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신
임명신

대통령 직속기구인 한 위원회가 대만의 장관급 인사를 국제행사 발표자로 초청해 놓고 당일 새벽 취소 통보하는 일이 벌어졌다. "무례하고 부적절하다"는 대만 외교부의 공식 유감 표명으로 세상이 알게 됐다. 취소 사유는 ‘양안(중국-대만)관계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고려’였다. 대만 측은 초청을 취소당한 본인에게 보내진 이메일을 인용해 이 해프닝을 공개했다. 문재인 정부가 늘 중국의 심기를 살피는 줄은 알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우리 정부는 10월 1일 중국 최대 국경일(건국기념일)을 챙기면서 쌍십절엔 무심하다. 10월 10일, 신해혁명과 중화민국 탄생을 기념하는 쌍십절이다. 110년전 중국은 수천년 전제왕정을 끝내고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으로 거듭났다. 광활한 영토, 농민이 절대 다수인 거대 인구를 이끌고 구습과 싸우며 나아가는 근대화의 길은 힘겨웠다.

러시아혁명으로 수립된 소련이 인류의 이상처럼 보이던 시절이라 지식인들의 좌경화가 대세였다. 더구나 일본의 침략은 고전하는 신생 공화국에 결정타를 날렸다. 항일을 위한 국·공 합작으로 공산당이 기사회생 했고, 농민 속에 파고들어 승기를 잡은 공산당은 국민당 정부를 대만 섬으로 몰아낸다. 1971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위치에서 밀려난 이래 중화민국이 ‘대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으로 불리게 됐다.

"공산당 영도 하의 민족·계급 해방 노정…’ 근현대사에 대한 중국의 공식 역사관이다. 서구 좌파도 68세대의 퇴조와 더불어 옛말이 됐고, 구(舊)제3세계 ‘마오이스트’는 국가발전의 장애물 취급을 당한다. 일본도 마찬가지, 학생운동 ‘전공투(全學共鬪會議)’세대가 극좌파의 만행으로 끝장난 후 사회 전반의 쏠림은 사라졌다. 사회 중진 식자층이 중국공산당에게 독점된 역사해석으로 중국을 대하는 선진국은 우리나라뿐이다.

‘확실한 자치’를 전제로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국민당이 대만의 여당이던 때가 있었지만, 중국의 패권욕망이 분출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완전한 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 출신 차이잉원 총통이 자유민주공화국의 정체성과 국방의지를 역설해왔다. 대만을 대하는 한국의 태도가 국가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동이 될 수밖에 없다.

대만은 IT·국방·방역 등을 통해 내실 있는 ‘강소국’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냉전시대 대한민국 같은 역할을 신냉전시대 대만이 자임하고 나섰다. 미·중대결 신냉전 구도 속에서 살 길을 파악한 것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법치국가’ ‘자유세계의 최전선’이라는 정체성, 글로벌 가치사슬 체계 속 전략물자 공급지로서의 역할을 적극 어필하는 게 대만 외교의 핵심이다. 중국의 위협은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됐다.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누가 진짜 신중국인가’, 이 시대의 중대한 화두다. ‘망명 중국지식인, 대륙에서 온 학자 참교육’이란 제목의 유튜브 영상(한국어자막)이 있다. 2005년 호주, 한 중국인 망명인사의 ‘누가 신중국인가’ 강연 질의응답 대목이다. 강연자는 천안문 사태 후 중국을 떠나 대만 국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중국공산당의 현대사 해석에 맞서 왔다. 자신을 본토에서 온 방문학자라고 밝힌 한 젊은 질문자는 전형적 관변 역사관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어버이 공산당’, 중국의 국민가요 "공산당 없이는 신중국도 없네" 가사 수준의 발언이었다.

그 망명인사는 건국 이래 공산당의 실정·패악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형태로 질문자에게 답하고 있다. 마지막 한마디가 특히 압권이다. "나는 중국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건 중공이죠." 전 세계 중국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냉전 시대 미래를 함께할 협력자·이웃이 중국인지 중공인지 우리도 자문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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