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民學 『지도자의 길』 (下) 박세일 著
安民學 『지도자의 길』 (下) 박세일 著
  • 더 자유일보
  • 승인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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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安民學堂(가칭)에서 유가의 고전의 하나인 <대학>을 공부하고 그 공부결과를 일단 정리하는 의미에서 쓴 글이다. 2016년 2월 26일 안민학당에서 발표하고 함께 토론한 글이다. 차후에 우리가 우리나라에서 안민학/경세학이라는 하나의 학문체계를 만들어 나갈 때 첫 부분이 指導者論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글이-- 비록 부족함이 많아도-- 우리나라에서 안민학/경세학을 만들어 나가는데 작은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박세일

 

3: 求賢과 善聽

우리는 앞에서 천하의 최고 인재를 모아, 즉 求賢하여, 천하의 일을 맡기는 것이 지도자의 길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구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천하의 최고 인재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우선 최고의 인재인지 아닌지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이것이 역사적으로 지도자학의 핵심주제의 하나이다. 그래서 예부터 임금은 두 가지를 잘 하여야 한다고 했다 하나는 知人이고 다른 하나는 安民이다. 안민은 백성를 편안하게 해주고자 하는 애민의 마음, 즉 仁의 마음이고, 지인은 사람을 바르게 살펴 그 됨됨이를 바로 아는 일이다. 智의 마음이다. 사람을 올바로 알고 판단하여야, 우선 지도자에게 그러한 능력이 있어야 적재적소에 맞게 인재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부터 지도자학에서 지인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삼아 왔다.

우선 사람을 어떻게 보고 판단할 것인가? 知人之法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를 위해선 堯임금이 舜임금을 어떻게 자신의 후계자로 선택하였는가 그 과정을 보면 큰 참고가 된다. 요임금과 같은 聖人의 知人之法에는 3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째는 상대를 충분히 알면서도 때를 기다리며 심사숙고하였다. 둘째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의견을 말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의견을 잘 들었다, 즉 선청하였다. 셋째는 사람 됨됨이를 공적으로 사적으로 시험하여 보았다.(오랫동안 公務를 맡겨서 治國을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자신의 두 딸을 시집보내 순임금이 어떻게 齊家를 하는가를 살펴 보았다) 대단히 신중한 지인법이다. 그러나 천하를 맡길 사람 임금을 찾는 일이니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음 공자의 지인지법은 어떠하였는가? 공자는 지도자의 지인지법을 이야기하면서 우선 지도자 스스로가 公而無私 明而不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하였지만 지도자가 수양을 하여 公하고 明하지 않으면 사물을 바르게 보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지인지법을 이야기하면서도 명군이 아니면 바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눈 밝은 공평무사한 明君의 중요성은 전제로 하면서 공자는 3가지 지인지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그 사람의 행하는 바를 보아라(視), 말과 행실을 보라는 것이다. 둘째는 그 사람이 그렇게 행하는 이유와 까닭을 살펴라(觀). 그가 이익을 위해서 하는가? 의리를 위해서 하는가? 셋째는 그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것이 무엇인가? 어느 때 편안하게 느끼는지를 꼼꼼히 살펴라(察). 그 사람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라. 그러면 그 사람의 恒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이익을 좋아하는 소인인지 대의를 소중히 하는 군자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상의 3가지 기준을 제시하면서 모든 사람이 좋아해도 혹은 모든 사람이 싫어해도 쉽게 판단하지 말고 실제를 잘 살펴라.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하더라고 선한 사람들이 많이 지지하는지 不善한 사람들이 지지하는지 자세히 살펴라. 공자께서는 이렇게 신중한 지인지법을 이야기하고 있다.

儒家에서 나라가 부흥하려면 인재를 알아보는 눈 밝은 明君과 유능하고 현명한 신하 즉 賢臣이 만나야함을 강조하여 왔다. 정약용 선생은 이것을 風雲之會라고 하였다. 바람과 구름이 만나야 많은 변화와 조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은 현실국가운영의 어려움의 대부분은--亂世의 주요원인은-- 이 양자의 만남이 이루어 지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이와 관련 두 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 첫째는 명군이 현신을 찾는 데는 道가 있다는 점이다. 명군은 모든 정성을 다하고 최고의 예의를 갖추어 <스승으로의 현신>을 찾아야 한다. 보통 三顧草廬 등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신하될 사람이 자기존대하고 오만해서가 아니다. 임금의 정성이 그리고 신뢰가 그 수준이 아니면 국가의 어려운 과제를 함께 풀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신은 명군이 정성과 예를 다하고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요약하면 명군은 스승으로서의 현신을 찾는 데는 지극한 도가 있고 그 도를 따라--예와 의를 따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에서 지적하였지만 맹자는 임금이 스승들을 신하로 모시면 그 나라는 잘된다고 하였다.

