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도 향후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의 여지를 열어놨다. /연합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사상 초유의 4연속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을 단행하면서도 향후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의 여지를 열어놨다. /연합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스텝을 4연속으로 밟으면서 달러는 더욱 강세를 띨 전망이다. 강달러를 넘어 슈퍼달러 또는 킹달러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킹달러는 글로벌 경제를 짓누르는 대형 악재로 부상하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킹달러로 가장 먼저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곳은 신흥국이다. 신흥국은 코로나19 대유행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경기 하강을 겪으며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달러 대출을 늘려왔는데, 설상가상으로 킹달러가 금융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93개국에 총 2580억 달러(약 369조원)의 대출을 약속한 상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추가로 16개국에 90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국제통화기금이 실제 집행한 대출 총액도 135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코로나19 대유행 직전인 2019년보다는 45%, 2017년보다는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세계은행(WB)의 대출 총액도 지난 9월 말 현재 역대 최대인 140억 달러로 2019년보다 53% 늘어났다.

신흥국은 달러 등 외화로 표시된 국채 금리가 폭등해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특히 미 연준의 공격적인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한 자본 유출은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지 못한 나라들을 디폴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실제 기타 고피나트 국제통화기금 수석 부총재와 피에르 올리비에르 고린차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14일 국제통화기금 블로그에 올린 ‘국가들은 어떻게 강달러에 대응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달러 강세가 신흥국의 금융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10%의 달러 절상은 인플레이션율을 1% 높인다"며 "물가 상승 압력은 달러 표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일수록 더욱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신흥국 시장에서의 대규모 자본 유출을 포함해 금융시장에 훨씬 더 큰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킹달러가 세계 경제에 미칠 부정적 파급효과가 부메랑이 돼 미국에 더 큰 손해를 끼치는 역파급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킹달러로 인해 미국 기업의 3분기 순이익이 100억 달러 이상 날아갈 것이란 관측이 대표적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의 미국 주식 담당자인 조나단 골럽은 "달러가치 상승으로 3분기 미국 기업의 순이익이 100억 달러가량 줄 것"이라며 "어린이 장난감부터 담배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업체가 타격을 입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달러인덱스가 8~10% 오를 때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 편입 기업의 주당 순이익은 1% 감소한다"고 추산했다.

통상 달러값이 비싸지면 미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떨어진다. 해외 소비자 입장에서 자국 통화로 표시된 미국 제품의 가격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 기업이 수출 대상국 통화로 매긴 가격을 그대로 유지하면 달러로 바꾼 수익이 줄어든다. 달러 강세의 역효과인데, 킹달러는 아예 미국 기업을 골병들게 할 수 있다.

킹달러에 따른 폐해는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해외 사모펀드(PEF)가 킹달러를 등에 업고 올해 M&A 시장에 나온 매물을 사실상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5000억원 이상의 M&A 가운데 E&F프라이빗에쿼티가 인수한 KG ETS 폐기물사업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해외 사모펀드가 새 주인이 됐다.

국내 사모펀드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수자금을 대주는 기관출자자(LP) 대부분이 원화를 쓰는 국민연금이나 군인공제회 같은 국내 기관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금리 영향으로 인수금융이 연 8% 이상으로 치솟으면서 자금조달에도 애로를 겪고 있다.인수금융은 M&A에 필요한 자금을 대출하는 업무를 말한다.

국내 사모펀드 중에서는 해외 기관투자자로부터 달러로 인수자금을 조달하는 MBK파트너스와 한앤컴퍼니 정도가 킹달러의 덕을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내 알짜기업이 잇따라 해외에 팔리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사모펀드는 킹달러를 앞세운 해외 사모펀드와 경쟁이 되지 않아 이들의 국내 기업사냥이 가속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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