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인권단체 인터내셔널 메모리알의 해산명령 판결 광경. /로이터=연합
러시아 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인권단체 인터내셔널 메모리알의 해산명령 판결 광경. /로이터=연합

러시아 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자국 내 대표적 인권단체인 ‘메모리얼’에 해산 판결을 내렸다. 1991년 붕괴된 소비에트연방(옛소련)에 대한 러시아식 잘못된 ‘역사 바로세우기’란 국제사회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미국 abc통신은 "옛소련을 국가적 자부심으로 여기는 등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강조하며 역사해석 통제를 강화하는 중"이라고 보도했다.

 

대한민국의 ‘역사왜곡금지법’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abc뉴스 등에 따르면, 알라 나자로바 판사는 메모리얼 해산 청구 소송 공판에서 이 단체의 폐쇄와 그 지방 조직 및 산하 조직의 해산을 결정했다. 이른바 ‘외국대행기관법’ 위반죄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메모리얼이 옛소련에 대해 테러국가라는 허위 이미지를 조장, 대(大)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를 왜곡하며 나치 범죄자들을 복권시켜 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승리자의 후예인 우리가 영광스런 과거를 왜 부끄러워 해야 하나" 등 옛소련 미화 발언을 하는 한편, "메모리얼이 자체 출판물에 외국대행기관임을 표시하도록 한 법률을 어겼다"고 강조했다.

변호인 측은 "이번 판결이 불법적이며 근거가 없다"면서 상소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메모리얼 운영의장 얀 라친스키 역시 "먼저 국내 법원에 상소하고, 필요하면 금후 유럽인권법원에 호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에 해를 끼치는 불공정한 판결",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나쁜 신호"라는 주장이다. 메모리얼은 성명을 통해 "형식적 구실이 법률 위반일 뿐, 소비에트 시절에 대한 역사 해석을 문제 삼고 있다"며 반발했다.

외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반대파 탄압의 분수령"으로 본다. "옛소련의 재건, 역사의 가장 어두운 장에 관해 침묵시키려는 푸틴 정부의 노력"이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날 공판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약 20개국 외교관들이 방청했다. 재판에 앞서, 메모리얼 지지자 약 100명은 "시민의 수치!"라고 외치며 대법원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I) 또한 성명을 통해 "언론·결사·자유의 직접적 침해이자 시민사회에 대한 명백한 공격이며, 국가 폭력의 기억 삭제를 노린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메모리얼은 러시아 유수의 인권단체로, 옛소련과 개방 후 러시아의 정치적 탄압을 연구·기록해왔다. 소련 해체 직전인 1989년 역사·교육 단체로 창설, 1991년 인권분야로 영역을 넓혀 러시아 및 옛소련권 국가들의 인권상황을 감시해왔다.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라트비아·조지아(그루지야)뿐 아니라 이탈리아 등 서방 국가에까지 지부를 두고 있다.

앞서 러시아 대검찰청의 기소와 별도로, 지난달 모스크바 검찰청 또한 시(市)법원에 메모리얼 하부 조직 ‘인권센터 메모리얼’ 해산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2년 생긴 ‘외국대행기관법’은 외국 자금을 지원받아 러시아에서 정치적 활동을 하는 비정부기구(NGO)·언론매체·개인·비등록 사회단체 등에, 법무부 등록과 정기적인 활동자금 명세의 신고 등을 의무화하고 있다.

 

자체 발행하는 모든 간행물엔 외국대행기관임을 명시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대행기관’이란 명칭 자체가 ‘외국 스파이’라는 뉘앙스를 풍겨, NGO나 야권 단체의 제한을 위한 법률이라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러시아 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인권단체 인터내셔널 메모리알의 해산명령 판결을 내렸다. 메모리얼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솔로베츠키(옛소련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꽃이 놓여 있다. "우리가 메모리얼이다"라는 러시아어가 보인다. /로이터=연합
러시아 대법원이 28일(현지시간) 인권단체 인터내셔널 메모리알의 해산명령 판결을 내렸다. 메모리얼 지지자들이 모인 가운데 솔로베츠키(옛소련 강제수용소) 기념관에 꽃이 놓여 있다. "우리가 메모리얼이다"라는 러시아어가 보인다. /로이터=연합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