둘째는 현신이 명군을 모시는 데에도 道가 있다. 공자께선 올바른 신하는 도로서 임금을 섬긴다(以道事君)라고 하고, 도로서 섬길 수 없으면 물러나야 한다(不可則止)고 하셨다. 신하가 임금을 존경하고 모시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도에 맞도록 임금을 모시고 인도하는 것은 현신이 아니면 못하는 법이다. 그러면 도를 가지고 임금을 모신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한 천하국가 즉 富民德國을 만드는 원리와 이치에 맞게 국정운영을 조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를 가지고 임금을 모실 수 있으면 모시고, 도를 가지고 모시기 어려우면 떠나는 것이 현신의 도리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신하는 나가기가 어렵고 물러서기가 쉬워야 힌다고, 그래야 그 나라 官의 질서가 바로 선다고 하셨다.

다음은 지도자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는 善聽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자. 지도자가 선청을 하려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는 우선 자신이 말을 많이 하면 안 된다. 자신의 생각을 먼저 이야기하면 안 된다. 이 점은 특히 韓非子가 강조한 점이다. 지도자가 입장을 미리 밝히면 신하들의 의견이 이를 따라 오는 경향이 생긴다. 신하들의 진정한 충언을 들을 수 없다. 그래서 신하들의 의견을 선청하면서 메모하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그를 위하여 메모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는 가능한 의견을 달리하는 둘 이상의 입장을 함께 들어야 한다. 선청의 두 번째 룰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이해의 차이에서도 달라지지만 가지고 있는 정보 set이 달라서 견해가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천하의 지혜를 모으려면 다양한 정보 set을 접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의견을 동시에 듣는 것이 중요한 선청의 길이다.

4: 後史와 回向

마지막으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과 덕목은 후사와 회향이다 후사란 자신이 물러난 다음에 올 시대 그리고 세대를 위해 준비를 하는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연속적이다. 따라서 오늘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다음에 올 역사도 중요하다. 오늘의 역사뿐 아니라 미래의 역사까지도 성공시켜야 명실공히 천하국가 부민덕국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애민하는 공심을 가진 지도자라면 다음에 올 시대를 위하여 두 가지 준비를 한다.

하나는 차세대 인재를 키운다. 차세대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 <大學衍義>를 쓴 眞德秀는 “天子는 한 시대의 인재들 길러내는 최고 책임자(宗主)이다” 라고 주장하고 있다. 각자 장점을 길러주고 서로 배우고 익히도록 하면 백관은 모두 현능해 질 것이고 일마다 그 마땅한 때를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훌륭한 천자라면 이러한 인재양성의 노력은 당대에 끝나지 않고 다음 시대와 다음에 올 세대로 연계될 수 있어야 한다. 당대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시대 다음세대를 위하여 인재를 기르는 노력이 지금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後史의 두 번째 과제는 다음 시대가 필요로 할 정책을 미리 예측하고 오늘의 정책을 정할 때 이를 고려하는 것이다. 필요하면 다음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정책까지도 미리 연구하여 그 결과를 다음 세대가 참고하도록 전달하여야 한다. 결국 인재양성이든 정책개발이든 멀리보고 이 시대만이 아니라 다음 시대까지를 배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는 天下에 이익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萬古에 이익을 주어야 한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요즈음 지도자들 중에는 후사를, 즉 뒤에 올 역사를 너무 외면하는 경향이 많다. 국가운영의 시간적 공간적 지평(horizon))이 너무 짧다. 이것은 훌륭한 지도자가 아니다.

다음 요구되는 덕목은 回向이다. 지도자는 자신이 성취한 국가발전과 안민의 功과 명예를 자신이 가져서는 안 된다. 모두를 함께한 팀의 구성원(현신)과 국민들에게 돌려야 한다. 그리고 오늘이 있게 한 지금까지의 과거 역사의 주역들에게도 그 공을 돌려야 한다. 한마디로 모든 자신의 성취와 그 영광을 국민과 역사에 돌려야 한다. 그리고 실패와 반성의 책임은 자신만이 가지고 가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식이다.

