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결과 기자회견 하는 바이든 대통령. /AP=연합
중간선거 결과 기자회견 하는 바이든 대통령. /AP=연합

공화당의 압승까지 전망됐던 미국 중간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레드 웨이브’(공화당 물결)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낙태권 이슈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문이라는 분석이 미국 언론에서 나오고 있다.

현직 대통령 집권 2년 차에 진행되는 중간선거는 전통적으로 집권당의 무덤으로 불릴 정도로 야당에 유리한 선거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 1998년과 2002년처럼 탄핵 역풍이나 9·11 테러와 같은 대형 이슈가 있었던 해를 제외하고는 야당이 승리했다.

가령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첫번째 임기 중반에 치른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하원 의석 63석을, 트럼프 전 대통령 때인 2018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하원 40석을 각각 추가하며 대승을 거뒀다.

이번에도 막판에 상승세를 탄 공화당이 하원에서 대승하고 상원도 이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상원은 팽팽한 대결세를 보인 끝에 조지아주 결선투표에서 승패가 최종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큰 상태이고 하원도 10석 안팎의 격차로 힘겹게 다수당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002년 이후로 집권당을 정치적 궁지로 몰아 넣는 야당의 물결이 없는 첫 번째 선거가 될 것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보도했다.

‘레드 웨이브’가 잔물결로 끝나게 된 배경으로는 미국 내에서 진보적 가치의 핵심으로 인식되는 낙태권 문제가 거론된다.

지난 6월 연방 대법원이 낙태권 인정 판결을 폐기한 이후 치러진 재보선에서 진보·여성 유권자들이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결집하는 모습이 실제 관측되기도 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낙태권 침해로 자극을 받은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는 경제 이슈가 더 부각되면서 판세가 공화당에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에서도 투표 핵심 요인으로 인플레이션(32%)을 꼽은 응답자가 낙태권(27%)보다 많기도 했다.

이런 차원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전면에 등판한 것도 민주당 결집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막판에 지원 유세를 다니면서 대통령 재선 도전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밝히며 백악관 재입성을 노린 것이 민주당 지지층을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해 ‘극우 공화당 심판론’을 제기하면서 지지층의 투표를 독려하기도 했다.

인터넷 매체 복스는 "중간선거에는 현직 대통령이 출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의 투표참여 동인이 낮아져 집권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하는 패턴을 보였다"면서 "그러나 이번 선거는 바이든과 트럼프간 선택으로 간주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NYT도 "민주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성과에 대해 투표한 것이 아니라 2020년 대선을 강탈당했다는 거짓말을 거부하고 미국 민주주의의 현재를 보여주는 기회로 선거에 임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등장’의 마이너스효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던 지난해 11월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와 비교되고 있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은 버지니아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보다 10%포인트를 더 득표했으나 지난해 주지사 선거에서는 트럼프와 거리두기를 했던 공화당 글렌 영킨 공화당 후보가 승리했다.

이 때문에 이번에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더 좋은 성과를 냈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 공화당 내 일각에서도 나온다.

공화당 애덤 킨징어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이제 공화당 미래 사전에서 트럼프 일가는 퇴출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공화당 조지프 던컨 조지아 부지사는 CNN방송에 "이제 트럼프는 백미러에 두고, (우리는) 양질의 후보와 함께 나가야 할 때"라며 트럼프와의 결별을 주장했다.

이밖에 민주당과 함께 공화당 지지자들도 결집하면서 승패를 가를 부동층이 적었다는 점도 공화당이 대승하지 못한 이유로 제시되고 있다.

이는 정치 지형이 양극화되면서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을 바꾸면서 심판의 회초리를 들었던 유권자들 규모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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