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조우석

대중가요에서 신세대혁명의 완성은 1990년대다. 95년 SM엔터테인먼트를 필두로 YG와 JYP 같은 기획사가 줄줄이 등장하던 그 무렵이다. 당시 부모님 덕에 주머니가 두둑해진 10대들은 자기 돈으로 앨범 사고 콘서트장에 갔다. 그걸 무기로 음악시장을 자기들 취향대로 바꿔놓았던 게 90년대 변화의 실체다.

실은 그에 앞서 음악시장에 변화를 준 게 70년대 젊은이 그룹이다. 통기타 든 채 포크송을 즐기던 이른바 청년문화 세대 말이다. 그들은 트로트 세대와 사뭇 달랐다."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곱게 접어 함께 붙인 하얀 손수건..." 윤형주·송창식의 트윈폴리오가 부른 ‘하얀 손수건’은 이미자류(類)와는 구분됐다. 세련되고 신선한 느낌의 팝음악을 소화한 첫 세대의 등장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이장희 ‘그건 너’등을 목 터지게 불렀고, 드디어 포크는 그 시절 청춘들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장르 반열에 올랐다. 70년대를 말할 때 조영남을 빼면 안된다. 그는 포크적 감수성은 물론 가스펠·팝송까지 소화해낸 만능 재주꾼이었다. 그리고 김세환·윤형주·송창식을 아우르는 세시봉의 맏형이다.

세시봉 얘기는 그들이 14일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에서 열리는 박정희 탄생 105돌 기념 음악회에 출연하기 때문이다. 쇼팽의 피아노곡과 성악곡 연주 이후 제2부 코너에서 조영남·윤형주·김세환 등이 등장한다. 그들은 ‘사랑하는 마음’ 등 여러 곡을 부르지만, 박정희와 세시봉의 만남 자체가 흥미롭다. 왜? 세시봉 그리고 청년문화 세대란 처음부터 끝까지 박정희 키즈이기 때문이다. 직전까지의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던 게 바로 그때다. 즉 경제개발이 만든 초창기의 풍요와 여유가 없었더라면, 우린 여전히 전시대의 트로트 장르를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포크 장르의 수입은 미뤄지거나 아니면 미풍에 그쳤다. 그게 포크의 사회경제사다.

대중음악뿐인가? 실은 대한민국 전체가 박정희의 유산이고 작품이다. 오죽하면 박정희는 기념관이 필요없으며 대한민국 전체가‘지붕 없는 기념관’이란 말도 있을까?

또 하나 매년 10월 26일 그의 서거일을 추념해왔지만 그와 별도로 매년 11월14일 그의 탄생을 기리는 게 맞다. 그게 미래지향적인 데다가 젊은이들을 만나는 지름길이다. 무엇보다 박정희의 유산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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