지도자는 역사에 큰 기여를 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여야 한다. 그 결과와 성과를 나누는데 참여할 생각을 하여서는 안 된다. 그래서 일이 끝나면 빈손으로 가야 한다. 空手來하였으니 空手去하여야 한다. 흰 눈이 내리는 밤 표표히 떠나야 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는 캄캄한 밤이지만 돌아가는 길도 똑 바르게 걸어야 한다. 오랑캐처럼 지그재그로 걸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길 잃은 뒤에 오는 사람이 내 발자국을 보며 자신의 길을 찾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역사의식이고 진정한 애민정신이고 천하위공의 마음이다.

5: 맺는 말

조선조 500년 동안에 선비의 修養學에서는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선비의 經世學에서는 큰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조선조 시대 주기적으로 일어났던 士禍--1498년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회 1519 년의 기묘사화 1545년의 을사사화 1547년의 정미사화 1722년의 심임사화 등 등---가 선비들을 크게 위축시켰다고 볼 수 있다. 사화가 일어나면 선비의 일부는 죽음을 당하고 나머지 선비들은 낙향하여 침묵하면서 후학을 가르쳤다. 그 때 후학들에게 가르치는 내용이 정치적으로 국가경영에 대한 내용--안민학이나 경세학---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조 시대 많은 문집은 대부분이 4단칠정론, 일기이원론, 이기일원론 등등의 인간 본성과 수양학에 대한 논의가 중심이었다. 그리고 국가경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 주장이나 교육은 스스로 피하였다. 맹자를 읽는 것도 피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心性學 수양학은 발전하였는데 경세학 지도자학에서는 큰 발전이 없었다. 조선 개국 시 정도전의 경국대전 등과 이율곡의 성학집요 동호문답 만언봉사 그리고 선조에 대한 몇 가지 정책건의문(진시폐소, 등등) 그리고 정다산의 목민심서 경세유포 탕론 등이 돋보이는 경세학적 결과물이 아닐까? 필자의 과문의 소치일 수도 있다. 여하튼 확실한 것은 인성과 수양에 대한 논의 보다 경세에 대한 논의가 적었던 것은 확실하다.

경세학과 지도자학을 직접 논하는 것을 선비들이 스스로 피한 점도 있지만 설사 자신의 주장을 집필하는 용기있는 선비가 있다고 하여도 그 글이 당대나 후대에 전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다산 선생도 牧民心書를 쓰면서 선비의 일은 修己(修養)가 半이고 牧民(安民 혹은 經世)이 半인데 목민에 대한 책은 대부분 거의 전해오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 내 책인들 어찌 전해질 수 있으랴” 하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설사 이 책이 당대나 후대에 전해지지 못해도 나 자신의 덕을 쌓기 위하여 책을 쓴다고 스스로를 위로 하고 있다. 목민과 경세를 생각하는 선비들에게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참담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해방 후 서양의 사회과학 학문이 물밀듯이 들어 왔으나 아직은 수입단계가 아닐까 생각하다. 서양의 국가정책이론과 우리의 국가정책현장을 묶는, 그래서 한국이 나갈 방향과 전략을 제대로 제시하는 한국적 사회과학, 한국적 국가경영학, 한국적 경세학은 아직 나오지 않는 것 같다. scholar와 practitioner 사이의 거리가 아직은 너무 멀다. 전직 장차관이 나와서 자신의 정책경험을 책이나 논문으로 정리하는 일들은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학자출신의 장차관들이 공직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와 자신의 정책경험을 글로 정리하고 반성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한 현장의 지혜와 경험이 축적되고 이론적으로 정리되어야 한국적 국가경영학 한국적 경세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이런 방향으로의 일부 움직임도 있으나 아직은 크게 미흡한 실정이다.

언제가 이 문제를 우리가 풀어야 한다. <理論과 實務>의 gap을 줄여야 한다. <修養과 經世의 gap>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양자를 융합하여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에서 올바른 경세학, 지도자학이 나올 수 있고 더 나아가 우리가 사상적 자주국가 이론적 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 아니 그래야 우리가 성공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다. 한국적 이론없이 한국적 성공이 있을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외국의 이론을 受信만 하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의 이론을 發信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정신자본이 우리의 사상자본이 우리의 이론자본이 세계발신의 수준이 될 때, 우리 한반도는 오랜 <변방의 역사>를 끝낼 수 있다. 그리고 선진통일에 성공하고 세계중심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인류의 보편적 발전에 기여 하는 자랑스러운 세계기여국가, 세계모범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끝>

jayooilbo@jay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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