이동궁정으로 사용하는 거대한 텐트를 말한다. 그 기둥에 금박(金箔)이 붙어있기 때문에 루-시사람 들은 슬라브어로 ‘황금의 오르도’라 불렀다.

카라코룸서 서역으로 가는 길. 저 길 먼 끝에는 볼가강 강가에 세운 바투의 궁전이 있고, 더 나아가면 지금의 터키 땅에 이른다. 사진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카라코룸서 서역으로 가는 길. 저 길 먼 끝에는 볼가강 강가에 세운 바투의 궁전이 있고, 더 나아가면 지금의 터키 땅에 이른다. 사진 카라코룸(몽골)=최영재 기자

◇ 장엄한 도회지 사라이(Sarai)

바투는 초원의 길 동쪽 출발점으로서 볼가강 하류 강가에 사라이(Sarai)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바투의 뒤를 이은 동생 베르케(Berke)칸은 보다 상류인 지금의 볼고그라드(Volgograd, 카자흐스탄공화국에 접하는 러시아 연방 서부의 州) 근처에 신사라이를 건설했다. 14세기의 오즈베그칸 시대에 이 신사라이를 방문했던 모로코 출신 대여행가 이븐 바투타는 그 번영모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대 여행가 이븐 바투타
대 여행가 이븐 바투타

사라이는 장엄한 도회로서, 평원의 그냥 가운데 있고, 가로는 넓고 훌륭한 시장이 있다. 배당받은 숙사는 시의 변두리에 있었다. 이른 아침에 말을 타고 그곳을 나와서, 모 유력한 시민과 시내 구경을 나갔는데, 반대편의 변두리까지 도착했을 때는 정오가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일몰 무렵이었다.

그 간에 지나오는 곳에, 인가가 늘어서 있고, 빈 땅이나 정원은 보이지 않았다. (중략) 사라이에는 가지각색의 나라 사람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몽골 사람들은 지배계층으로서, 그 일부는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있다. 아스 사람도 이슬람교도다.

킵차크 사람, 첼케스 사람, 루-시 사람, 그리스 사람 등은 모두 그리스도교를 신봉하고 있다. 각 종족이 구역을 달리해 살고 있으며, 각각의 시장을 갖고 있다. 이란, 이라크, 이집트, 시리아 상인들은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성벽을 두른 시구에 살고 있다. 칸의 궁전을 아루톤타슈(황금의 돌)라고 부른다’

볼가강변의 사라이로부터 몽골고원의 카라코룸까지 초원의 길을 실제로 여행한 기록이다.

천진 난만한 몽골의 아이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천진 난만한 몽골의 아이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울란바토르시 외곽을 약간만 벗어나면 긑없이 펼쳐진 평원에 하양 게르(몽골 전통 이동 가옥)가 나타난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울란바토르시 외곽을 약간만 벗어나면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하얀 게르(몽골 전통 이동 가옥)가 나타난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 카라코룸의 번창

가톨릭의 죠반니 디 피아노 카로피니 수도사가, 1246년 4월8일, 바투(Batu)의 궁전을 출발, 하루에 다섯 차례 혹은 여섯 차례나 말을 갈아타면서 카스피해의 북쪽에서부터 남하하여 아랄해를 건너고, 다시 시르 다리야강(SyrDar'ya), 츄-강(Chu), 이리강(Ili)를 건너서 아라콜호 동쪽의 에밀강변의 오고티가령(현재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에민額敏)에 이르렀다.

거기서부터 알타이산맥을 넘어서 몽골고원으로 들어가, 7월22일에 카라코룸 근교의 시라 오르도라는 이동궁전에 도착했다. 죠반니 디 피아노 카로피니 수도사는 이 여행에서 오고디칸의 아들인 구유크칸의 즉위식에 도착하려고 아주 강행군을 했는데, 사라이로부터 105일이나 걸려 카라코룸에 도착했다. 카라코룸도 사라이와 마찬가지로 번창했다.

같은 가톨릭의 기욤 뤼브르크 수도사는 구유크칸 시대에 카라코룸을 방문하고 이러한 보고를 했다.

몽골의 송골매. 어린 징기스칸이 사냥을 나서서 목이 마르던 차에 샘물이 나타나자 물을 마시려할 때마다 하얀 송골매가 손등을 치고 달아나자 활로 쏘아 죽였는데, 나중에 그 샘물에 독사가 빠져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이 퍼진 물을 못 먹게 하려는 가상한 매였음을 깨닿게되었다. 몽공을 지금도 하얀 송골매를 국조 처럼 모신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몽골의 송골매. 어린 징기스칸이 사냥을 나서서 목이 마르던 차에
샘물이 나타나 물을 마시려할때마다 하얀 송골매가 손등을 치고
달아나자 활로 쏘아 죽였는데, 나중에 그 샘물에 독사가 빠져서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 퍼진 물을 못먹게 하려는 가상한 매였음을
깨닿게 되었다. 몽골은 지금도 하얀 송골매를 국조 처럼 모신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프랑스의 뤼브루크에 있는 기욤박물관. 출처=Wikimedia Commons
프랑스의 뤼브루크에
있는 기욤박물관.
출처=Wikimedia Commons

'카라코룸에는 두 개의 시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슬람교도의 지구로서, 거기에는 많은 시장이 열려 있어서 많은 상인들이 모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그 근처에 있는 궁정이나 다수의 사절들을 위해서입니다. 다른 한 구는 모두 직인(職人)들인 키타이사람(한인-漢人)들의 시구입니다. 이 두 시구 외에, 궁정 서기들의 대저택이 있습니다.

또한 가지각색의 다른 종족에 속하는 비그리스도교의 사원들이 12곳, 이슬람교 예배당이 두 곳, 도시의 제일 끝에는 그리스도교신자들을 위한 교회가 한 곳 있습니다. 동문에는 (黍=기장) 등 기타의 곡물을 팔고 있는데, 기장 말고는 소량밖에 없습니다. 서문에는 양과 산양을, 북문에서는 말(馬)을 팔고 있습니다’

다만 서쪽의 사라이도 동쪽의 카라코룸도, 칸의 이동궁전을 위한 보급기지였다. 칸은 그 곳에 살지 않았다. 정치의 중심은 한 해 동안 계속 이동하는 궁전이었다. 때문에 카라코룸은 몽골제국의 수도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거대한 징기스칸 동상이 있는 울란바토르 시청사 앞에서 한 가족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거대한 징기스칸 동상이 있는 울란바토르 시청사 앞에서 시민들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울란바토르(몽골)=최영재 기자

 

sopulg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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