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단에 속한 돼지들은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울 때 주변의 돼지가 개입해 싸움 중인 돼지들의 공격성과 불안감을 낮추는 사회 정서적 조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 집단에 속한 돼지들은 두 마리의 돼지가 싸울 때 주변의 돼지가 개입해 싸움 중인 돼지들의 공격성과 불안감을 낮추는 사회 정서적 조절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집단생활을 하는 돼지들이 사람들도 본받을 만한 생존 처세술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갈등이 생겨 싸움을 벌이면 곧바로 화해하고 제3자가 중재자로서 개입해 다툼을 말리는 등 높은 사회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토리노대학은 최근 진화생태학자인 지아다 코르도니·이반 노르시아 교수팀이 집돼지 갈등 해결 과정을 분석한 결과를 동물학 저널 ‘동물 인지(Animal Cognition)’에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를 위해 연구팀은 2018년 6월부터 11월까지 6개월간 토리노의 한 돼지농장에서 집단 사육 중인 집돼지 104마리의 상호작용을 관찰·기록했다.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 품종과 크기, 성별, 반점 등을 토대로 각 개체의 세대를 구분한 뒤 세대를 아우르는 31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해 혈연관계 등 연관성도 파악했다.

특히 박치기, 밀기, 물기, 들어 올리기 등 공격적 행동이 발생한 216건의 갈등상황에서는 3분가량 후속 행동을 면밀히 추가 관찰했다.

그 결과, 싸움이 끝난 뒤 돼지들은 서로 코 맞대기, 몸이 닿은 채 않기, 상대방 몸에 머리를 기대고 쉬기 등 화해적 행동을 보였다. 공격을 가했거나 공격을 당한 개체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시작했다.

노르시아 교수는 "혈연적으로 가까운 개체끼리의 싸움보다는 먼 개체들 사이의 싸움에서 이런 행동이 더 빈번하게 확인됐다"며 "이는 돼지들이 상대방이 제공할 수 있는 것에 따라 상호관계에 차별적 가치를 두는 것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친형제나 의붓 형제·자매와의 물리적 충돌로 생긴 사회적 관계의 균열은 비교적 피해가 적을 수 있지만 혈연적으로 거리가 먼 개체와는 자신의 사회적 지지를 유지하고 집단 내 먹이 접근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화해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중재자가 개입된 분쟁 해결의 경우 중재 역할을 하는 돼지가 가해자와 피해자 중 어떤 개체에 접근하는지에 따라 중재 결과가 달라졌다. 전자는 피해자를 향한 가해자의 공격적 행동이 현저히 줄어드는 효과를 발휘했고 후자는 가해자의 공격 횟수는 변하지 않았지만 피해자가 몸을 떨거나 긁는 행동, 입에 아무것도 없이 씹는 행동, 하품과 같은 불안감 표출이 크게 줄었다.

또한 구경꾼 돼지들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혈연적으로 자신과 가까울 때 중재자로서 싸움에 개입하는 빈도가 잦았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돼지들이 혈연이라는 특정 관계에 가치를 두고 가족이나 친인척에게 지지를 보낸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풀이했다.

노르시아 교수는 "돼지가 집단 갈등에서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바꿀 수 있는 사회 정서적 조절 능력을 지녔다는 판단이 가능하다"며 "다만 이 연구는 한 농장의 돼지 집단에 국한된 관찰 결과이기 때문에 집돼지 전체로 일반화하기 위해서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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