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금감원, 금융회사, 정책금융기관과 함께 개최한 자금시장 관련 현황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권대영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금감원, 금융회사, 정책금융기관과 함께 개최한 자금시장 관련 현황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

금융당국이 최근의 자금시장 경색을 풀기 위해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흥국생명 등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이 잇따라 불발되면서 해외채권 시장에서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것으로 만기가 없거나 30년 이상의 영구채다.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분류돼 금융회사가 자기자본 확충 수단으로 선호한다. 통상 발행 5년 후 조기 상환이 불문율인데, 보험사의 조기 상환이 잇따라 불발되면서 카드사와 캐피털사 등 여타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에도 부정적인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최근 금융회사들과 자금시장 안정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는 현대캐피탈이 지난달 26일 일본에서 200억엔(약 1930억원) 규모의 사무라이 본드, 즉 엔화 표시 채권을 0~1%대의 초저금리로 발행하는데 성공한 영향이 크다는 관측이다.

현대캐피탈은 국내 채권시장의 조달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는 상황에서도 초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채권시장을 주목해 현지 발행에 성공했다. 금융당국은 국내에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이 여의치 않을 경우 현대캐피탈처럼 적극적으로 해외채권 발행에 나서는 것도 대안 가운데 하나로 보고 있다. 고금리 채권을 대거 발행해 국내 시중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온 한국전력의 해외채권 발행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이 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발행을 자제시켜왔다. 하지만 국내 자금시장이 경색되자 환 헤지를 하면 해외채권 발행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판단 아래 발행을 허용하는 분위기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해외채권 발행으로 들어오는 자금이 달러 유동성을 공급해 원·달러 환율을 떨어뜨리는 효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흥국생명과 DB생명이 각각 5억 달러(약 7110억원), 3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조기 상환에 실패하면서 국내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이 불발된 것은 지난 2009년 우리은행 이후 13년 만이다.

흥국생명은 저금리 시절인 2017년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해 이달 조기 상환일을 맞았다. 하지만 조기 상환을 위한 신규 조달금리가 10% 이상으로 치솟자 금리를 2.2%포인트가량 더 얹어주는 선에서 6개월 뒤 상환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그때 가봐야 알 것"이라며 불안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흥국생명 사태로 우리나라 보험사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윤 S&P 글로벌 이사는 "금리 상승에 이어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 불발까지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며 "한국 보험사의 신종자본증권 신규 발행과 차환을 위한 자금조달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종자본증권은 보험사의 주요 자금조달 통로 중 하나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17년 말 2조1000억원에서 올해 6월 말 6조8000억원으로 발행이 늘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은행으로만 시중자금이 몰려 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일이 덮쳐 보험사가 돈 구하기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보험사의 잇따른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 불발은 곧장 국내 기업의 해외채권 가격을 떨어뜨리고 거래량도 감소시키고 있다. 특히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높혀 금융회사는 물론 정부의 해외채권 발행에도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부가 발행하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5년물의 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은 지난달 31일 70bp(1bp=0.01%포인트)로 전일보다 4bp 높아졌다. 이는 2017년 11월 14일의 70.7bp 이후 약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신용부도스와프는 채무불이행 사태가 발생해 채권이나 대출 원리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에 대비한 신용파생상품이다. 자금을 조달한 기업의 신용위험만을 따로 분리해 시장에서 사고파는 것으로 해당 국가나 기업의 디폴트 위험이 커지면 프리미엄도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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