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일본명 '다카기 마사오'로 본 창씨개명

박정희
박정희

창씨개명(創氏改名)이란 일본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氏는 아버지 쪽, 姓(성)은 어머니 쪽 집안의 이름인데, 일본에선 풀네임을 ‘氏名’이라 부른다. 한국 중국에선 ‘姓名’이 일반적이다. ‘계집 女’가 들어간 글자 ‘姓’은 인류문명사가 모계사회를 거쳐왔음을 증거한다. 일본인들에게 ‘姓 변경’은 양자입적이나 결혼할 때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데릴사위일 경우엔 혼인신고를 위해 처가 쪽으로 姓을 바꿔야만 한다. 이런 현상이 가능했던 것은 중화문명의 중심부로부터 한반도보다 더 멀리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패밀리네임(姓)을 자신의 정체성 자체로 인식하는 것은 전형적인 유교적 가부장 문화에서 유래한 심리현상이다. 무엇인가를 힘주어 단언할 때 한국인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자신의 말이 다르게 판명날 경우) 내가 姓을 갈겠다." 이런 수사학이 한국 이외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인간을 개인이 아닌 집안·가문의 구성요소로 여기는 전통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발상이다. 우리의 姓이 과연 목숨 걸고 지킬 가치 그 자체인지, 적어도 그것을 상징하는 존재인지를 생각해야 일제시대 ‘창씨개명’의 무게가 뚜렷해질 것이다.

일제시대 말 창씨개명의 명분은 ‘조선인을 일본인과 (장기적으로)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것이었다. 현실적 괴리가 있었고, 일제가 조만간 멸망했기에 ‘장기적으로’ 어떤 변화가 실제 가능했었을지는 단정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민족말살 정책’이라고 정리해버리기엔 다양한 측면과 요소가 존재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수의 한국인 姓들이 중국에서 도래했다. 조선시대 이래 중국에서 유래한 姓을 명예롭게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일제시대 창씨개명의 불쾌감이란 사실상 ‘소중화 의식에 난 상처’에 가까울지 모른다.

전후 일본인들의 姓이 이미 6000개가 넘었으며 매년 새롭게 추가돼 왔다. 19세기 중반 일본의 姓은 소수 특권층에게만 주어졌고, 수백년 역사를 지닌 姓은 서너개에 불과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보통사람들이 姓을 가지게 된 것은 근대적 행정 편의를 위해서였다. 오늘날 우리 귀에 익은 여러 일본인 姓들이 호적법 문서 기재를 위해 급조됐다. 이런 일본인들이기에, 일제시대 조선인들이 받은 창씨개명의 트라우마를 이해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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