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에 어느 왕이 등장하는가로 그 시대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시대 막론, 영화화 우선 순위에 올라 있는 왕들도 있다. 인기스타 왕들이다. 23일 인조가 등장하는 영화 ‘올빼미’ 개봉에 맞춰 그동안 영화 속에 등장한 인기 왕들의 리스트를 추려 본다.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독자들이 알 만한 영화들을 골랐다.

4대 세종-천문: 하늘에 묻다· 나랏말싸미

'천문'의 세종 한석규.
'천문'의 세종 한석규.

‘천문’(2019)은 세종대왕과 노비 출신 과학자 장영실의 브로맨스를 담았다. 둘 사이의 에피소드가 신분 차를 넘어 다정하고 유머스럽다. 하지만 천체 측량은 명나라 허락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들어 대신들이 들고 일어난다. 결국 명의 사신이 보는 앞에서 세종은 직접 관측기를 태운다. 장영실은 궁중에서 내쳐지고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없다. 공교롭게도 ’천문’과 같은 해에 개봉한 ‘나랏말싸미’(2019)는 세종이 역도로 몰려 스님이 된 신미와 함께 한글을 창제했다는 내용. 역사왜곡 논란에 시달렸다. 팩션이라는 전제도 달지 않아 더욱 화를 키웠다. 뒤늦게 해명에 나섰지만 관객들은 싸늘하게 등돌렸다.

10대 연산군-연산일기·왕의 남자·간신

'왕의 남자' 연산 정진영.
'왕의 남자' 연산 정진영.

연산은 60년대 한국영화 단골손님이었다. 이들 영화는 거의 모두 연산의 폭정, 장녹수와의 타락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가 달라진 연산이 등장한 것이 ‘연산일기’(1988)다. 연산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모성에 대한 갈증’으로 파악하고 있음이 독특하다. 이후 연산은 다른 왕들에 밀려 영화의 중심에서 멀어지다가 ‘왕의 남자’(2005)로 컴백한다. 영화는 광대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의 조롱거리 대상으로 연산을 보여준다. 광대 역을 맡은 이준기가 ‘뜬’ 영화다. 이어 강력한 19금 연산 영화가 등장한다. ‘간신’(2015)이다. 영화는 대놓고 연산의 흥청망청의 끝을 보여준다. 19금이지만 39 이상도 가끔 고개를 돌리고 싶다.

15대 광해군-광해, 왕이 된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
'광해, 왕이 된 남자' 이병헌.

승정원일기에서 지워진 15일 동안 광해군으로 위장한 대역이 조선을 다스렸다고 가정한 팩션이다. 광해군 8년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광해는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의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허균은 외모는 물론 타고난 재주와 말솜씨로 왕의 흉내도 완벽한 하선을 발견한다. 얼떨결에 궁에 끌려간 하선은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점점 제대로 왕 노릇을 한다.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광해군과 중전 유씨, 허균을 빼면 모두 가공의 인물이다. 이병헌의 1인2역 연기가 돋보인 영화. 개봉 당시 여러 영화들과의 데자뷔 논란이 일었지만, 작가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16대 인조-남한산성

'남한산성' 인조 박해일.
'남한산성' 인조 박해일.

청나라가 쳐들어오자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여의치 않자 급히 남한산성으로 들어간다. 결국 청에 굴복해 청 태종을 향해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린다. 삼배구고두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다. ‘남한산성’(2017)은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을 맞이하기까지 47일간 남한산성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인 김상헌의 대립, 그 사이에서 번민하는 인조. 고증을 최대한 살리고 치욕의 역사를 담담하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22대 정조-영원한 제국·역린

'역린' 정조 현빈.
'역린' 정조 현빈.

정조가 뜨기 시작한 것은 근래지만 시작은 오래됐다. 1995년 ‘영원한 제국’은 이인화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정조의 의문스런 죽음을 중심으로 1800년대 당쟁과 음모에 초점을 맞췄다. ‘역린’(2014)은 정조 초기 암살 미수 사건을 다룬다. 정조 1년(1777년)에 침전인 존현각에 괴이한 흉적들이 침입한 사건인 정유역변을 조금 비틀었다. 역린이란 ‘용의 가슴에 거꾸로 난 비늘’이라는 뜻. 비유해서 왕이다. 감히 건드렸다가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야기의 곁가지가 너무 많아 갈피를 못잡고 방황했다는 평. 그래도 배우는 정조 가운데 가장 잘생긴 현빈이다.

정조의 프리퀄이라 볼 수 있는 영화는 ‘사도’다. ‘사도’의 배경은 1762년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죽는 임오화변이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고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8일 동안을 보여준다. 사도가 뒤주에 갇히는 장면을 앞부분에 배치하고, 왜 사도가 뒤주에 갇혔고 아버지 영조와의 사이가 틀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집중한 영화다. 이준익 감독 말에 의하면, 충혈된 감정으로 시작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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